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을 떠나 목숨 건 저항이 최선이었는지 의문…참된 교육은 미래를 향한 것

아마도 40대 이상의 세대들은 이승복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학교마다 그의 석고상이나 동상이 서 있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도덕 교과서를 통해 반복해 들었으니 지우려고 해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지금의 용평면)에서 태어나 속사초등학교 계방분교에 다니던 소년 이승복은 1968년 11월 울진과 삼척에 침투한 무장 공비에 의해 12월 3일 어머니·남동생·여동생과 함께 살해당했다. 그의 형과 아버지는 크게 다쳤지만 다행히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이른바 울진·삼척 무장 공비 사건을 상징하는 충격적인 참사였다.

얼마 전 당시 그 사건을 보도한 내용이 조작일 가능성을 제기한 이들과 그것을 보도한 언론사 간에 치열한 공방이 있었다. 사실 무장 공비가 가족을 몰아넣고 북한을 선전하자 이승복이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고 공비들이 소년의 입을 찢고 가족을 몰살시켰다는 생존자 형의 증언이 온전히 사실이냐는 문제는 분명 재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김경집의 인문학 속으로] 교육의 잣대로 뒤집어 본 ‘이승복 신화’
공비가 사라진 후 신고하는 게 더 합리적
이미 말한 것처럼 사건은 이후 도덕 교과서에도 실리고(제6차 교육과정에서부터 빠졌다) 반공의 문제를 다룰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됐다. 아이들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함께 외쳤다. 국방부와 내무부(지금의 안전행정부) 그리고 내무부에 속한 치안본부(지금의 경찰청) 등에서는 이 사건을 반공의 핵심 교재로 삼았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얼마나 반인륜적이고 비인격적이며 잔인한지 그만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건도 없었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 온전한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나는 문교부(지금의 교육부)의 처사에 대해서는 흔쾌히 동의할 수 없다. 미리 말하거니와 이 문제에 대해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지 말자. 적어도 이 글만은 그런 잣대로 재단하면 안 된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에 거품을 물고 모의 권총을 휘두르거나 가스통을 짊어지고 떼로 몰려와 협박하는 따위의 촌스러운 짓은 하지 말자, 이제 좀.

이념의 스탠스를 떠나 교육은 근본적으로 진보적이다. 아니 진보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교육이란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이들을 과거에 묶어 둔 채 가르칠 것인가. 따라서 교육은 근본적으로 진보적이다. 그걸 이념의 잣대로 재는 버릇에만 익숙하니까 교육의 진보라는 말만 들어도 펄펄 뛰며 들볶는다. 이제 그런 매카시즘적인 치졸함은 벗어나야 한다. 21세기가 아닌가. 내가 이승복 문제에서 문교부를 걸고 넘어가려는 까닭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국방부나 내무부는 반공의 이념을 공고히 해 경계심을 고취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부서니 그렇다 치더라도 문교부는 먼저 이 사건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하는 것이 먼저였다. 도대체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무엇을 안다고 그런 말을 했겠는가. 물론 그 용기는 가상하다. 하지만 그렇게 학습된 아이가 그것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이념도 사람의 생명보다 크고 무거울 수 없다. 과연 그것이 최선이었을까. 그리고 그것이 다른 아이들에게 똑같이 따라 하라고 가르칠 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합리적 의심조차 찍어내려 해서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 이러한 물음조차 허용하지 않는 문교부였거나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 지금의 교육부라면 과연 우리는 미래의 교육을 그들의 아둔하고 협량(狹量)한 정책에 맡길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라. 합리적 사고를 가르쳐야 한다. 합리적 사고는 논리적이고 이성적 적합성에 따르는 사고다. 달리 말하면 어떤 행위가 궁극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최적의 수단인지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런 의미에서 합리적 사고는 경제적 의미를 크게 담고 있다.

