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 계열화’가 발목 vs ‘캐시카우’ 매각으로 승부수
강덕수 STX그룹 전 회장과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평사원에서 시작해 대기업 총수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하지만 신화는 영원하지 않았다. 계열사 부도와 그룹 해체의 수모를 겪으며 성공 극장도 막을 내렸다. 비슷한 흥망사를 쓸 것 같았던 두 사람의 행보. 그런데 최근 이들의 상황이 극명하게 갈린다. 강 전 회장이 구속 수감된 데 반해 윤 회장은 법정 관리를 졸업하고 경영 복귀로 재기를 노리고 있다. 무엇이 이 둘의 얄궂은 운명을 끌어낸 것일까. 두 사람의 경영은 무엇이 어떻게 달랐던 걸까. 공정거래위원회가 매년 발표하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지정 현황을 보면 한국 대기업의 자산 규모 순위를 파악할 수 있다. 자산 총액이 5조 원 이상인 기업을 추려 상호출자를 제한한다는 내용인데, 올해 선정된 기업집단은 모두 63개다.공정위 자료에는 전년과 비교해 상호출자 대상에서 제외된 기업도 발표되는데, 올해는 4개사가 이른바 ‘5조 클럽’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맛봤다. 대표적인 곳이 STX그룹과 웅진그룹이다. STX는 STX팬오션·STX조선해양·STX중공업 등 그룹의 핵심 계열사가 제외되면서 자산 규모가 24조3000억 원(2013년 기준)에서 3조3000억 원으로 푹 꺼졌다. 웅진도 서울상호저축은행·극동건설 등 주력 계열사가 제외되면서 5조9000억 원(2013년 기준)의 자산이 3조6000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STX와 웅진은 2009년 이후 5년 연속 상호출자제한 대상 기업에 선정된 대기업이었다. STX는 자산 규모 19위, 웅진은 58위에 올랐다. 하지만 불운의 전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전년(2012년)에 비해 계열사 수가 가장 많이 감소한 기업 순위에서 STX가 4위(5개)에 올랐고 웅진은 당기순이익이 가장 많이 감소한 기업(마이너스 3조2000억 원) 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웅진은 전년 대비 자산 규모 순위가 가장 많이 떨어진 기업(39위→58위)이 됐다. 두 기업은 또 나란히 부채비율이 200% 이상인 기업집단 11개(민간기업 기준)에도 이름을 올렸다.
눈에 띄는 경영 악화는 결국 STX와 웅진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현재 STX그룹은 사실상 공중 분해된 상태다. 그룹 지주사였던 STX는 종합상사로 전환되면서 채권단이 출자 전환을 허용해 간신히 상장폐지를 면했다.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STX조선해양은 2013년 7월 계열사 중 처음으로 채권단과 자율 협약을 신청했다. 또 다른 주축인 STX팬오션(현 팬오션)은 법정 관리 중이다. STX에너지는 GS그룹에 매각되면서 사명도 GS이앤알로 바뀌었다. 역시 채권단과 자율 협약 중인 STX중공업은 부실 사업 매각과 STX엔진과의 합병 등 강도 높은 경영 개선안이 요구된 상태다.
최고경영자(CEO)의 상태는 더 딱하다. 지난 4월 15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강덕수 전 회장을 구속 수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의 사례에서 보듯 대기업 오너에 대한 법 적용이 엄격해진 추세이긴 하지만 강 전 회장의 전격 구속은 파장이 컸다.
강 전 회장은 STX건설과 STX다롄 등에 대한 계열사의 부당 지원을 지시해 회사에 3100억 원대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STX중공업의 자금으로 재정난에 빠진 다른 계열사의 기업어음(CP)을 사거나 연대보증을 지시한 혐의다. 더욱이 이런 과정에서 540억 원대의 개인 횡령 혐의까지 받고 있다. 부실을 감추기 위한 분식회계 규모도 2조3000억 원에 이른다. 사상 최대 규모다.
