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턴 당근’ 보다 국내 투자 활성화 필요

‘코리아 엑소더스’를 막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교수, 오동윤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좌담회에 참석했다. 각각 거시경제, 중소기업, 기업 정책에 전문성이 있는 이들은 “규제가 너무 많고 성장을 방해하는 쪽으로 정책이 집중돼 있어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은 대기업으로 성장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성장을 원하지 않으니 국내에서 투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U턴 정책보다 국내 투자 활성화 방안을 더 모색해야 하며 정책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아 엑소더스] 전문가 좌담-해법은 없나
사회 기업 투자가 해외에 집중되는 현상은 얼마나 지속될 것으로 보는지.

오동윤 연구위원(이하 오 연구원) 대기업의 해외 직접 투자가 2002년 28억 달러에서 2012년 192억 달러로 증가 추세가 빠르게 나타나고 있는데 중소기업의 해외 투자도 올해 6월 기준 24억 달러로 역대 최고 수준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도 동반 진출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부품 소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도 납품해야 하기 때문에 함께 움직이는 현상이 뚜렷하게 잡히고 있다.

김정호 교수(이하 김 교수) 해외 투자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 투자자든 외국 투자자든 한국 사람과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지난 주 현대차 러시아 법인 공장에 다녀왔는데 현지 러시아 청년들이 임금은 한국의 3분의 1 수준이면서 생산성은 두 배로 높다고 하더라. 제대로 투자할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병기 연구위원(이하 이 연구원) 2005년부터 해외 직접 투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12년 국내에서 해외로 나간 돈은 329억 달러 정도인데 비해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돈은 99억 달러에 그쳤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해외 직접 투자 비율이 2.85%이고 국내로 들어온 외국인 직접 투자는 0.86%로 추세적으로 해외 직접 투자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 이유는 기업 환경에 있다. 기업이 평가할 때 해외보다 국내 기업 환경이 나쁘다고 본다면 더 많이 나가고 덜 들어오는 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노사 관계나 규제 완화 측면에서 국내 기업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 국내 설비투자를 막는 장애 요인 중 가장 심각한 문제를 꼽자면.

오 연구원 마이너 부분일 수도 있지만 국내 투자가 부진한 원인 중 한 가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은 우리나라 수출 증가율이 꺾였고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조선과 같은 중후장대형 수출이 꺾이면서 투자가 당연히 줄고 3대 수출 파트너 또한 녹록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수출을 위한 설비투자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김 교수 제조업을 주로 염두에 두고 얘기하고 있지만 사실 앞으로 정말 투자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서비스 업종이다. 제조업은 웬만한 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와 있기 때문에 더 늘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반면 농업·유통·관광·의료·교육 등 서비스 업종은 낙후된 상태여서 규제를 풀어만 주면 엄청난 투자가 일어날 수 있다. 국내 투자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투자가 들어올 가능성이 많은데 제도적으로 묶여 있다. 인식의 전환과 결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연구원 노동 규제가 상당히 심한 것이다. 한국에 있는 일본 기업인 모임인 서울재팬클럽(Seoul Japan Club)이나 주한유럽연합(EU) 상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한국 노동 규제가 심하고 노사 관계가 극렬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김 교수 전적으로 동의한다. 노사 관계가 계약 관계가 아니라 투쟁 관계가 됐다. 비즈니스가 계급투쟁의 장이 돼서는 곤란한데 점점 그렇게 돼가고 있다. 노사 관계가 계약 관계라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오 연구원 상속세도 부담 요인일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이 2~3세 경영으로 넘어가면서 지분 관계가 복잡해졌는데, 비용 부담을 느끼면서 투자 여력이 줄어든 부분도 있다.

