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닫고 제 말만 하는 게 독재와 폭력, 다양성 인정해야 비로소 민주주의

[김경집의 인문학 속으로] 매카시와 에라스뮈스 사이에 선 대한민국
“국무성 안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
그것은 폭탄선언이었다. 1950년 2월의 일이다. 조셉 매카시 공화당 상원의원의 연설이었다. 종전 이후 냉전이 심각한 수준이었고 6·25전쟁 등 공산 세력의 팽창에 위협을 느끼던 상황에서 그의 주장은 순식간에 미국을 광풍으로 몰아넣었다. 심지어 그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도 공산주의자에게 약하다고 비난했다. 당시 존 덜레스 국무장관조차 매카시즘의 공포에 떨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괜히 입을 댔다가 역풍에 휘말릴까 두려웠기 때문에 입을 닫았다.

그럴수록 매카시의 만행과 광풍은 더 거세져만 갔다. 그의 주장엔 아무런 근거도 없었고 급기야 나중에는 허위로 밝혀졌다. 하지만 거짓 선동에 놀아난 미국의 대외적 위신이나 지적 환경에 끼친 손해는 막대했다. 자신이 떠벌린 공포에 벌벌 떠는 사람들을 보며 희열을 느끼던 매카시는 급기야 육군마저 자신의 칼날 위에 놓으려고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는 1954년 상원의 사문결의(査問決議)에 의해 실각했다. 그는 단지 선동가였을 뿐이다. 그러나 한 마리 미꾸라지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극도의 공포가 확산됐다.

미국이 매카시즘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는 걸 역사는 생생하게 증언한다. 여진까지 말끔히 털어내기까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미국인들은 매카시즘의 광풍을 통해 다시는 그런 얼간이 선동꾼의 농간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뼈아프게 깨달았다.


매카시즘은 살아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어떤가. 여전히 음울한 매카시즘이 유효하지 않은가. 선거철이다. 세월호 사건 때문에 주춤했지만 선거가 코앞이다. 겉으로는 예전보다 시끄럽지 않지만 내용은 오히려 더 조악하고 추잡하다. 정책은 사라지고 이념의 대립 구조에 또다시 쓸려간다. 대놓고 네거티브에 나서고 ‘악마의 편집’ 같은 노골적인 왜곡 지원이 난무한다. 자신의 허물은 훨씬 더 근원적이고 큰데 상대 허물의 일부를 마치 전부인 것처럼 떠들어 댄다. 그런데 그걸 이념의 대립 구조에 구겨 넣고 윽박지른다.

몇몇 TV의 대담 프로그램들은 아예 대놓고 왜곡과 편향의 난장판을 벌여놓고 희희낙락댄다. 선거를 통해 비전을 제시하고 해법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편 가르기에만 의존해 표를 몰아 달라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이런 인물들에게 나라를 맡긴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교육감 선거에선 합법적인 교원 단체를 두고 “손보겠다”며 공공연히 말하는 자가 넘친다. 설령 해당 단체의 일부가 약간의 편향성을 가질 수도 있고 정치적 태도가 노골적인 경우도 분명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일부가 전부의 폐단인 것처럼 떠들어 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왜 그들이 기존의 교원 단체에 대해 비판하고 별도의 조합을 꾸렸는지, 기존의 교육 체계에 어떤 문제와 악습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야말로 일반화의 오류다. 교육감 선거도 이럴진대 정치인 선거야 더 말할 것도 없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념의 대립 구조로 선거판을 꾸려갈 것인지 되물어 보고 싶다. 더 이상 무의미한 이념 논쟁으로 판을 어지럽히고 발목을 잡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생각이 다르고 뜻이 다른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치다. 하물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것은 권할 일이지 금할 일이 아니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자들은 오로지 제 이익과 안위만 생각할 뿐 정작 사회와 개인의 행복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자들인 경우가 많다. 이제 더 이상 그런 프레임에 우롱당하지 말아야 한다.

유럽 르네상스 시기의 가장 중요한 학자 중 한 사람이며 근대 자유주의의 선구자인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1466~1536년)는 자신이 사제였으면서도 ‘우신예찬(愚神禮讚·Encomium Moriae, 정확히 옮긴다면 바보 예찬)’을 통해 교회의 타락상과 부패를 고발하고 성직자의 위선과 신학자의 허구성 등을 야유하고 풍자했다.

