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금융 포함한 그림자 금융 47조 위안 육박…섣불리 손댈 수 없는 ‘뜨거운 감자’
중국 경제 전문 뉴스 포털인 허쉰망(和訊網)은 지난 5월 5일 중국 최대 철강 공급 업체 중국철로물자유한공사가 2013년 75억 위안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국유 기업이 이와 같이 대규모의 적자를 기록한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의 리스크를 방치해 온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중국철로물자유한공사는 철도 관련 자재와 강철 등을 공급하는 업체로, 지난 수년 동안 급성장해 왔다. 2011년부터 3년 연속 포천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2012년 영업 매출은 371억7200만 달러(약 37조 원)였다. 하지만 이 회사가 2013년 76억5100위안 적자로 돌아선 것은 2012년 하반기 이후 일부 철강 무역 업체의 계약 불이행 때문이다. 2013년 철강 무역에서 철강 생산, 석탄 무역 업체로 리스크가 번진 것이다.
고성장 멈추자 곳곳서 부실 징후
하지만 중국철로물자유한공사가 외부 리스크에 큰 타격을 입은 더 깊은 내막은 그림자 금융을 통한 연계였다. 자회사를 통해 일부 철강 무역 업체를 대상으로 그림자 금융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중국 철강 무역 업체 중 일부가 유동성 위기를 맞았고 그에 대한 타격은 은행뿐만 아니라 그림자 금융으로 연결된 국유 기업과 상장 기업에도 피해를 입힌 것이다. 허쉰망은 중국철로물자유한공사의 지난해 적자 전환은 그림자 금융을 통해 연결된 중국 기업 그리고 중국 산업·경제의 연쇄 붕괴라는 위험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진단했다.
중국의 일부 기업들은 ‘가짜’ 은행으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중국의 한 조선 업체는 총수입의 3분의 1을 금융 사업에서 얻고 있다. 철강·조선 등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이 기업들은 정부 소유라는 지위 덕분에 은행권에서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 이 중 일부를 투자나 자금으로 이용하는 대신 ‘돈놀이’로 수익을 올린 것이다. 이들은 채산성이 나쁜 중소기업이나 부동산 개발업자를 대상으로 금융 사업을 벌여 왔다. 이런 식으로 빌려준 그림자 대출은 모두 회수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중국 경제에서 치명적인 위험 요소로 판단되고 있다.
중국의 기업들은 급속한 성장 전략을 추진해 오면서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리스크 관리는 충분하지 않았다. 사실 금융 시스템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은 중국은 글로벌 충격의 여파를 흡수하는 전략으로 그림자 금융이라는 선택이 주효했다. 2007년 이후 미국발 금융 위기가 세계를 강타했을 때 중국 정부는 4조 위안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쏟아냈다. 이를 통해 넘쳐난 자금은 여러 기업에 분산되기보다 국유 기업이나 상장 기업에 집중됐다. 이들 기업은 손실 위험이 낮기 때문에 중국 국영 은행들은 이런 기업들에만 대규모 대출을 승인했다.
또한 정부의 예금 금리에 대한 규제가 결과적으로 중국 경제 전반에 그림자 금융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중앙정부·지방정부는 특정 부분에 대한 대출 제한, 은행별 대출 할당량 감소, 위험 거래 제한, 신용 확대 억제 등 여러 규제를 펼쳐 왔다.
민간 중소기업들은 제도권 금융에서의 융자는 가로막혀 있었기 때문에 높은 금리의 대출 상품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만 해도 중국의 초고속 성장의 기세를 타고 중국 기업들이 승승장구했기 때문에 고금리도 감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4년 중국의 고성장 속도가 주춤해지고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면서 고금리의 부담이 커져 그림자 금융의 리스크를 키웠다. 그림자 금융이 중국 경제를 위협하는 뇌관이라는 경고는 어제오늘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최근 실제 회사들의 채산성이 악화되고 회사채 부도 사태까지 겹치면서 그림자 금융의 부작용은 최고조로 높아진 상태다.
문제는 중국의 그림자 금융이 중국 경제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국유 기업뿐만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의 3000개 이상 사모 펀드에 따른 그림자 금융도 있다. 또한 비은행권의 그림자 금융 상품에는 신탁과 자산 관리까지도 포함돼 있다. 그래도 이러한 그림자 금융 섹터는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불법 금융사와 개인 간에 이뤄지는 그림자 금융 거래도 만연한 것으로 보인다. 불법 고리대금업자들은 자본가나 은행원을 배후에 두고 개인 사업자들에게 초고금리 융자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해주고 있다.