이 연구원 최근 손자회사가 증손 회사를 가지려면 100% 소유해야 한다는 공정거래법 규제가 생겼다. SK나 CJ, 두산그룹에는 손자회사가 증손회사를 외국 기업과 합작 투자하려는 수요가 있는데 공정거래법상 규제가 가로막고 있다. 기업들이 느끼는 애로 사항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김 교수 결국 기업인들이 투자하고 싶은 의욕이 생겨야 할 수 있는 것이다. 투자한다는 것은 사업 규모를 키운다는 것인데,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규모를 키우고 싶어 하지 않는 곳이 많다. 공격적으로 경영해 사업 규모를 키우면 중소기업이 누리는 수많은 혜택과 제도적 지원이 날아가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중소기업 범위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할 판이다. 어쩌다 중견기업이 된 기업들도 얘기를 들어보면 불안해한다. 공정거래법 대상이 되면서 공격의 대상이 되고, 그러니까 사업을 확장하더라도 국내가 아닌 해외로 나가 확장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 연구원 상속세 문제에 대해서는 장기적으로는 폐지에 동의하지만 이 시점에서는 투자한다는 전제 조건 하에 면제해 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 투자 부진을 타개하는 선택적 전략이 될 수 있다.

이 연구원 법인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 영국·독일·캐나다 등은 법인세를 낮추는 방향으로 가는 반면 국내는 22%가 적용되고 더 올리자는 얘기가 나온다. 아일랜드가 최근 법인세를 12.5%까지 극적으로 낮췄는데, 이후 EU 기업, 외국인 직접 투자 등이 성립되면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다. 중소기업 적합 업종, 순환 출자 규제, 일감 몰아주기 등 여러 망으로 둘러쳐진 규제는 기업들에 부담 요인이다. 1969년 삼성전자가 36명으로 출발했는데 그때 중소기업 적합 업종에 묶였다면 지금처럼 클 수 있었을까. 중소기업 적합 업종 규제가 기업가 정신을 낮추는 중대한 요인이다.

사회 정부의 U턴 지원 사업을 평가한다면.

이 연구원 해외에 있는 기업을 국내로 들어오게 하는 U턴 정책의 단점은 대부분이 중국이나 동남아 지역에서 사업을 하던 중소기업을 국내로 끌어들이려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해외로 나갈 때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해외의 큰 시장을 보고 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저임금 때문에 가는 것이다. 전자라면 나간 기업이 다시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낮은 임금과 생산비용 때문에 나간 기업은 여러 인센티브를 주면 고민할 수는 있다. 하지만 양질의 기업이 국내에 다시 들어오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고임금의 ‘디센트 잡(괜찮은 일자리)’을 제공하는 삼성전자나 현대차 등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막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국내 기업 환경을 대폭 개선해 국내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그것을 못하고 있다.
[코리아 엑소더스] 전문가 좌담-해법은 없나
김 교수 치 지도자의 결단이 필요하다. 선진국 등 어느 나라를 봐도 발전 과정에서 대기업과 노동자 사이 대립 관계는 생기게 마련이다. 우리도 그걸 거치는 중인데 가급적 빨리 끝내야 한다. 홍콩이나 싱가포르는 정치 지도자가 국민들을 설득하면서 그 기간을 거치지 않을 수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사회 반면 해외 환경과 비교해 국내 기업 환경의 장점은 무엇인가.

김 교수 국이나 러시아 등과 비교했을 때 한국이 부패도 덜하고 깨끗한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업무 처리도 빠르고 언어가 통한다는 것도 장점이다. 굳이 찾자면 말이다.
[코리아 엑소더스] 전문가 좌담-해법은 없나
오 연구원 정책이 이렇게 많고 적시에 공급되는 곳도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지나치게 많고 구제적 성격을 띤다는 게 문제다. 어쨌든 정책 공급은 기업하기에 도움이 될 수 있고 큰 시장이 인접해 있다는 것 또한 장점일 수 있다. 적극적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통상정책도 타 국가와 비교했을 때 누릴 수 있는 환경이다.

