‘고학력·대기업 출신’도 혹독한 재취업 시장, 경력 분석부터 시작해야

자동차 부품사에서 지난 20년간 해외 영업 및 해외 사업을 담당해 왔던 김진만(가명·50) 씨는 지난 4월 회사의 경영 악화로 갑작스럽게 퇴직하게 됐다. 이 분야에 대해서는 많은 지식과 경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업체로의 이직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재취업 시장은 예상보다 훨씬 냉랭하고 혹독했다. 여러 군데 지원했지만 돌아오는 결과는 씁쓸했다. 구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신감이 떨어지고 인생에 대한 회의마저 들기 시작했다.

처자식을 생각하면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보다 적극적이고 전략적으로 재취업에 도전하기로 하고 지난 8월 전경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그곳에서 3일 20시간 동안 ‘재도약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커리어와 재취업 시장의 현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고 정신 무장도 새롭게 했다. 약 20년 전 구직 활동했을 때와는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그는 이력서에 지난 경력 중에서 전략적으로 어필할 내용을 추려 넣었고 면접 기술을 익혔다. 중·장년 취업 박람회에도 참가해 구인 기업에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했다. 김 씨는 “자동차 부품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해외 영업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기업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며 “그래서 경력 전환보다 경력을 살리는 쪽으로 재취업의 방향을 정했다”고 말한다. 10월 현재 그는 전에 일하던 동종 업계의 중소기업에 지원한 상태고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제는 ‘넥스트 잡’ 시대] 퇴직 3년 전부터 준비…지인 소개 취업 많아
재취업 시장에는 베이비부머 세대를 포함해 50대 전후의 인력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많은 수가 대기업에서 일하던 고학력·고스펙의 인력들이다. 김 씨처럼 출신 기업과 커리어가 좋은 편이지만 ‘넥스트 잡’을 구하다 보면 한없이 움츠러드는 게 현실이다. 재취업 시장에 인력 공급에 비해 기업의 수요는 크게 못 미치기 때문이다. 중·장년의 실직 상태가 길어지면 가계경제뿐만 아니라 사회·국가적으로도 여러 문제를 유발한다. 그래서 고용노동부 등 정부 차원에서도 중·장년층의 재취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채용 정보 수집 등 지원센터 활용
우선 중·장년 구직자들은 고용노동부의 위탁 사업으로 운영되는 전국 28개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이하 희망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노사발전재단과 경제 5단체 등이 운영하는 희망센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지역별로 재취업 관련 정보를 집결해 구인·구직을 연결하는 것이다. 중·장년 구직자들의 빠른 재취업을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이 기업의 구인 정보이기 때문이다.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센터 중 하나인 전경련 희망센터는 지난 4년간 8000명의 구직자 정보와 3000개의 구인 기업 정보를 구축했다. 중·장년 맞춤 구직 정보이므로 일반 구직 포털 사이트보다 효율적으로 채용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전경련 희망센터는 연간 5000건의 알선을 진행하고 있다. 일부는 헤드 헌팅사와 연계해 맞춤 서비스를 하고 있고 연간 ‘중·장년 채용 박람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각 센터에서 통합으로 공식 포털 ‘장년 일자리 희망넷’과 함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채용 정보 서비스를 확대했다. 각종 취업 뉴스 조회와 지역별 일자리 희망센터 안내, 희망넷 알선 일자리를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자리 정보 제공 외에 재취업을 위한 교육도 점점 활성화·다양화하고 있다. 전경련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가 운영하는 ‘재도약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총 20시간 동안 경력 분석, 재취업 전략 수립, 취업 능력 향상 3개의 모듈로 구성됐다. 40대 이상 중·장년 퇴직자에게 퇴직 후 변화 관리, 역량 진단, 눈높이 조정, 취업 역량 강화 등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연간 10회 실시되고 있다. 김동준 전경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센터장은 “재도약 프로그램 후에도 곧바로 취업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후 관리 차원에서 프로그램 기수 단위로 동아리 활동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전경련 희망센터의 취업 동아리는 교육생들이 서로 채용 동향과 구직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정기 모임을 갖는다.


경력 전환 위한 기술 교육 다양해져
경력을 살려 재취업하려는 구직자들은 재취업 전략 교육만으로 충분하지만 이와 별도로 경력 전환을 원하는 구직자들은 기술 교육이 추가로 요구된다. 최근 재취업을 위한 중·장년 기능 교육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산업인력공단은 지난 8월부터 중장년취업아카데미(이하 아카데미)를 14개 기관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아카데미에서는 인생 이모작 계획 컨설팅뿐만 아니라 인문사회·정보통신기술(ICT) 등 기본 역량 강화 교육, 커리어 컨설턴트, 산업 강사, 아파트 관리소장, 사회적 협동조합 등 다양한 취업 훈련이 가능하다.