웅진그룹은 2012년 9월 법정 관리를 신청했다. 2013년 1월 그룹의 캐시카우였던 코웨이를 MBK파트너스에 1조 원대에 팔았다. 웅진케미칼과 식품 등 핵심 계열사들도 역시 매각했다. 웅진에너지와 옹진플레이도시는 각각 올해와 내년에 매각할 예정이다. 야심차게 인수했던 극동건설은 지분 전량을 무상소각했다. 이에 따라 최대 주주는 채권단인 신한은행으로 바뀐 상태다. 현재 웅진그룹에 속한 계열사는 지주사인 웅진홀딩스를 비롯해 웅진씽크빅과 북센(출판 유통) 등 8개사뿐이다.
그나마 CEO의 사정은 STX에 비해 나은 편이다. 그룹의 부실한 재무 상태를 알리지 않은 채 사기성이 짙은 CP를 발행한 것은 강 전 회장과 별다를 바 없다. 하지만 윤석금 회장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법정 관리의 특성상 그룹 경영권도 여전히 윤 회장의 손에 있다. 더욱이 CP 발행 피해액도 3100억 원대에 불과하다. 비슷한 사례인 동양그룹의 피해 규모가 1조3000억 원인 것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죗값이 적다는 뜻이다.
강 전 회장과 윤 회장은 일찍이 한국 기업사에선 찾아보기 힘든 ‘돈키호테’들이었다. 1960년대 이후 성장해 온 국내 대기업들은 모두 관 주도의 성장 특혜를 바탕으로 오늘날 글로벌 기업의 초석을 닦을 수 있었다. 이병철 삼성그룹 전 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전 회장 등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창업 1세대들이다. 이에 비해 강 전 회장과 윤 회장은 샐러리맨에서 시작해 대기업 총수 자리에까지 올랐다. 다른 대기업 오너들과는 태생 자체가 다르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늘 ‘샐러리맨 신화’라는 명찰을 달고 살았다. 1980년대 이후 등장한 기업 가운데 금융업인 미래에셋을 제외하면 일반 제조업 분야에선 STX와 웅진이 대기업으로 성장한 몇 안 되는 사례여서 더욱 빛을 발했다. 더욱이 STX그룹은 2000년 이후 등장한 유일한 대기업이었다.
신생 대기업, 비슷한 몰락 시기, 샐러리맨 신화 같은 공통점은 두 그룹의 CEO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소재다. 하지만 현재 이들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린 상태다. 강 전 회장이 배임과 횡령 등으로 구속 수감된 데 비해 비록 주력 계열사를 매각하며 그룹 해체를 겪었지만 윤 회장은 여전히 경영권을 쥐고 회생 절차에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다. 실제로 웅진은 모태인 웅진씽크빅과 태양광 분야인 웅진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태양광 업황이 개선되면서 경영 정상화에 대한 시장의 기대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웅진플레이도시와 함께 매각 예정인 에너지 부문도 방어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할 정도다.
‘한 우물’이냐 ‘다각화’냐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그룹 해체라는 초유의 위기 이후 두 신화의 주인공들이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된 것은 ‘성장 전략’의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많다. ‘한 우물’과 ‘다각화’의 차이다.
