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13년 만에 본관 귀환…종합상사 ‘이제 안녕’

지난 2월 20일 현대 계동 사옥 정문 앞에 현대종합상사 임직원 400여 명이 한데 모였다. 가까운 수송동 연합뉴스 빌딩으로 이사를 가기 전 마지막 기념 촬영을 하기 위해서였다. 사진 촬영을 마친 현대상사 직원들은 “이제 계동 사옥을 떠나면 언제 다시 와 보겠느냐”며 아쉬워 했다.

현대 계동 사옥은 한국 기업 및 경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 중 한 곳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이 이룬 유례없는 고도성장의 상징적 회사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현대그룹’이라면 현대그룹의 본산이자 상징이 바로 계동 사옥이기 때문이다. 계동 사옥은 1983년 완공됐다. 지하 3층~지상 14층의 본관과 지상 8층 별관이 ‘ㄴ’자 형태로 자리 잡았다.
계동 현대사옥
/김병언 기자 misaeon@ 20110401..
계동 현대사옥 /김병언 기자 misaeon@ 20110401..
복지부 세종시행으로 입주사 연쇄 이동
최근 계동 사옥은 아직 쌀쌀한 겨울바람이 남아 있음에도 마치 따뜻한 봄을 맞은 것처럼 각 회사들의 이사로 분주하다. 이곳에 있던 보건복지부가 세종시로 내려가면서 공간이 생기자 여러 범현대그룹 계열사들이 자리를 옮기거나 새로 들어오고 있는 중이다.

먼저 현대건설은 13년 만에 본관으로 복귀한다. 그간 현대건설은 대로변 본관 뒤쪽 별관에 자리 잡고 있었다. 현대건설은 보건복지부가 사용하던 본관 6층부터 10층까지를 사용하게 됐다.

현재 현대건설은 현대자동차나 현대중공업에 비해 그 규모 크게 못 미친다. 그러나 현대건설은 현대그룹의 적통을 잇는 상징적인 회사다. 건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현대그룹의 급성장을 이끈 회사이고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남긴 수많은 전설적 에피소드들이 바로 현대건설을 중심으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또 이 같은 상징성을 기반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는 기업인 출신 대통령을 최초로 배출한 회사이기도 하다.

계동 사옥의 원소유주인 현대건설은 건물이 완공된 1983년부터 본관을 사용했다. 계동 사옥, 특히 본관에 대한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애정은 각별했다. 계동 사옥 본관 15층에는 고 정 명예회장이 타계 직전까지 근무했던 회장실이 남아 있다. 그가 맨손으로 시작했던 현대그룹은 이곳을 컨트롤 타워로 1980년대를 보내며 처음으로 삼성그룹을 넘어 재계 1위로 우뚝 서기도 했다. 또 남북 경협의 상징이 된 ‘소떼 방북’과 ‘금강산 관광’을 선포했던 기자회견도 현대건설이 주인이었던 계동 사옥 본관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2001년까지 20여 년간 본관을 지켜 온 현대건설은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그보다 앞선 2000년 현대그룹은 현대자동차그룹·현대중공업그룹·현대그룹·현대백화점그룹 등으로 계열 분리됐다. 이 당시 현대건설은 고 정몽헌 회장을 중심으로 한 현대그룹에 묶였다. 그 결과 본관 역시 지분이 현대가의 여러 그룹으로 나뉘게 됐다.

이후 현대건설은 2001년 경영 악화로 채권단 공동관리인 워크아웃(기업 개선 작업)에 들어가 현대그룹의 울타리를 떠나게 됐다. 그 와중에 현대건설은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계동 사옥 본관의 지분을 매각했다. 또한 현대그룹도 본사를 계동 사옥에서 수송동 사옥으로 옮겼다. 결국 현대건설은 지분이 없는 본관을 떠나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별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이다.