전경련 중소기업협력센터는 최근 동부기술교육원·한국조리사관직업전문학교과 업무 협약을 통해 보일러·특수용접·조리사·제과제빵 과정 등 다양한 기술 교육을 시작했다. 중·장년 구직자들이 기술을 배워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채용 기업이 원하는 자질을 익혀 재취업 길을 넓힌다는 취지다. 양금승 협력센터 소장은 “퇴직한 중장년이 특별한 기술이 없는 경우 재취업할 때 급여도 낮고 취업 소요 기간도 더 오래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강조했다.

중·장년의 기술 교육 수요가 증가하면서 평생교육원에서의 프로그램도 크게 늘고 있다. 평생교육원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일반 대학 등록금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사회복지사나 보육교사 등 인기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재취업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최근 조사한 ‘2013 평생교육 통계 자료집’에 따르면 국내 평생 교육 시설은 총 4992곳에 이른다.

한편 대기업을 중심으로 기업 내 재취업 교육도 활성화되고 있다. 삼성전자·KT 등 대기업은 조기 퇴직자, 정년퇴직자를 대상으로 퇴사 전 재취업 교육을 자체적으로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01년부터 퇴직자 지원 프로그램을 실시, 창업 지원부터 중소기업 일자리 알선을 포함한 전직 지원 프로그램, 퇴직자 건강관리는 물론 은퇴 후 자산 관리까지 돕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퇴직지원센터를 통해 생애 설계와 진로 교육을, 포스코는 은퇴 후 귀농 희망자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을, KT는 퇴직자 중심 협동조합에 대해 각종 지원을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내년 고령자고용촉진법을 개정하고 300인 이상 기업은 장년 전직 지원을 의무화하는 법을 추진해 2017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중·장년 근로자들이 퇴직 후 스스로 일자리를 찾았어야 했다. 앞으론 퇴직 전에 재직 회사와 함께 준비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이모작 장려금’ 제도 도입 등을 통해 재취업 훈련비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전문가 조언 | 김동준 전경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센터장
[이제는 ‘넥스트 잡’ 시대] 퇴직 3년 전부터 준비…지인 소개 취업 많아
“‘나는 아니겠지’란 생각을 버려라”

중·장년의 재취업을 돕고 있는 김동준 전경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센터장은 ‘넥스트 잡’에 대비해 현재 고용시장의 현실과 자신의 커리어를 냉철히 파악하고 퇴직에 앞서 준비할 것을 주문했다.

1. 대기업 화이트칼라는 재취업 시장에서 가장 경쟁력이 없다
대기업에서 IT본부·기업혁신 등을 담당하고 관리자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중소기업에서는 그런 직능이 필요 없는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에서 원하는 역량과 자질은 따로 있다. 자신의 경력이 중소기업에서도 이어질 수 있는지 냉정하게 평가해 봐야 한다.

2. 인생 이모작에서 ‘기술’이 생명이다
만일 기술이 없다면 기술 교육의 문을 과감히 두드려라. 인테리어·전기기사·보일러기능사·호텔·여행사 등 다양한 기술 교육이 많다. 기술교육원에서 훈련 후 취업까지도 연계되는 경우가 많다.

3. 20~30년 만의 구직 활동, 모든 게 바뀌었다. 배워라
신문의 구직 정보를 보며 전화해 보고 O, X를 체크하던 시대는 갔다. 채용 정보 수집 및 이력서 작성, 면접 기술 등을 새롭게 배워 전략적으로 접근하라.

4. 눈높이 조정은 필수
최근 한 조사에서 재취업 시장의 구직자들의 기존 연봉 수준은 7120만 원이나 재취업 희망 연봉은 3000만 원 수준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현재 재취업 시장이 그만큼 어렵고 팍팍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나는 아니겠지’란 생각을 버려라.

5. 인적 네트워크 관리 등 퇴직에 앞서 3년 전부터 준비하라
자신의 경력을 미리 프로파일링하고 진출할 수 있는 재취업 분야를 알아보는 게 좋다. 또한 퇴직에 앞서 인적 네트워크의 관리를 잘 해야 할 필요도 있다. 중·장년의 재취업은 70~90%가 지인의 소개로 이뤄진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