강 전 회장은 1973년 쌍용양회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외국자본에 넘어간 쌍용중공업이 다시 매물로 나오자 이를 사재를 털어 사들였다. 평사원 출신의 재무책임자(CFO)가 입사 28년 만에 CEO가 된 것이다. 2001년 기업명을 STX로 바꾼 후 거칠 것 없는 M&A가 이어졌다. 2001년 법정 관리 중이던 대동조선(STX조선해양)을 매입했고 2002년에는 산단에너지(STX에너지), 2004년에는 범양상선(STX팬오션)을 사들였다. 나이 쉰을 넘겨 샐러리맨에서 그룹 회장으로 변신에 성공한 강 전 회장은 불과 창업 10년 사이에 재개 서열 12위에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STX의 눈부신 성장 배경에는 철저한 수직 계열화의 원칙이 있었다. ‘해운과 조선’이라는 양대 축을 중심에 둔 성장 전략을 말한다. 쉽게 도식화하면 중공업·엔진에서 만든 엔진을 가지고 조선해양이 배를 만드는 식이다. 배를 사 화물을 나르는 건 팬오션의 몫이다. 이런 식의 지배 구조는 경기가 좋고 여건이 맞을 때는 찰떡궁합을 자랑하며 추진력을 얻는다. STX가 그랬다. 2004년 대동조선의 연간 선박 건조 능력은 14척, 매출액은 4000억 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STX조선해양으로 이름을 바꾼 5년 뒤엔 건조 능력 47척, 매출 1조6000억 원의 거대 조선 기업으로 환골탈태했다. 운도 따랐다. 바로 시기다. IMF 위기는 상처만큼이나 많은 숙제를 해결한 기회이기도 했다. 국내 경제와 기업의 체질이 바뀌면서 죽었던 수출이 살아나기 시작하자 가장 큰 수혜를 본 업황이 바로 조선과 해운이었다. 물건을 실어 나를 배와 해운사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운이 따를 수만은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오자 상황은 급변했다. 국제경제가 얼어붙으면서 교역량이 급감한 것이다. 주요 선진 시장이었던 미국과 유럽이 폭탄을 맞으면서 국내 수출 기업들도 휘청대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건 STX를 비롯한 전 세계 조선·해운 업계였다.
수직 계열화는 운영 효율 면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다. 다만 경기가 좋아 수급 여건이 안정된 상태라는 전제가 깔린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면 효율은 사라지고 리스크만 커진다. 한 기업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 도미노처럼 계열 기업에도 악영향이 돌아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위기와 업황을 내다보지 못한 무리한 해외 투자도 이어졌다. 2007년에는 글로벌 3대 크루즈선사인 야커야즈(현 STX유럽)를 인수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인수 금액만 1조7000억 원에 달하는 초대형 인수·합병(M&A)이다. 2009년에는 2조 원을 투자해 중국 다롄에 STX다롄을 세웠다. 벌크선 위주의 기존 사업 구도를 재편하고 비좁은 국내 조선소에서 벗어나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강 전 회장 특유의 뚝심으로 이뤄 낸 결과였다. 그러나 경영 환경 악화는 투자의 부메랑이 돼 날아왔다. 2012년 들어 STX그룹은 전체 매출액이 18조8300억 원에 달했지만 STX조선해양이 6300억 원의 순손실을 봤고 STX팬오션 역시 4500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그룹 전체로는 1조4000억 원의 순손실이었다. 일련의 과정에서 강 전 회장의 의사결정이 절대적이었음은 물론이다.
유동성 개선을 주문하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랐지만 조선·해운 중심의 그룹 구조는 이후로도 변하지 않았다. 실제로 2012년 당시 그룹 주요 계열사의 재무 현황을 살펴보면 STX팬오션이 그룹 전체 자산의 32.7%(6조6526억 원)를 차지하고 있다. 이어 STX조선해양이 5조9592억 원으로 29.3%, STX엔진이 2조277억 원으로 9.9%다. 엔진·조선·해운이 그룹 전체 자산의 71.9%를 차지하고 있던 것이다.
강 전 회장이 한 우물에 올인했다면 웅진그룹은 돈 되는 분야에 두루 손을 뻗쳤다. 사업 분야의 다각화다. 세계에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가장 많이 파는 사람이었던 윤 회장은 1980년 자본금 7000만 원으로 혜임인터내셔널을 세웠다. 고교 학습지를 만들어 팔던 혜임은 1983년 들어 웅진출판으로 사명을 바꾸며 그룹의 모태가 됐다. 종합 출판사로 이름을 알리던 웅진출판은 2005년에 웅진닷컴에서 현재의 사명인 웅진씽크빅으로 변신했다.