그는 책에서 어리석음의 여신인 모리아를 화자(話者)로 등장시켜 어리석음을 통해 진정으로 현명한 것이 무엇인지 밝혔다. 에라스뮈스는 어리석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광대 같은 부류의 바보와 가장 똑똑한 체하는 지식인이나 현자 부류의 바보가 있다고 말하면서 바로 이 똑똑한 바보들을 풍자했다. 실제로 그 책은 훗날 루터에 의한 ‘유럽 교회의 개혁(The Reformation)’에 큰 영향을 미쳤다. 흔히 ‘우신예찬’만 기억하지만 그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병기한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출간하기도 했는데 이것 역시 사제가 성서 해석을 독점하는 현상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었다. 에라스뮈스는 교회를 비판하는 동시에 교회가 복음의 본질로 회귀할 것을 역설했다. 그는 중세의 가톨릭 교회를 비판하는 동시에 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회귀할 것을 역설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마도 신학자들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지나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거만하고 화를 잘 내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600개에 달하는 논거를 한 조(組)로 묶어 내 주장을 취소하도록 몰아세울 것이다. 내가 그것을 거절하면 그들은 즉각 나를 이단자로 선언할 것이다. 스콜라 신학자들이 추구하는 방법은 난해한 것들 가운데 가장 난해한 것을 더욱 난해하게 만들 뿐이다.”


에라스뮈스의 태도를 돌아보라
개혁가 마틴 루터(그도 역시 수도회 소속의 사제였다)도 에라스뮈스의 지지를 여러 번 요청했지만 루터의 과격성을 꺼려 거부했다. 물론 그 역시 비판 자체에 관심이 있었지 체제에 근본적으로 반기를 들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양극단의 어느 쪽에도 가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야말로 철저히 중립적이었다. 그래서 말년에는 가톨릭 진영과 개신교 진영 사이에서 곤경을 겪었다.

에라스뮈스는 교회에 대한 루터의 비판이 옳다고 보았지만 은총, 자유 의지, 예정설 등의 중요한 교리에서는 루터와 의견을 달리했다. 그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긴 것은 루터의 격렬한 언동이 교회 내 강경 세력의 입지를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그는 루터의 격렬한 언동보다 정중한 중용을 택했다. 하지만 관용과 타협의 정신은 개신교회와 가톨릭교회 양측의 보수적 입장 사이에서 설 자리를 잃게 만들었을 뿐이다. 이런 환경은 그를 ‘의롭고 외로운 보편 인간’으로 고립시켰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결코 고립되지 않았고 지금 우리에게도 큰 울림으로 남아 숨 쉰다. 그는 ‘견줄 수 없는 인간이자 불멸의 박사’로, 혹은 ‘세상의 빛’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어떤 이는 “에라스뮈스는 표준적 인간들 위에 우뚝 솟아 있다”며 극상의 존경을 표했다.

“전쟁은 전쟁을 낳고, 늘 양편이 옳다고 대립하는 데서 발생한다.” 에라스뮈스는 “전쟁이 일어날 경우 모든 나라의 정신적인 사람들과 교양 있는 사람들이 서로 절교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각의 대립과 차이를 격한 파벌성으로 강화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이다. “군주는 전쟁을 일으키기보다 좀 더 사려 깊게 생각해야 하며 자기 권리를 무조건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에라스뮈스의 비판은 지금도 우리에게 고스란히 적용된다. 그 군주를 대통령으로, 장관으로, 정치인으로, 기업인으로, 교육자와 성직자로 치환해도 의미는 그대로 유효하다.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할 뜻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말만 들으라고 강요하고 때론 왜곡하며 조작과 분칠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분단에 기생하는 낡은 정치, 철딱서니 없는 이념의 대립으로 나누고 자신과 생각과 뜻이 다르면 걸핏하면 ‘종북’이니 ‘수꼴’이니 내모는 자들의 민낯을 똑바로 째려봐야 한다. 아직도 이런 한심한 프레임 속에서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자들이 바로 세월호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들이다. 자기 자신부터 개조해야 할 사람들이 정작 자기는 쏙 빼놓은 채 ‘미개한 국민’을 순치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이들에게 에라스뮈스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신학자들과 그리스도교적 삶의 스승이라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그토록 싫어한 일을 제일 먼저 부채질하고 불붙여 놓고 충동질한 자가 바로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다.”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의 진정한 가치와 뜻을 헤아리지도 못하고 그 실천도 외면하면서 제 목소리만 강요하는 선동가들을 이제는 외면해야 한다. 서로를 존중하고 좋은 것은 받아들이며 날카롭게 비판할 때 사회가 발전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귀부터 활짝 열어야 한다. 이제는 선택해야 한다. 매카시인가, 아니면 에라스뮈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