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밝힌 첨단 기기의 원형 발명…사후 59년 만에 동성애 특별사면 받아

새해가 되면서 올해는 어떤 신기술이 우리를 즐겁게 해줄지 잔뜩 기대에 부풀게 한다. 특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가전 전시회 CES에는 각종 첨단 전자기기들이 등장, 우리가 어릴 때 공상 만화에서 보던 미래가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얼마 전부터는 스스로 생각하는 기계가 자동차를 운전, 길을 누비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의 구매 추천 목록에는 우리가 좋아할만한 상품을 보여주며 구입을 유도하기도 하는데, 최근의 구매 추천 목록은 그 정확도가 너무나 높아 정말 내 머릿속을 읽고 있는 게 아닌지 궁금할 때도 있다. 한국 진출을 앞두고 있는 인터넷 쇼핑몰 업체인 아마존, 비디오 대여점이나 DVD를 시장에서 쫓아내고 있는 인터넷 영화 서비스인 넷플릭스 등의 최대 무기는 쇼핑몰이 보유하고 있는 물류망이나 가격 경쟁력이라기보다 바로 이러한 구매 추천 목록에 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테크 트렌드] 인공지능 밑그림 그린 비운의 천재 ‘튜링’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려
고객들의 구매 기록이 빅 데이터의 형태로 차곡차곡 쌓이면서 생각하는 기계인 인공지능이 이를 분석, 사용자가 구매할 가능성이 높은 물품을 추천하는 시스템은 구매 기록을 별로 갖고 있지 않은 후발 주자들의 시장 진입을 더욱 힘들게 한다. 그러면 정말 자율 주행 자동차나 쇼핑몰의 추천 목록을 예측해 내는 기계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일까.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처음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사물이 생각할 수 있는지, 혹은 인간은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지 등 유사한 질문도 포함한다면 이 철학적인 질문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우리에게 던져진 화두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철학적인 질문에 대해 철학적인 논쟁만 하던 때에 매우 구체적인 실험 방법을 제시한 이가 있다. 100여 년 전에 태어난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이자 수학자인 앨런 튜링은 계산기가 인간의 뇌를 모방할 수 있고 기계의 능력이 날이 갈수록 개선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언젠가는 기계의 모방 능력이 좋아져 컴퓨터가 구한 답과 사람의 뇌가 구한 답을 구별할 수 없게 될 때 비로소 기계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시 기계장치로는 풀 수 없는 계산식이 있다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튜링은 매우 간단한 기계장치를 고안한다. 정보가 기록된 테이프를 특수 규칙에 따라 작동하는 기계에 집어넣으면 순서에 따라 계산을 반복하며 자동으로 답을 찾아낸다는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이 기계는 ‘튜링 기계’라고 불렸는데, 현대 컴퓨터의 필수 구성 요소인 하드웨어·소프트웨어·입력장치·출력장치의 개념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튜링이 태어난 지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에서는 장난감 레고 블록을 이용해 튜링 기계를 재현하기도 했는데, 이 장치는 수천 개의 레고 블록으로 구성돼 있고 15분 동안 알파벳 3개 정도의 정보를 처리한다. 당시 제작자는 휴대전화가 1초면 처리할 수 있는 정보를 레고 튜링 머신은 3168년 295일 9시간 46분 40초가 걸린다고 했다. 레고 튜링 머신의 동작을 보니 비록 느리기는 하지만 적절한 기억 장소와 알고리즘만 주어진다면 어떠한 계산이라도 가능한 튜링 머신 이후의 발전을 통해 CES에서의 환상적인 경험을 가능하게 해준 그의 위대함에 경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루벤스(RubENS)라고 불리는 이 기계는 얼마 전 버전2로 성능이 개선됐으며 홈페이지(http://rubens.ens-lyon.fr/)에서 작동 모습을 볼 수 있다.

