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연임 하영구 행장과 신임 칸왈 행장 리더십 차이 뚜렷…‘적극적 소통 필요’ 지적도

[비즈니스 포커스] ‘점포 폐쇄’ 칼바람 속 씨티·SC 온도차
국내에 진출한 대표적 외국계 은행인 한국씨티은행(이하 씨티은행)과 한국SC은행(이하 SC은행)이 최근 대대적인 점포 폐쇄를 단행하는 가운데 노사 갈등 해결에서 극명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씨티은행은 노사 관계가 악화 일로로 치닫고 있지만 SC은행은 원만하게 지점 폐쇄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씨티은행은 전체 점포 190개 중 약 30%에 달하는 56개 지점을 올 상반기에 폐쇄하기로 했다. 은행 지점을 찾는 고객 수가 크게 줄어 점포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씨티은행 측은 향후 영업 구역을 서울·부산·대구·대전·인천·광주 등 전국 6개 주요 도시로 좁히고 수익성이 보장되는 부유층 대상 영업에 집중할 방침이다. 실제로 2011년 4567억 원인 씨티은행의 연간 당기순이익은 2013년 2191억 원으로 반 토막이 났다.

씨티은행은 4월 9일부터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매주 5~10개의 폐쇄 예정 점포 명단을 공개해 왔다. 1차 폐점이 공지된 수원역과 인천 경서동, 서울 도곡매봉, 압구정미성, 이촌중앙 등 5개 지점은 이미 문을 닫았고 나머지 51개 지점은 오는 6월 20일까지 폐쇄할 예정이다.

씨티은행 측은 이번 지점 통폐합을 수익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인력 재배치라고 강조하며 구조조정이 언급된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점포가 통폐합된 직원들은 본사나 인근 지점으로 파견돼 영업점 감소에 따른 대량 해고 사태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청계천로 다동에 자리한 본사 사옥 매각도 검토한 바 있지만 이는 현재 본사와 신문로 빌딩(구 씨티은행 건물)에 흩어져 있는 직원들을 한데 모으기 위한 방안일 뿐 한국 사업을 철수하거나 구조조정 자금 마련 용도가 아니라고 못을 받았다.


씨티 노조, 10년 만에 파업 돌입
하지만 씨티은행 노동조합 측은 ‘지점 폐쇄=구조조정’으로 받아들이고 5월 7일부터 1단계 파업에 들어갔다.

씨티은행 노조는 지점당 10~15명의 직원이 근무하기 때문에 이번 지점 폐쇄로 650여 명의 직원이 정리 해고 대상이 될 것이라며 불안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씨티은행은 최근 3년 새 1000여 명의 인력을 감축하고 점포도 100개 가까이 줄였다. 56개 점포 폐쇄 발표에 앞선 지난 4월 전국 영업 본부장에게 산하 지점장들을 평가해 ‘통과 그룹’과 ‘의심스러운 그룹’으로 나눈 서류를 본사에 제출하게 한 조치를 두고 노조가 “구조조정을 염두에 둔 사전 분류 작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이번 1차 파업의 핵심은 태업을 통한 본사 경영진 압박이다. 이 가운데 우선 영어 사용 전면 거부가 가장 눈에 띈다. 외국계 은행인 만큼 영어를 쓰지 않음으로써 사측에 타격을 가하겠다는 것이다. 씨티그룹 본사와 전화회의(콘퍼런스 콜) 거부, 점포·부서별 릴레이 휴가, 내부 보고서 작성 거부 등도 진행하기로 했다. 노조 측은 1단계 파업 기간 동안 사측과 협상이 결렬되면 예·적금, 카드 등 신규 상품 판매 거부의 2단계 파업을 거쳐 3단계인 영업점별 순회 파업, 시한부 총파업 등에 들어간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예상보다 ‘장기전’이 될 가능성도 큰 것으로 전해진다.

씨티은행 노조는 씨티은행의 수익성이 나빠진 주된 요인으로 지점 고객 감소보다 본사가 챙겨가는 경영 자문료 등 해외 용역비가 높다는 점을 꼽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씨티은행은 지난해 1390억 원을 경영 자문료로 미국 씨티그룹에 지급했다. 지난해 씨티은행의 순이익은 2191억 원에 불과했으니 순익의 63.4%를 보낸 것이다.

