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수송’내걸고 생태주의적 UX 주창하는 엘론 머스크에 주목해야
엘론 머스크(Elon Musk)가 이끄는 테슬라모터스(이하 테슬라)는 이제 애플을 넘어서는 와해성 혁신의 아이콘이 됐다. 사람들은 테슬라 혁신의 요체를 전기차라고 말한다. 그래서 내연기관과 수소연료전지차에 집중하는 현대·기아자동차에 우려를 보내며 전기차를 만들어야 한다고도 말한다.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테슬라가 전기차를 만든다고 해서 전통 자동차 기업의 관점으로 본다면 그 혁신의 진원을 오인하게 되고 앞으로의 행보를 가늠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테슬라의 혁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기차보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엘론 머스크를 이해해야 한다. 우선 머스크의 모세혈관에는 정보기술(IT)의 피가 흐른다. 이미 열두 살에 컴퓨터 게임을 개발해 500달러에 팔았을 정도다. 그의 관상동맥에는 융합이 흐른다. 여러 대학을 거치며 경영·경제·응용물리학을 공부했다. 박사과정 중이던 1999년 은행을 거치지 않고 e메일을 통해 송금할 수 있는 페이팔(PayPal)을 창업했다. 그리고 그의 심장에는 환경과 에너지 위기에 기인한 인류와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비전이 담겨 있다. 그는 현재 테슬라뿐만 아니라 태양에너지 사업의 솔라시티(SolarCity), 초고속 열차 사업의 하이퍼루프(Hyperloop), 민간 우주여행 사업의 스페이스 엑스(SpaceX)를 이끌고 있다. 또한 다섯 아이의 아버지이며 박애주의 실천가이기도 하다. 그는 머스크재단을 설립해 과학 교육, 어린이 건강, 재생에너지를 장려하고 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이후 세상을 가장 뜨겁게 하는 혁신가이지만 잡스가 주창하던 인간 중심의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s)보다 한 단계 진보한 철학을 지녔다. 그 철학은 생태주의적 사용자 경험(UX)이다. 인간중심주의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느라 생태계를 훼손하는 반면 생태주의는 자연의 도를 따르며 인간을 섬긴다. 스티브 잡스를 뛰어넘은 머스크 CEO
머스크는 지속 가능한 수송(sustainable transport)을 비전이라고 말한다. 2050년께 석유의 고갈 문제를 고려하고 인류 생존과 자연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수송 수단으로 전기차를 선택한 것이다. 전통적인 자동차는 내연기관을 기반으로 화석연료를 사용해 동력을 발생시키는 장치, 추진축과 변속기를 이용해 동력을 전달하는 파워트레인을 핵심 요소로 가지고 있다. 이와 달리 전기차는 이런 동력 발생 장치나 파워트레인이 필요 없고 충전지와 모터만 있으면 된다. 그 덕분에 공해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물론 일반 자동차에 비해 부품 수도 4분의 1 이하로 줄었고 관리 역시 쉬워졌다.
가장 인기 있는 차종은 테슬라 모델 S인데, 가격은 8만2400달러다. 세금까지 합하면 약 1억 원 정도로, 메르세데스-벤츠나 BMW급이다. 머스크는 자동차를 처음 만들기 때문에 값을 낮추기 어려웠다. 그래서 경차보다 고급 스포츠 세단을 만들어야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혁신가의 비상한 전략이며 앞으로 저가 차량도 내놓겠다는 속셈이다.
그리고 비용 중 상당액을 충전지에 투자했다. 전기차의 성능은 결국 충전지의 성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현재 테슬라 모델 S의 주행거리는 480km다. 사실 수소연료전지차를 만들겠다는 한 완성차 업체의 2017년 주행거리 목표가 700km라는 점을 고려하면 테슬라의 충전지 성능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시속 100km에 도달하는 데 채 5초도 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고성능 폴리머 충전지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일반 랩톱 컴퓨터에 사용하는 리튬 이온 충전지를 사용한다. 리튬 이온 충전지는 수은 같은 환경오염 물질이 없고 추운 날씨에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내연기관이 없다 보니 당연히 차내 공간이 넓고 트렁크 개념도 다르다. 엔진이 있어야 할 보닛에 물건을 수납한다. 그 대신 차 뒤쪽 트렁크는 어린이용 좌석 두 개를 놓을 수 있다고 광고한다. 그래서 7인승 세단이라고도 부른다. 얼마나 영리한 콘셉트인가. 머스크가 다섯 아이의 아버지란 점이 연상된다.