튜링 머신을 통해 컴퓨터의 작동 이론을 완성한 튜링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난공불락이었던 독일군의 암호 체계인 ‘애니그마’를 풀 수 있는 ‘콜로서스’라는 해독기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을 이끄는 등 세계대전의 종식에 크게 기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전쟁 이후 당시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콜로서스’의 비밀이 소련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해독기를 모두 파기했다. 연합군 승리의 영웅으로 추앙받던 튜링은 이후 동성애자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형사처분을 받는다. 당시 영국에서는 동성애가 불법이었으며 튜링은 중대 외설죄를 저지른 죄인으로 화학적 거세를 받았다. 그로부터 2년 후 튜링은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베어 물고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세상을 등졌다. 당시 사과에는 정확하게 계산된 치사량만큼의 청산가리가 주입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 입 베어 문 청산가리 사과가 애플의 로고가 됐다는 설도 있을 만큼 컴퓨터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튜링은 대표적인 비운의 삶을 산 과학자로 세상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된다. 그리고 사후 59년이 지난 작년 크리스마스 무렵 영국 여왕은 특별사면을 통해 더 이상 법률에 의해 처벌받아야 하는 범죄가 아니게 된 동성애로 인해 처벌받은 튜링의 명예를 회복시켜 줬다.


역사의 격랑에 휩쓸려 사라진 과학자들
비운의 삶을 살다 간 과학자는 생각보다 많다. 또 다른 대표적인 이는 산소의 존재를 발견한 근대 화학의 아버지 앙투안 로랑 드 라부아지에다. 라부아지에는 기초 과학의 근간으로, 이공계 출신이 아니더라도 이름을 들어봤을 ‘질량 보존의 법칙’을 비롯한 무수한 업적을 남겼다. 라부아지에는 한편 프랑스에서 세금 징수원으로도 일했다. 당시 프랑스는 수만 명의 세금 징수관이 있었고 징수원이 거둔 세금 중 일정 금액을 정부에 납입하면 나머지는 징수원의 수입이 되는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라부아지에는 비록 정치와 무관한 삶을 살았고 징수원으로서의 수입을 모두 기초 과학 실험에 사용했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세금 징수원들이 부패의 온상으로 몰리면서 결국 사형을 당한다. 특히 라부아지에는 사형 직전 중요한 실험을 위해 2주만 재판을 연기해 줄 것을 요청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만약 라부아지에에게 2주간의 시간이 더 허락됐다면 어떤 업적을 더 남겼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원자번호를 발견해 현대 주기율표를 완성한 헨리 모즐리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해 스물일곱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불과 2년 뒤 모즐리가 미처 마치지 못한 원소의 측정을 보다 정확하게 했다는 공로로 칼 만네 예오리 시그반이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는데, 모즐리가 전사하지 않았다면 그는 노벨상 수상자가 됐을 것이 확실하다. 모즐리에게는 개인적으로 노벨상을 놓친 안타까운 사연일지 모르지만 모즐리가 과학을 연구한 것은 불과 23세부터 26세까지 3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전사가 인류 과학사에 끼친 손실은 우리 모두가 안타까워해야 할 일이다.

전쟁이라는 시대가 만들어 낸 과학의 양면성도 있다. 19세기 유럽은 급작스레 증가하는 인구 탓에 식량문제를 겪고 있었다. 이때 암모니아 합성 방법을 완성, 비료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나아가 식량문제를 상당히 해결한 프리츠 하버는 이에 대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군의 살상용 무기를 만드는 연구에 몰두하면서 ‘독가스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 하버는 독일인이 아닌 유대인이었다. 그는 암모니아 합성법을 개량해 폭약의 원료를 만들어 내고 전기분해를 통해 얻은 염소를 독가스로 만들고 이후 훨씬 강력한 독가스도 합성해 낸다. 어쩌면 유대인이었기에 더욱 독일인다워지고 싶어 했을지 모르는 하버는 충성을 바친 독일 정부로부터 영웅 대접을 받는다. 하버의 아내 역시 유능한 화학자였는데, 남편의 독가스 개발을 막지 못한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후 하버 역시 아돌프 히틀러의 집권 이후 나치의 유대인 정책으로 추방돼 쓸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고 인류의 기아를 해결한 위대한 노벨상 수상자이기보다 세계대전의 전범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렇듯 CES의 화려함이나 추수의 즐거움 뒤에는 숨겨진 과학자의 이야기가 많다. 한번쯤 이런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과학과 기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생각을 갖게 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