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금융이 형성되기 쉽지 않고 그간 정부의 추진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무척이나 힘들었던 2013년이 지나고 2014년이 시작됐다. 올해의 경기는 지표상으로 다소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만 체감하기에는 부족할 듯싶다. 수출과 내수의 양극화가 예상되는 등 저성장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2014년,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최근 ‘관계 금융(relationship banking)’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관계 금융은 은행이 차주(빌리는 측)와의 오랜 관계를 통해 수집한 정성적(‘정량적’의 상대어)인 정보를 대출 의사결정 등에 활용하는 금융거래 형태를 말한다. 개인은 물론 중소기업처럼 규모가 작고 정보의 비대칭성이 높은 대상을 위한 금융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중소기업 금융은 재무제표 혹은 담보 등에 의존한 거래 금융적인 성격이 강하다. 경기 상황에 맞춰 중소기업 대출이 순응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높은 비중의 담보 및 단기 대출 구조 등이 이를 입증한다. 그렇다면 외국의 관계 금융 상황은 어떨까.
미국의 관계 금융이 안착된 근간에는 지역 금융 활성화가 있다. 미국은 금융 소외 계층을 위해 지역 은행에 강제 할당하는 ‘지역재투자법(CRA)’을 도입하며 자리 잡게 됐고 이를 통해 향후 관계 금융이 형성됐다. 독일은 저축은행과 신용협동조합은행이 관계 금융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다. 관계 금융의 주요 대상은 창업 초기 기업 혹은 자산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 연구·개발(R&D) 기업이며 ‘하우스방크’라고 불리는 주거래은행 제도를 토대로 은행과 기업 간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관계 금융이 형성됐다. 일본은 유난히 ‘소속감’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은행과의 거래에서도 나타나며 주거래은행 제도가 상대적으로 쉽게 형성됐다. 또한 은행은 기업의 지분을 일부 소유하는 등 채권자이자 주주로 활동하며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금융청은 ‘관계 금융 기능 강화에 관한 액션 프로그램’을 도입해 적극적으로 추진한 바 있다.
그렇다면 한국도 지역 금융을 활성화해 관계 금융을 형성할 수 있을까. 한국은 지리적 여건에 비해 많은 대형 은행들이 곳곳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어 관계 금융이 형성되기 쉽지 않고 그간 정부의 추진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정부는 2013년 경기 회복의 일환으로 성장 사다리 펀드 및 코넥스 시장을 조성하는 등 투자와 융자가 복합된 형태의 금융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사실상 단기간 내에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 여전히 은행 의존도가 높은 한국 중소기업이 성공적인 창조 경제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은행의 역할이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관계 금융은 창조 경제의 첫 단추 역할을 할 것이고 창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꼭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받고 있는 창업 기업이나 영세 기업, 자영업자들은 사실상 저신용자가 아니라 신용 파악이 힘든 대상일 뿐이다. 한국의 관계 금융은 외국의 관계 금융을 닮으려고만 하지 말고 스스로 예뻐져야 한다. 까다로운 고객이 명품을 탄생시키고 양질의 서비스를 만들게 하듯이 한국 은행들의 치열한 경쟁이 한국만의 명품 관계 금융을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해 본다.
이민재 IBK경제연구소 중소기업금융팀 선임연구원
1977년생. 2002년 고려대 졸업. 2005년 고려대 경제학과 대학원 졸업(석사). 2007년 IBK경제연구소 경제분석팀, 중소기업팀, 중소기업금융팀 선임연구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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