현대건설이 매각한 본관 지분은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이 사들였다. 현대건설이 자금난으로 본관 지분을 매각하게 되자 현대가의 상징 건물을 외부에 넘길 수 없다는 판단에서 그랬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현대건설과 계동 사옥 본관의 인연이 다시 이어질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본관 지분을 가장 많이 소유한 현대차그룹이 2011년 채권단 관리를 받던 현대건설을 인수하면서 현대건설이 다시금 범현대의 울타리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재계를 중심으로 현대건설이 계동 본관에 재입성할 것이란 전망이 솔솔 나왔다.

실제로 현대가의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현대건설 인수 후 계동 사옥으로 출근해 “감개무량하다”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

현대차그룹 소속 현대건설이 본관으로 복귀하는 것과 동시에 별관은 같은 현대차그룹 소속 현대엔지니어링이 채우게 된다. 현대건설과 함께 채권단의 관리를 받던 현대엔지니어링 역시 2011년 현대차그룹이 인수한 기업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오랜 기간 서울 목동으로 사옥을 옮겨가 있었다. 하지만 4월 1일 기존 현대차그룹의 건설 계열사인 현대엠코와 합병이 결정되는 것과 동시에 현대엔지니어링이 계동 사옥 별관에 들어가기로 결정된 것이다. 이에 따라 현대엔지니어링은 20년 만에 계동 사옥으로 돌아온다.


현대차 국내영업본부는 강남 시대 열어
든 사람이 있으면 난 사람도 있는 법이다. 계동 사옥에는 현대건설과 현대차 국내영업본부, 현대모비스 전산센터, 현대엠코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가 있으며 현대중공업·현대종합상사·현대미포조선 등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가 입주해 있었다. 이 중 떠나는 회사는 현대중공업그룹의 현대종합상사와 현대차그룹의 현대자동차다.

현대종합상사는 현대중공업 계열사다. 현대중공업은 계동 사옥 본관 15개 층 가운데 2, 11, 12, 14층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곳은 현대중공업 계열사들이 사용 중이다. 이 중 현대종합상사는 이번에 11, 12층 사무실을 빼고 연합뉴스빌딩 14~16층으로 이전한다. 상사가 쓰던 사무 공간으로는 현대중공업 플랜트 엔지니어링센터 일부 인력이 들어오게 된다.

앞서 현대종합상사는 워크아웃으로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돼 2004년까지 계동 현대빌딩을 사용하다가 서울 신문로 흥국생명빌딩으로 이전한 이력이 있다. 이후 워크아웃 기간이 끝나고 현대중공업 계열사로 편입되며 2010년 흥국생명빌딩을 떠나 계동 사옥으로 다시 들어왔다.

현대자동차 역시 이곳을 떠나는 회사다. 현대자동차의 본사는 서울 양재동에 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는 그간 국내영업본부만은 이곳에 둬 왔다. 현대차 국내영업본부는 창사 이후 여러 번 둥지를 옮겨 왔다. 1967년 무교동 사옥에서 사업을 시작한 현대차는 광화문 현대종합빌딩(현 현대해상 광화문빌딩)을 거쳐 1983년 계동 사옥에 입주했다.

17년간 계동 사옥을 지켜 온 현대차는 2000년 현대그룹과의 계열 분리에 맞춰 지금의 양재동 사옥으로 둥지를 옮겼다. 국내영업본부도 계동 사옥에서 태평로 신동아화재빌딩(현 한화금융플라자)으로 이전했다.

그러나 2004년 범현대가 기업의 일부 계열사들이 계동 사옥을 떠나면서 국내영업본부는 4년 만에 다시 계동 사옥으로 돌아왔다. 당시 현대차의 계동 사옥 복귀는 현대가의 정통성을 잇겠다는 정몽구 회장의 의지 표현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현대차 국내영업본부가 이사 가는 대치동 신사옥은 강남의 한복판이다. 지하철 2호선 삼성역이 근방에 있고 서울의 대표적 랜드마크인 코엑스가 지척에 있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가의 정통성 잇기는 정몽구 회장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면서 마무리됐다”면서 “이제 현대자동차 국내영업본부가 수입 차 영업의 중심지인 강남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정 회장의 국내 영업 강화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