그렇다면 이승복 사건에서 가장 합리적인 사고와 판단은 무엇이었을까. 공비들이 달라는 먹을 것을 주고 그들이 물어보는 길도 대략 가르쳐 준 뒤 그들이 떠나면 빨리 달려가 신고해 추격하고 토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소중한 목숨도 살리고 더 이상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런데 그 어린 것이 공산당이 싫다고 외침으로써 그들의 화를 돋웠고 결국 무참하게 살해됐다면 그 책임은 과연 누가 질 것인가. 그렇게 가르친 학교와 문교부가 일차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들이 사과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고는 모든 학교마다 이승복 동상과 석고상을 세웠고 교과서에도 실었다. 다행히 그 뒤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만약에 그런 일이 생겼다면 ‘이승복 따라 하기’를 학습한 아이들이 서로 저 먼저 죽여 달라고(?) “나는 공산당이 너무너무 싫어요”라고 외쳤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참된 교육일까. 남북의 대치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변명할 일이 아니다. 교육은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인격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먼저 그렇지 않았던 일에 대해 뒤늦게라도 석명(釋明)하거나 사과해야 옳다.


무지한 홍위병을 경계하라
샤덴프로이데라는 말이 있다. 독일어로 ‘Schadenfreude’, 또는 드물게 ‘Schadensfreude’라고 쓰기도 한다. 이것은 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을 말하는 것으로, 상반되는 뜻을 담은 두 독일어 단어 샤덴(Schaden:손실·고통)과 프로이데(Freude:환희·기쁨)의 합성어다. 아마도 우리말로 옮긴다면 ‘쌤통’과 ‘고소하다’쯤, 혹은 ‘너 잘 걸렸다’쯤 될까. 간단히 말해 남의 실수를 즐기는 마음이다.

1986년 10월 14일 12대 정기 국회가 열리고 있던 시기, 대구 출신의 유성환 통일민주당 의원은 오후에 있을 자신의 본회의 대정부 질문 원고를 미리 출입 기자들에게 돌렸다. 원고에는 “우리나라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이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 원고를 본 당시 집권당인 민정당은 ‘잘 걸렸다. 실수를 기다려 왔는데’라는 듯 바로 정치 문제로 확대했다. 민정당은 일종의 샤덴프로이데를 느꼈던 모양이다. 공안 당국은 유 의원을 체포했다. “사전 배포한 원고 내용이 보안법 위반”이라는 이유였다. 돌이켜 보면 과연 유 의원의 주장이 보안법 위반이고 국기를 뒤흔들 위법한 일이었는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당시 권력 중심의 눈치를 보던 정치 홍위병들은 먹이를 발견한 승냥이 떼처럼 달려들었고 검찰은 마치 그 하수인이라도 되는 양 멋대로 법을 적용했다. 문제는 지금도 그 무책임하고 무지한 홍위병들이 준동한다는 점이다. 단지 양태와 색깔만 달라졌을 뿐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이승복 따라 하기를 무비판적으로 학습한 세대들이라는 점은 간과할 일이 아니다.

1988년 창간된 한 신문사는 40년 정도 일반적으로 써오던 ‘북괴(북한괴뢰의 약칭)’란 표현을 쓰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실정법의 테두리 안에서 통일사상을 전파하는데 심혈을 쏟았다. 그것은 사실 무모해 보이는 대담한 선택이었다. 반공이 국시가 아니라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현역 국회의원마저 구속한 자들의 눈에 곱게 보일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 전신)는 그 신문사를 때려잡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고 마침내 다른 이유로 편집국에 경찰을 보내 편집국장의 서랍을 수색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기자들이 똘똘 뭉쳐 경찰의 편집국 난입을 몸으로 막아낸 덕택이었다.

자신의 허물을 남에게 지적받는 건 누구에게나 기분 나쁜 일이다. 하지만 허물을 털어내지 못한 채 안고 가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다. 이걸 털어내고 가야 반복하지 않는다. 좋은 미래는 과거의 교훈을 통해 가릴 건 가려내고 택할 건 따르는 데 있다. 이미 지난, 그것도 한참 지난 일을 굳이 들썩인다고 그리고 체제를 위협(?)하는 발언을 일삼는다고 화를 돋울 게 아니다. 그런 일에 이념을 들먹이고 체제 운운하는 자들이 위험한 홍위병들이다.

논리적으로 지적하고 합리적으로 비판하지 못하면서 걸핏하면 종북 운운하며 윽박지르는 자들은 결코 우리의 건강한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것 말고는 달리 할 말도 논리도 없기 때문이며 대화와 소통이라는 민주주의적 가치 자체를 말살시키는 자들이다. 그런 홍위병들을 걸러내지 못하면 우리는 또 다른 이승복을 만들어 내고 그를 죽음으로 내몰지도 모른다. 이제 그 허물을 털자. 더 늦기 전에, 저 어리석은 홍위병들이 더 이상 망쳐놓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