출판과 아동용 학습지로 출발했지만 이후의 그룹 확장은 ‘유통을 기반으로 한 사업 다각화’로 정리할 수 있다. 1988년 웅진식품, 1989년 웅진코웨이를 세우며 본격적인 성장 가도에 오른 것.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는 알짜 계열사인 코리아나화장품을 매각해 위기를 탈출하는 순발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투명 경영 강조한 윤 회장…차명 계좌‘0’
이후로도 윤 회장의 사업 확장 DNA는 꺾이지 않았다. 2006년에는 태양광 사업에 눈을 돌려 웅진에너지를, 2008년에 웅진폴리실리콘을 세웠다. 2007년에는 극동건설을 인수했고 2008년에는 새한(웅진케미칼), 2010년에는 서울저축은행을 사들였다. 교육·출판에서 시작한 기업이 30년 만에 생활가전·태양광·화학·건설·금융까지 아우르는 재계 30위권 대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2011년 웅진그룹의 총자산 규모는 8조8000억 원, 매출액은 6조1500억 원을 기록했고 종업원 수는 4만5000명에 달했다.
돈 되는 일은 귀신 같이 알아본 영업맨 출신 CEO의 전략에 브레이크가 걸린 건 역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다. 그룹의 사활을 걸었던 태양광 사업이 부진해졌고 건설 경기까지 완전히 꺾이면서 극동건설이 발목을 잡았다. 태양광과 건설은 그동안 웅진의 주력 계열과 전혀 다른 분야였다. 물론 출판과 정수기 사업 사이의 관련성을 찾기도 어렵다. 하지만 엄밀히 따졌을 때 두 사업은 모두 유통을 바탕으로 한다. 방판의 신이었던 윤 회장의 주특기가 바로 유통이다.
성공 가도를 보장했던 유통 베이스를 버리고 신사업 분야를 택한 건 공교롭게도 금융 위기 직전이었다. 웅진에너지는 미국의 선파워와 조인트벤처 계약으로 2006년 합작 투자사 형태로 설립했다. 소비재 기업인 웅진이 생산재 기업으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이듬해에는 대전 대덕테크노밸리의 4만6530㎡ 부지에 실리콘 잉곳 생산 공장을 준공했다. 결정타는 건설이다. 2007년 ‘먹튀’ 논란을 빚었던 미국계 사모 펀드 론스타에서 사들인 극동건설의 인수가는 6600억 원이다. 시장 예상가보다 2배나 비쌌지만 건설업에 뛰어들겠다는 윤 회장의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후 사업 정상화를 위해 극동건설에 쏟아부은 자금만 4400억 원이다. 1조 원이 넘는 돈을 투입했지만 인수 5년 만인 2012년 자금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부도를 맞았다. 웅진케미칼 인수, 태양광 투자 등이 겹치면서 유동성 위기가 닥쳤고 건설 경기까지 급속히 얼어붙은 때문이다. 극동건설 부도는 결국 그룹 전체 해체라는 도미노로 이어졌다.
창업 30년 만에 지주사 법정 관리와 그룹 해체의 아픔을 맛봤지만 수습 과정만큼은 ‘역시 윤석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당초 채권단과 합의했던 10년간 분할상환은 총 3번에 걸쳐 2년도 안 되는 시기에 이뤄졌다. 주요 현금원이었던 웅진코웨이 매각이 결정적이었다. 8500억 원대의 매각 대금으로 5000억 원을 갚았다. 웅진식품도 시장 예상가를 훌쩍 넘는 1150억 원에 팔았다. 웅진케미칼 역시 시장 예상가의 두 배인 4300억 원에 넘겼다.
웅진홀딩스가 법정 관리를 졸업하면서 윤 회장도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2012년 10월 회생 절차가 시작된 지 1년 4개월 만의 초고속 복귀다. 강 전 회장이나 동양그룹 사태와 달리 구속 수사를 면한 건 윤 회장 특유의 투명 경영 덕이라는 분석도 있다. 윤 회장은 검찰 수사 과정을 통해 30년간 단 한 개의 차명 계좌도 운용하지 않았고 개인 명의의 은행예금 계좌도 한 개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84%에 이르는 채무 변제율은 국내 기업 역사상 최고 수준이다.
