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 1990년대 7%에 달하던 성장이 이제는 3% 아래로 떨어졌다.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8%에서 2.6%로 낮춰 잡았는데, ‘아베노믹스’의 효과에 힘입어 성장률 전망치를 2.9%로 상향 조정한 일본의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무엇보다 8분기 연속으로 전기 대비 성장률이 1.0%를 밑도는 등 ‘저성장의 고착화’마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성장 속도가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우리 경제의 규모와 연령대에 비해 너무 일찍 성장판이 닫히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중진국의 함정’이나 ‘서서히 뜨거워지는 냄비 속의 개구리’ 등의 위기론에 머무르는 대신 한국의 경제 성장률을 다시금 끌어 올릴 대책은 무엇인지 모색해 보자.
성장판 닫힌 대한민국
한국은행이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로 낮춰 잡은 반면 일본은행은 2.9%로 올려잡았다. 양국 중앙은행의 이 같은 전망치가 맞다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일본에 역전당하게 된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은 1998년 이후 15년 만이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그동안 장기 침체에 빠진 일본을 큰 차이로 앞질러 왔던 터라 이 같은 비교를 통해 우리 경제의 ‘저성장’에 대한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버블(거품) 붕괴 이후 장기 저성장에 허덕이던 일본의 경제는 아베 신조 총리의 ‘디플레이션 탈피를 위한 강력한 경기 부양책’인 이른바 ‘아베노믹스’ 주사를 맞고 최근 급속히 활기를 되찾고 있다. 반면 우리 경제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3개월이 흘렀지만 ‘창조 경제’에 대한 개념 찾기를 하느라 경제정책 수립에 손을 놓고 있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웠던 이른바 ‘747 공약’ 속 ‘연평균 7%대의 경제성장’도 결과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경제성장률은 한 나라의 경제가 전년과 비교해 국내총생산(GDP)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역대 최고 성장률은 산업화·근대화의 본궤도에 진입하던 1973년의 14.8%였다. 1999년에도 10.7%를 기록하는 등 우리 경제는 총 10차례에 걸쳐 10% 이상 고성장했다. 하지만 이제는 한 나라 경제의 기초 체력을 의미하는 잠재성장률마저 3%대로 내려앉았고 실제 경제성장률은 그 수치에도 못 미칠 정도로 저조한 수준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경제가 연령대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늙어버린 게 아니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문턱에 진입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주요 선진국인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과 소득수준이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나 갈 길이 먼데 벌써부터 힘이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성장 활력을 잃은 것도 문제지만 저성장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더욱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는 잠재성장률의 급속한 하락만 봐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한때 고성장의 대명사로 불리던 우리나라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성장 활력을 잃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설비투자의 축소’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설비투자 증가율은 1990년대 연평균 9.1%에서 2000년대에는 3.9%로 하락했다. 내수 침체·글로벌 금융 위기·불투명한 국내 경제경책·경제 민주화 입법 등으로 기업들의 고정 투자가 둔화됐기 때문이다.
성장판 닫힌 대한민국
성장판 닫힌 대한민국

소비 심리 회복, 신성장 동력 필요

이처럼 장기적인 요인과 함께 세계경제의 불황, 가계 대출 증가, 주택 가격 하락, 북핵 리스크 등도 우리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성장률이 하락하면 소득 분배가 악화되고 일자리가 축소되며 세수 감소로 재정 건정성 또한 악화된다. 이동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팀장은 이 같은 저성장이 지속되면 경제 주체들의 불안 심리가 커져 “소비 부진, 투자 부진, 고용 부진, 가계 소득 감소, 소비 부진”으로 이어지는 경제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고 전했다.
또한 저성장이 장기화되면 저물가로 인해 디플레이션 진입이 우려되고 저금리로 인한 부작용도 따른다고 했다. 곽영훈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저성장의 여파로 디플레이션 마인드를 갖게 되는 게 가장 위험하다. 쉽게 말해 ‘오늘 사지 말고 (가격이 떨어지니) 내일 사야겠다’라는 것인데, 소비 주체들의 이 같은 생각이 경제를 얼어붙게 만든다”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 이근태 LG경제연구원 거시경제 담당 수석 연구위원은 대규모 설비투자를 통한 대량생산과 수출 전략 등 과거의 고성장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출도 중요하지만, 내수 시장도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정부가 단기적으로는 추경 시행을 통해 소비 심리와 투자 심리를 회복하고 인프라 투자 확대 등을 통해 침체된 경기를 부양해야 하며 중·장기적으로는 미래의 성장 동력, 인적자본의 고도화, 선진화 사회 구현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기업들도 신성장 시장을 개척하고 새로운 사업을 발굴해야 하며 내수 침체에 대비해 불황 속 호황 분야를 탐색하는 등 발상의 전환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재정지출의 확대나 건설 경기의 과잉 부양을 통해 성장을 끌어올리는 정책은 ‘반짝 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의 부작용을 키우고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취재=김민주·이홍표 기자
전문가 기고=이근태 LG경제연구원 거시경제 담당 수석연구위원
사진=서범세·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