이 연구원 굳이 찾자면 정보통신기술(ICT) 환경 같다. 질문을 듣고 왜 이렇게 장점이 없는지 생각했다.(일동 웃음)

사회 일각에서는 9중고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여러 장애 요인 중 현실적인 개선이 가능한 부분들은 무엇이 있을까.

오 연구원 창조 경제의 콘셉트가 많이 바뀌긴 했지만 현재의 콘셉트는 투자 확대를 위한 것과는 거리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ICT 중심 창조 경제는 기존의 제조업과 융합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기존 제조업과 결합해 창조 경제를 이루는 과정에서 투자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생산 공정을 새롭게 바꿀 수도 있다. 이스라엘 ICT에만 주목하지 말고 제조업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콘셉트를 바꿔야 한다.

이 연구원 한 조사를 보니 기업 호감지수가 50 이하로 떨어져 반기업 정서가 팽배해 있더라. 지금 정부가 나서 내수 규모를 바꿀 수 없다고 한다면 기업이 기업 활동할 의욕을 북돋아 주는 정책을 펼 수 있을 것 같다.

오 연구원 정책적 인풋보다 기업이 투자하게끔 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맞춰져야 한다. 재원을 마련해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지원형 정책이 아니라 기업이 성장하도록 하는 유도형 정책이 필요하다. 노사 관계가 1순위일 것 같고 일시적 규제 완화, 투자 여력이 있는 서비스업 투자 등도 언급할 수 있다.

김 교수 창업 위주 정책에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영업자 경쟁이 치열해 이윤이 낮아진 게 대기업 탓처럼 돼 버린 게 현실이다. 창업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자유롭게 하는 것이고 작은 규모에서 큰 규모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곳에 박수를 보내고 격려해 주는 쪽으로 정책을 펴는 게 맞다. 또한 국내에서 투자가 활발해지게 하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농업만 봐도 얼마나 투자 여지가 큰가. 1세대 농민들이 사라지면서 비어 있는 농토가 수두룩할 것이다. 기업이 제대로 뛰어들면 엄청난 투자가 일어날 수 있고 농업 부흥이 일어날 잠재력이 큰 곳이 바로 우리나라다. 하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너도나도 아우성으로 발목을 잡으니 누가 투자하겠나.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는 이유 중 하나는 보호무역에 있다. 국내에서 생산하면 외국에 수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 나라 시장을 보고 나가는 것이다. 이때는 무역협정을 통해 관세장벽을 낮춰주면 굳이 나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국내 생산으로 수출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
[코리아 엑소더스] 전문가 좌담-해법은 없나
오 연구원 U턴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는다. 이미 시집간 딸을 국내 정치가 도와주는 것은 사위가 빚냈다고 도와주는 격이다. 호적을 파서 간 곳은 차라리 외국인 기업으로 인지해 외국인투자유치법으로 접근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

사회 국내 기업 생태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언을 한다면.

이 연구원 기업 환경 개선이 중요하다. 해외로 나가는 것도 임금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기업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나가는 것이다. 기업 환경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고 법인세 인하, 노사 관계 안정이 선결 과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데이터를 보면 56개국 중 한국이 16번째로 규제가 강하다. 이런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게 필요하다.

김 교수 성장 욕구를 찾아 줘야 한다. 기업이 성장해야 할 이유를 잃어버리고 있는 상황이다. 불쌍한 기업을 도와주는 정책이 있는 이상 기업들은 계속 불쌍한 척할 것이다. 또 한 가지는 한국이 낙후된 분야에 투자 잠재력이 있기 때문에 끌어내야 한다. 재래나 전통이 붙어 있는 곳을 현대·글로벌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오 연구원 산업 정책에서는 규제 완화가 필요하고, 기업 정책은 기업이 먼저 움직이게끔 진행돼야 한다. 투자 여력 있는 중소기업들에는 상속세를 통해 투자를 유인하는 방법도 있다.


사회·정리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