다음 혁신은 차량용 콘텐츠 플랫폼
충전은 보통 집이나 주차장에서 한다. 일반 주유소와 달리 좁은 공간에서 전기만 있으면 되며 비용도 휘발유 차량에 비해 훨씬 적게 든다. 약 20분 정도를 소요하면 충전지를 50% 정도 채울 수 있다. 충전지는 8년을 보증하고 있다. 이로써 충전지 수명에 대한 우려를 불식했다.
이와 함께 장거리 운전의 우려도 해소하고 있다. 이를 위해 북미 전역에 슈퍼차저스(Superchargers)라는 평생 무료 충전소를 만들고 있다. 전통 완성차 업체가 영업 매장을 늘리는 것과 다른 판매 강화 전략이다. 이 사업은 앞서 언급했던 솔라시티가 주도하고 있다. 즉 테슬라는 태양광 에너지를 이용한 무료 충전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고객의 입장에서는 무료 충전이더라도 30분에서 1시간을 기다리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때는 유료로 충전지를 교체할 수 있다. 교체에 드는 시간은 1분 30초에 불과하다. 2010년 출시한 ‘닛산 리프(Leaf)’도 월 100달러짜리 충전지 교환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생태계를 위한 테슬라의 혁신은 전기차에서 멈출까. 그렇지 않다. 정작 테슬라를 몰아본 고객의 심장에 담긴 사용자 경험은 바로 인간-자동차 상호작용(Human-Motor Interaction)이다. 전기차라고 하더라도 결국 핵심은 차를 이용하며 느끼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간을 섬긴다는 철학이 담기게 된다.
테슬라가 추구하게 되는 인간 중심적 사용자 경험의 백미는 인터넷에 연결된 17인치 대형 터치스크린이다. 지난 칼럼에서 2020년대 근미래 자동차의 키워드 중 하나라는 인터넷에 연결된 커넥티드 카가 바로 테슬라 자동차다. 인터넷 서비스는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이 터치스크린은 대시보드 중앙의 센터패시아에 설치돼 있고 내비게이션·오디오·카메라·선루프·서스펜션·에어컨의 조작을 모두 이곳에서 한다. 내비게이션은 구글맵을 쓰고 인터넷 검색도 할 수 있다. 이 구글맵에는 테슬라 전용 야간 주행 지원 모드도 갖춰져 있다. 운전 중에는 문제가 없도록 큼직큼직한 소프트 버튼이 시원스럽게 배치돼 있어 보기 편하고 조작이 편리하다.
또한 터치스크린을 통해 서스펜션을 조절하면 차 높이를 바꿀 수 있어 비포장도로 주행에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운전대의 손맛도 조절할 수 있다. 스포츠카처럼 운전대를 뻑뻑하게 하거나 명품 차처럼 부드럽게 할 수도 있다. 햅틱스(haptics:촉감을 이용해 컴퓨터로 상호작용을 제어하는 기술)가 잘 적용된 사례다.
그러면 테슬라는 어떤 운영체제를 쓸까. 현재는 리눅스를 기반으로 자체 개발한 운영체제를 쓴다. 애플리케이션(앱)은 별로 없지만 이 대형 터치스크린을 기반으로 차량용 앱들이 나온다면 스마트폰이 연 세상 같은 신천지를 열 수 있을 수 있다. 지난 10월 23일 독일 뮌헨에서 머스크는 내년 말까지 완벽한 안드로이드 에뮬레이터를 탑재하고 구글의 크롬 웹브라우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테슬라 사용자는 기존 자동차와 다른, 그리고 현재 테슬라에서도 발전된 혁신적 사용자 경험을 하게 될 것이며 자연스럽게 테슬라는 자동차용 콘텐츠 서비스 플랫폼, 과금 체계, 새로운 자동차 문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시장 선도자로서 머스크는 ‘지속 가능한 수송’이라는 생태주의적 사용자 경험 비전을 그의 임무(mission)라고 제시했고 이를 실제적으로 구현하는 전기차를 만들었고 전기차의 품질로 그가 단지 그저 그런 친환경차를 만든 게 아니란 점을 증명했다. 이에 대해 머스크는 말한다.
테슬라는 지속 가능한 수송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차라고 구매하는 것은 아니다. … 사람들은 테슬라를 좋은 차라고 생각하게 됐고 우리의 미션(mission)도 믿게 됐다.” 결국 스티브 잡스도 스마트폰을 통해 그랬듯이 와해성 혁신이란 창업자의 비전을 제품과 서비스로 구현해 내고 이를 소비자가 경험하는 과정에서 비전의 진정성(authenticity)을 믿는 과정인 것이다.
조광수 성균관대 인터랙션 사이언스 연구소장 kwangsu.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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