김영준 노조위원장은 지난 5월 9일 기자 간담회를 열고 “씨티은행이 해외 용역비로 본사에 9년간 7541억 원을 반출했다”며 “이는 세금 탈루와 분식회계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본점 등에 배당금이 아닌 용역비로 해외에 송금할 경우 국내에 낼 세금이 3분의 1로 감소되기 때문에 용역비로 가장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씨티은행 측은 “다국적기업의 계열사가 본사 용역 서비스를 받고 경비를 부담하는 것은 일반화된 원칙”이라고 반박했다.

지점 통폐합을 놓고 씨티은행과 노조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노조는 직원들과 적극적인 소통 없이 ‘묻지마 식 지점 폐쇄’를 발표한 하영구 씨티은행 행장에 대한 반감을 나타내고 있다.
씨티은행에서 다섯 번 연임하며 본사로부터 큰 신임을 얻고 있는 하 행장이 지난해 받은 연봉은 28억 원으로, 국내 금융지주와 은행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연봉 순위 1위다.

이에 대해 씨티은행 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하 행장의 1년 연봉은 비정규직 10년 차 1명이 받은 연봉을 쓰지도 먹지도 않고 고스란히 저축했을 때 100년을 모아야 하는 금액”이라며 “연봉에 비해 고객정보 유출, 대출 사기, 수익 감소 등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은 전혀 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노조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취임 이후 3차례나 600여 명의 직원들을 내보냈다”고 비판했다.

한편 SC은행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SC은행 역시 올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수도권 점포 100개를 정리할 계획이었지만 노조의 의견을 수용해 절반인 50개만 정리하기로 합의했다. 계획대로 시행되면 SC은행 지점은 300개 정도로 축소된다. 통폐합되는 점포의 직원들은 희망하는 점포로 재배치되거나 세일즈(영업) 인력으로 운용될 예정이다. ‘점포 폐쇄’와 관련해 잡음이 끊이지 않는 씨티은행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노사 양보한 SC은행
SC은행의 2013년 당기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40% 하락한 1169억 원(연결기준)을 기록해 순이익 감소 폭만 놓고 보면 씨티은행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C은행이 ‘평화롭게’ 점포 폐쇄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데는 지난 3월 부임한 인도 출신 아제이 칸왈 신임 행장의 과감한 협상력이 주효했다는 게 금융권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칸왈 행장은 취임 열흘 만인 지난 4월 11일 노조와 2013년도 임금단체협상을 타결 지어 눈길을 끌었다. 이는 지난해 8월부터 끌어 온 협상이었다.
[비즈니스 포커스] ‘점포 폐쇄’ 칼바람 속 씨티·SC 온도차
칸왈 행장은 그동안 쟁점이었던 각종 사내 복지 문제에 대해 노조의 요구를 적극 수용했다. SC은행 측은 노조 측이 요구한 대로 비정규직의 임금을 0.5% 올리고 10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에 대해 자녀 학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노조는 당초 요구했던 정규직 임금 2.8% 인상에서 한 발짝 물러서 2.3% 인상에 합의했고 협상이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그뿐만 아니라 올 초 본점 슬림화에 따라 직원 200명의 특별 퇴직을 단행했던 SC은행은 칸왈 행장 취임 후엔 당분간 추가적인 대규모 인력 조정이 없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SC은행 노조 관계자는 “전임 리처드 힐 행장과 18차례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서도 끝내 합의를 보지 못했던 2013년 임단협 협상을 칸왈 행장과 첫 면담에서 타결한 것에 대해 고무적으로 평가했다”며 “올해 은행의 상황이 어려운 것을 노조도 충분히 예상하는 만큼 칸왈 행장의 긍정적인 협상 자세에 화답한 것”이라고 말했다.

SC은행 측은 “칸왈 행장은 현장의 목소리를 중시하는 스타일로 취임 직후부터 매주 주요 부서별로 직원들과 미팅을 갖고 애로 사항을 적극적으로 들으려고 해 호응이 높다”고 전했다.
한 금융권 전문가는 “외국계 은행의 체질 개선은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지점 수를 줄인데 따른 경쟁력 약화로 수익성이 또 떨어지는 악순환으로 한국 사업을 접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불황 속 지나친 효율주의 방침에다 고용 불안 등 이중고에 휩싸인 직원들과 은행 간의 적극적인 소통만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