인터뷰 | 장세진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가 본 몰락의 원인
“현금 흐름 관리 부실이 화 키웠다”
장세진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전략과 다국적기업 경영을 전공한 기업 경영전략 전문가다. 2007년 학술진흥재단이 선정한 인문사회 부문 국가 석학으로 선정된 그는 올 초 삼성 사장단 회의에 강사로 초청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STX와 웅진의 공통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두 기업은 위기 이후를 기회로 삼아 성장했다. STX는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조선업에 뛰어들었고 웅진도 정수기·씽크빅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M&A로 성공한 것도 비슷하다. 강 전 회장은 싸게 나온 매물(조선소)을 인수해 구조조정을 잘했다. 이후엔 경기 호황을 바탕으로 투자금을 회수해 안정화를 이룬 후 재투자하는 방식이었다.
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나.
두 사람 다 성공한 이들이다. 성공하려면 물론 능력이 중요하지만 운도 그 못지않게 좋아야 한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은 외환위기 이후 호황이라는 시기적 운이 작용해 사업을 키워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실패한 경영자들의 공통점은 모든 것을 자기 실력으로 믿는다는 점이다. 운이 세 번 좋으면 크게 성공한다는 말도 있는데, 한두 번은 운이 좋을 수 있어도 세 번째까지 좋기는 어렵다. 성공한 경영자들은 운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기 과신에 빠지기 쉽다는 뜻이다.
리스크 관리 면에선 어땠나.
자기 과신의 결과가 바로 과도한 리스크다.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하니 남들에겐 크게 보이는 위험도 얼마든지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유명한 경영자들을 보면 이상할 만큼 과도한 리스크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위험한 스키 슬로프에 도전한다든지 모터사이클·자동차 레이싱을 즐기고 에베레스트 같은 산을 오르는 식이다. 위험을 즐기는 상황까지 나아간 것이다. 2008년 금융 위기 전에는 자금력과 정부와의 커넥션이 중요했다. 자본시장도 낙후되고 노동시장도 발달하지 못해 재벌 기업이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시장과 경제가 발전하면 비경제적 요인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두 그룹의 사업 다각화 시점이 모두 위기 이전이라는 데 시사점이 있다. 2000년 이후 대부분이 다각화를 줄이는 선택과 집중 과정을 겪은 반면 이들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투자를 통한 성장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STX는 중국에 과도하게 투자하면서 망가지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돌파구를 찾은 것 같다. 실제로 중국 정부가 보조를 많이 해줬다고 들었다. 중국으로선 산업을 키우고 싶은데 기술이 떨어지니 서로 윈-윈을 노린 것이다. 웅진도 건설과 태양광 리스크가 컸다. 최근 태양광이 다시 살아나는 이유는 중국 업체나 웅진 같은 회사가 망해서다. 누군가는 망해야 하는 구조조정 과정이다. 극동건설 리스크가 가장 크긴 했다. 건설도 태양광처럼 회사가 너무 많다. 큰 곳만 살아남는 조정 과정을 거칠 것이다. 식품·학습지·정수기는 다 유통업이다. 반면 태양광과 건설은 완전히 다른 분야다. 전략 개념이 부족했다고 본다. STX는 반대다. 선박과 중공업 조선 등 수직 계열화가 완성돼 있기 때문에 불황이 오면 오히려 다 흔들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을 탓하는 주장도 있다.
그건 아니다. CEO가 잘못 경영한 것이다. 모든 기업이 해당되는 투자 메커니즘의 문제다. 투자에 비해 수익(현금)은 천천히 나올 수밖에 없다. 그때가 제일 위험하다. 두 그룹은 캐시 플로(cash flow) 매니지먼트를 잘 못했을 뿐이다. 보수적으로 경영하며 망하지 않는 회사가 훨씬 많지 않은가.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