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알다시피 이 같은 주가지수 하락의 주된 원인은 출구전략 우려가 야기한 글로벌 금융시장 동요 때문이다. 5월 하순 이후 출구전략은 다른 모든 이슈를 순식간에 무력화시켜 버리는 이른바 ‘슈퍼 이슈’로 등장했다.
출구전략의 발단은 미국이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이 의회 합동경제위원회에 출석해 ‘자산 매입 축소(tapering)’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처음 언급하면서 출구전략 이슈가 급부상했다.
이어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국채 시장의 변동성 확대와 관련해 모호한 답변으로 응수한 이후 금융시장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구로다 총재는 5월 26일 “(일본 국채 금리의 급격한 변동과 관련해) 일본의 금융 시스템이 국채 금리 상승 충격에 대응할 만한 충분한 내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현재 시장이 과열됐다는 신호는 보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미국·일본 ‘경제 수장’들의 발언으로 현재 글로벌 금융시장은 미국 국채를 비롯해 변동성과 가치 손실 위험이 있는 모든 자산으로부터 탈출 러시가 일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금융시장 불안의 조짐은 버냉키 의장의 발언이 있기 전인 5월 초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주요국 국채 금리가 바닥을 찍고 올라오기 시작한 것은 이미 5월 2일부터였다. 버냉키 의장과 구로다 총재가 그 속도를 가속화시킨 부분이 있지만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과 수익을 따라 급격히 움직이는 ‘스마트 머니’는 채권시장의 약세를 이미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히 주식 투자자에게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이 억울한 측면도 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채권시장과 주식시장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움직여 왔다. 장·단기 금리 스프레드는 주식시장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 중의 하나였다.
그렇지만 금리가 더 이상 정책 수단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주요국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가 시작되자 이 관계는 깨졌다. 2008년 하반기 이후 장·단기 스프레드와 주가의 관계는 이전과 전혀 다른 방향성을 보이고 있다. 금융시장 불안 조짐 5월 초부터 감지돼
미국 국채 금리가 2011년 초 3% 중반에서 1.7%대로 떨어지며 채권시장에서 화려한 강세장이 진행될 때 주식시장의 수익률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투자론의 일반 가정과 과거의 데이터를 따르자면 금리가 5%대일 때 시장의 주가수익률(PER)이 15배였다면(2000년대 평균), 또 그 와중에 금리가 2%대로 하락했다면 시장의 PER는 25배 이상으로 상승해야 했다. 하지만 금리가 2%대로 떨어져 있는 현재 글로벌 마켓의 PER는 13배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인 양적 완화가 시행됐기 때문이다. 즉 각 시장의 가격이 서로 밀접한 연관을 맺고 움직이기보다 개별 시장 내부의 논리와 수급에 의해 움직이는 부분이 더 큰, 즉 시장의 분할이 일어났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이는 2011년 초부터 급상승한 일드 갭(yield gap: 1년 동안 기업의 이익 전망치, 즉 주식 연간 수익률에서 채권 수익률을 뺀 것)과 마찬가지로 높아진 위험 회피 계수를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일드 갭과 위험 회피 계수는 역의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주식과 채권 수익은 반비례하므로 일드 갭이 높을수록 주식으로 수익을 볼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위험 회피 계수가 낮아진다는 것은 위험 자산인 주식에 투자를 늘릴 수 있다는 뜻이다. 서로 상반된 지표가 함께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투자자의 실제 위험 회피 선호가 변화됐다기보다 분할된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다 보니 10년 이상 지속돼 온 균형 관계에 균열이 일어난 것이다. 하이일드 채권·이머징 채권·이머징 주식順 타격 올 것
양적 완화와 초저금리의 온기가 주식시장에 전달되기 시작한 것은 작년 말부터라고 봐야 한다. 이른바 ‘그레이트 로테이션’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오랜 기간 지속된 초저금리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는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따라 펀드 마켓에서 주식으로의 유입이 실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작년 말부터였다. 물론 주식으로의 자금 유입은 선진국 마켓에서만 일어났을 뿐이다. 하지만 금리가 상승하기 시작한 5월 초는 오랫동안 지속돼 온 채권의 초강세 국면이 약세 국면으로 전환된 시기로 판명될 가능성이 크다. Fed가 하이일드 채권시장을 비롯한 일부 금융자산의 버블을 우려해 출구전략을 언급한 이상 어느 수준까지는 금리가 상승하고 신용 스프레드가 확대되는 것을 방관할 가능성이 높다. 설령 미국 국채 금리가 3%로 상승하더라도 미국 정부의 이자 지불 능력 자체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이에 따라 출구전략이 가시화되면서 가격 하락 리스크에 노출되는 정도는 하이일드 채권, 이머징 채권, 이머징 주식 순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양적 완화로 스프레드 축소 국면에서 크게 혜택을 본 자산일수록 방향이 거꾸로 전환되면 손실도 더 크게 발생할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의 급락은 주식이 아닌 채권 버블에서 온 것이지만 그렇다고 주식시장이 안전한 것은 아니다. 즐거움을 함께할 친구는 많지만 고통을 함께 나눌 친구는 드문 게 사람 사는 세상의 일반적인 모습이지만 금융시장은 반대다. 상승장에는 디커플링이 있어도 하락장에는 디커플링이 없다. 이와 함께 하락하는 시장에서 항상 주의해야 할 것은 밸류에이션 트랩이다. 저PER는 매력적인 기업을 선별하는 데에는 분명 좋은 기준이다. 그러나 이를 주식 매수의 타이밍 지표로 활용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주가가 계속 하락하고 PER가 낮아지고 있는 국면에서는 더욱 그렇다. 또 하락하는 장에서 바닥이 어디인지 예단하는 것도 투자에는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 바닥은 스스로 형성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다.
물론 분명 현재 주식시장 자체는 결코 비싼 게 아니다. 금융시장의 요동이 가라앉고 미국 국채 금리가 3% 아래에서 장기간 안정된다면 그레이트 로테이션이 발생하면서 주식시장은 폭발력을 가지고 상승할 가능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단기 투자자는 현금을 가지고 기다려야 하겠지만 연·기금 등 장기 저축 기관에는 최고의 매수 타이밍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주 화제의 리포트는 한국투자증권 노근환 애널리스트가 펴낸 ‘하락장에 임하는 자세’를 선정했다. 노 애널리스트는 출구전략이 시작되면 그동안 가장 많이 오른 하이일드 채권, 이머징 채권, 이머징 주식 순서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리=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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