특히 신탁 자산과 자산 관리 상품(WMP)은 중국 그림자 금융의 중요한 구성 요소다. 신탁 회사는 대출이나 유가증권에 투자할 투자자를 모집한다. 이렇게 모은 자금을 제도권 은행의 규제 때문에 융자를 받지 못하는 기업들, 즉 리스크가 큰 기업들에 대출한다. 물론 고위험 투자이기 때문에 고수익이 보장된다. 낮은 은행 금리에 비해 연간 9~12%의 높은 수익률을 올리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높은 수익률 매력 때문에 지난 수년 동안 연 50%씩 성장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실적 배당형 상품과 유사한 WMP도 투자처를 명확히 밝히지는 않지만 은행 예금 금리보다 100bp(1bp=0.01% 포인트) 이상 수익률이 높고 짧게는 3개월 만에 수익을 올릴 수 있어 소액 개인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금융 개혁 재촉하는 국제 신용 평가사들
중국의 그림자 금융 규모는 추정 기관마다 다르다. 일반적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신탁 상품과 WMP를 합쳐 약 20조1000억 위안으로, GDP 대비 36.2% 수준이다. 지난해 말 중국 국무원이 정의한 대로 사금융 시장을 포함한다면 그림자 금융은 총 46조7000억 위안으로, GDP 대비 84.3% 규모다.
그림자 금융의 위험성을 중국 정부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2014년 초 중앙정부는 그림자 금융을 억제하기 위한 개혁안을 발표했다. 그림자 금융으로 돈이 흘러가지 않도록 은행의 특정 대출과 자산 이동에 대한 규제를 더욱 엄격하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신탁회사나 브로커 사이의 그림자 금융 커넥션은 제한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그림자 금융을 통한 자금 흐름이 끊기면 실물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제도권 금융 대출 대신 그림자 금융으로 사업 자금을 조달하던 부동산 개발, 건설 업계 기업들이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해 부도 처리될 수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중국 기업들의 부채 규모를 지난해 말 기준으로 12조1000억 달러(약 1경2900조 원)로 추정했다. 또한 공공연하게 이용할 수 있던 그림자 금융이 차단되면 더욱 지하에서 암거래를 촉발해 금리를 더 상승시키는 역효과도 예상된다.
중국 정부로서는 그림자 금융을 더 이상 방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섣불리 칼을 들이댈 수 없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살펴보면 중국 정부가 그림자 금융 통제에 실패할 때 우선 제3금융(대부 업체), 제2금융(신탁·투자 상품 개발한 증권사와 투자신탁 회사)에 이어 제1금융권인 은행의 신탁 상품도 부도로 이어진다. 물론 그림자 금융을 이용한 기업들도 모두 도산의 위기를 맞는다. 금융시장 불안으로 일반 기업들도 유동성이 악화되고 투자와 고용이 위축된다. 이는 가계 소비 위축, 경기 침체, 부동산, 건설업 위축 등으로 이어지며 도미노처럼 하나씩 중국 경제의 몰락을 향해 쓰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림자 금융이 급속하게 무너진다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절반 이상 꺾일 수 있다고 추정한다. 지난해 7.7%를 기록한 중국의 GDP 증가율이 3~4%대로 하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최악의 경우 중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국제 신용 평가 기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에 대해 금융 체계 개혁 속도를 더 높이라고 주문하고 있다. 기업들의 부채와 그림자 금융 규모가 더 커지기 전에 칼을 대야 한다는 얘기다. 국제 신용 평가사 피치는 ▷은행들의 자산 관리 상품 판매 내용을 확실하게 구분하고 ▷신탁 상품 판매 내역과 신탁 상품의 기초 자산을 투명하게 회계에 반영하며 ▷기업들이 지나치게 대출을 많이 받을 수 없도록 신용 보증을 제한하는 규제를 시행하라고 제안했다.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
그림자금융은 은행과 유사한 기능을 하지만 중앙은행의 유동성 지원이나 예금자 보호를 원활하게 받을 수 없어 시스템적 위험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금융 상품과 영역을 총칭한다. 그림자 금융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확산시킨 원인으로 지목돼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최근 중국에서 비은행 금융회사의 고위험 금융 상품뿐만 아니라 불법 융자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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