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자 제공 국내선 불법이라 미국서 임상…황우석 트라우마 벗고 규제 완화 시급
![[비즈니스 포커스] 손발 묶인 채 ‘세계 톱’ 줄기세포 기업들](https://img.hankyung.com/photo/202102/AD.25479587.1.jpg)
미래 재생의학의 꽃이자 꿈의 치료제로 불렸지만 2010년까지만 해도 실제 상업화에 성공한 줄기세포 치료제는 전무했다. 당시 상업화가 임박한 임상시험 2~3상 사례도 세계적으로 27건에 불과했다. 미국이 13건으로 가장 많았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한국이 스페인·독일 등과 함께 3건으로 2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불과 1년이 지나자 전세가 완전히 역전됐다. 국내 바이오 기업 파미셀이 2011년 7월 심근경색 치료제 ‘하티셀그램’을 내놓았고 이듬해 1월에는 메디포스트가 무릎 연골 재생 치료제 ‘카티스템’을 선보였다. 같은 달에는 안트로젠이 크론병 누공 치료제 ‘큐피스템’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 최초의 공인 줄기세포 치료제 1~3호가 모두 한국에서 나온 것이다.
세계 공인 치료제 4개 중 3개 한국산
현재 임상시험을 통과해 정식으로 인정받은 줄기세포 치료제는 전 세계적으로 4개에 불과하다. 한국 바이오 기업의 성과에 뒤이어 미국의 오사이리스 테라퓨틱스가 ‘프로키말’을 2012년 5월 허가받았다.
줄기세포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210여 개 세포 중 하나로, 인체 내 어디에나 분포하고 있다. 배아줄기세포라는 말이 익숙한 건 초창기 줄기세포 연구가 배아줄기세포에 집중돼 있었기 때문이다. 수정된 상태의 배아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는 늘 윤리적 논란을 일으켰다. 배아를 최초의 인격체로 본다면, 줄기세포 분리 후 버려지는 배아에 대한 비윤리성을 피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왕성한 분화력으로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한다면 기형종(암 등)으로 전이될 위험성도 컸다.
배아줄기세포의 윤리성·안정성 논란을 보완하기 위한 대체재는 성체줄기세포였다. 성체(사람)의 골수·제대혈·지방 등에서 분리해 낸 줄기세포를 말한다. 성체줄기세포는 다시 자가 줄기세포와 동종 줄기세포로 나뉜다. 자가는 말 그대로 내 몸에서 얻은 줄기세포를 말하고 동종은 같은 조직에서 분리했지만 다른 사람의 몸에서 얻은 세포를 뜻한다. 현재 출시된 줄기세포 치료제는 모두 골수·제대혈·지방 등에서 유래한 성체줄기세포를 바탕으로 한다.
이런 가운데 한국이 또 한 번의 세계 최초 사례를 써냈다. 차병원 줄기세포연구소 이동률 교수팀과 미국 차병원 줄기세포연구소 정영기 교수팀은 4월 18일 “성인의 체세포를 이용해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주를 확립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살아 있는 성인의 체세포를 이용해 복제 줄기세포를 만든 세계 최초의 사례다.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과학지 ‘셀스템셀(Cell Stem Cell)’에 게재됐다. 이에 앞서 지난해 미국 오리건대 연구팀에서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주를 확립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지만 이는 사산된 태아와 신생아의 세포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성인의 체세포를 이용한 줄기세포주는 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개개인별로 맞춤형 치료가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연구진의 성과를 통해 관련 임상시험이 한국에서 진행되면 세계 최초의 체세포 복제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 임상 국가가 되는 것이다. 차병원그룹은 확립된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주를 배양해 국내 과학자들과 공동 연구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한편 차병원그룹은 현재 미국 바이오 기업 ACT와 함께 망막변성과 스타가르트병, 고도근시에 대한 임상시험을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시력이 없는 사람이 운전면허증을 딸 수 있는 수준까지 개발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임상이 성공리에 끝난다면 세계에서 유일한 배아줄기세포 유래 치료제가 될 전망이다. 또 한 번의 최초 사례다.
![[비즈니스 포커스] 손발 묶인 채 ‘세계 톱’ 줄기세포 기업들](https://img.hankyung.com/photo/202102/AD.25479588.1.jpg)
100조 원 미래 시장 잡아라
파미셀은 지난 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간경변 줄기세포 치료제 ‘셀그램-리버’에 대한 임상시험 사전 미팅도 가졌다. 임상시험 전에 이뤄지는 사전 미팅은 임상 승인 신청을 앞두고 이뤄지는 최종 절차다. 간경변으로 인한 간 이식 환자는 연간 15만 명 수준이다. 임상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수술 없이 간경변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린다.
메디포스트는 제대혈 전문 바이오 기업답게 동종 제대혈 유래 줄기세포를 이용해 ‘카티스템’을 선보였다. 2012년 1월 처음 시장에 나온 카티스템은 줄기세포를 이용한 관절염 치료제다. 동종 줄기세포가 주원료이기 때문에 자가 유래 줄기세포에 비해 사용에 제약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1월에는 히딩크 전 한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 한국을 방문해 치료를 받으면서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메디포스트는 최근 알츠하이머성 치매 치료제인 ‘뉴로스템’과 발달성 폐질환 치료제 ‘뉴모스템’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뉴로스템은 이미 2011년 임상 1상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이달부터 2상 투여가 시작됐다. 제대혈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원료로 하는데, 신경세포(뉴런)의 독성을 유발하는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을 줄이고 뇌 신경세포가 죽는 것을 억제한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세계 최초의 치매 치료 사례인 만큼 전 세계 의·약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줄기세포는 미래 재생의학의 꽃으로 불린다. 치매·실명·관절염·심근경색 등 세포 재생을 통해 치료할 수 있는 모든 질환이 치료 대상이다. 지금으로선 시장 가능성과 경제성을 측정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일부에선 100조 원 이상의 가치를 전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는 ‘차포를 뗀’ 상황과 다름없다. 먼저 연구의 기반이 되는 신선한 난자를 제공받기 어렵다. 황우석 스캔들 이후 정부는 동결 보존된 난자, 미성숙 난자, 비정상적 난자, 폐기될 난자 등만 연구에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자발적인 난자 제공도 불법이다. 실제로 차병원의 이번 성과도 비교적 쉽게 난자를 제공받을 수 있는 미국에서 이뤄졌다. 일부 업체가 무분별한 해외 시술로 무리를 빚는 것도 문제지만 경쟁력을 갖춘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규제 완화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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