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열도가 들썩인다.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버블’이란 단어까지 등장했다. 작년(2012년)과는 상황이 딴판이다. ‘아베노믹스’ 덕분이다.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디플레→인플레’로의 노림수가 통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는다.

닫혔던 지갑이 간만에 열릴 찰나다. 도소매를 필두로 내수 소비의 온기 징후가 늘어났다. 자산시장 쪽은 더 뚜렷하다. 주식과 부동산은 자산 인플레 추세마저 목격된다. 정권 출범 이후 고공 행진 중이다. 그래서 ‘아베 버블’로 불린다.
[일본] ‘아베노믹스’ 버블 만드나, 닫혔던 지갑 ‘활짝’…거품 경계 목소리
백화점, 부유층 대상 집중 마케팅

서점부터 보자. 아베 정권을 둘러싼 관심은 서적 진열에서 확인된다. 아베 경제학을 쉽게 풀어쓴 입문서에서부터 아베 전후를 비교한 경제 풀이까지 다양하다. 베스트셀러도 많다. ‘일본에서 가장 쉬운 아베노믹스 초입문’은 4월 4일 발매 이후 1개월도 안 돼 3만 부를 돌파했다. 1월 말에 나온 ‘리플레이션은 위험하다’는 10만 부를 넘겼다.

백화점은 체감경기의 바로미터다. 연초 이후 백화점 매출은 증가세다(일본백화점협회). 1~3월은 전월 대비 계속해 증가하며 3개월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5개사 속보치). 3개월 연속 증가는 7년 만의 일이다. 3월은 전월보다 3.9% 증가했다. 일부 백화점은 두 자릿수 증가세가 목격된다.

일단 타깃은 부유층에 집중된다. 다카시마야 도쿄점이 3월 개장한 ‘VIP룸’은 고객 응대로 바빠졌다. 할리우드의 백만장자처럼 편하게 쇼핑하도록 피팅 룸까지 갖춘 110㎡의 특별 공간에선 연일 거액 영수증이 오간다. 체험 쇼핑이 가능해 인기다. 3월 매출은 전년 동월보다 10% 늘어났는데 개중엔 1시간 이상 머무르는 단골손님이 적지 않다.
[일본] ‘아베노믹스’ 버블 만드나, 닫혔던 지갑 ‘활짝’…거품 경계 목소리
자동차 업계는 기대감이 구체적이다. 1000만 엔 이상의 고급 외제차의 매출 신장이 대표적이다. 온난전선은 일찍 조성됐다. 1~2년 새 메이커별 판매량이 급증했다. 많게는 2배나 늘어난 메이커(람보르기니)도 있다. 올해부터는 그간 주저했던 고객까지 본격 가세했다. 아베노믹스의 재촉 결과다. 최소 3000만 엔대인 페라리의 1~3월 판매 대수는 전년 동기 대비 40% 늘었다. 저항선 100만 엔이던 경차도 값을 올리며 디플레 탈피 추세에 가세했다. 4월 신차 판매는 약 1.5%(전년 동월 대비) 늘었다.

호화 크루즈를 만끽하려는 시니어 고객도 고액 상품의 소비 주도에 가세했다. 가격보다 품질과 기능을 중시하려는 무드가 무르익었다. 요컨대 크루즈 여행은 없어서 못 판다.

와인 인구의 취미 향유는 어떨까. 역시 좋다. 병당 50만 엔을 웃도는 고가 와인이 심심치 않게 팔려 나간다. 작년만 해도 병당 10만 엔 이상의 고급 와인은 거의 주문이 없었지만 올해는 다르다. 팔레스호텔의 고급 레스토랑 ‘크라운’에서는 월평균 2~3병이 비워진다. 그 덕분에 디너 레스토랑의 매출액은 작년 11월부터 상승 전환 중이다.

저가 실속이 주류였던 선물 시장은 기지개를 폈다. 산케이신문은 금박 사양의 만년필 출시를 소개하면서 이를 아베노믹스와 연결시켰다. 주인공은 ‘세라만년필’이다. 창업 100년의 전통 명가로, 일본 최초의 볼펜 제조·판매에 나선 기업이다. “경기 회복 무드를 상징하는 상품으로 연간 1000자루를 판매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단가 8만4000엔으로, 고급 백화점에서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기념품과 장수 축하·답례품 등이 주요 수요다.

회전 스시 업계는 가격 인상에 돌입했다. 1접시 100엔이 상식이던 가격 전략 대신 고가 메뉴와 고급 느낌을 연출한 점포가 확대 중이다. 소비 마인드의 개선에 힘입은 덕분이다. 규동과 패스트푸드 업계가 저가 공세로 매출 회복을 노리는 것과 달리 ‘가격→가치’로 전환한 고급 노선이 먹혀들 것으로 판단했다. ‘약간의 사치 소비’가 노림수다.

대형 점포인 ‘아킨도스시로’는 1접시 189엔의 고급 메뉴를 새롭게 선뵀다. 냉동되지 않은 일본산을 내세운 고급 전략이다. 원래부터 고급 스시를 지향한 ‘가네자와마이몬스시’를 봐도 고급 스시 시장은 밝다. 수도권 점포의 매출이 연초 이후 10%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런 호조세는 아주 드물다”는 반응이다. 객단가는 2500엔으로, 약 5%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아베노믹스’ 버블 만드나, 닫혔던 지갑 ‘활짝’…거품 경계 목소리
압권은 자산시장…연일 상승세
[일본] ‘아베노믹스’ 버블 만드나, 닫혔던 지갑 ‘활짝’…거품 경계 목소리
압권은 자산시장이다. 요즘 일본 주식은 세계적인 관심 자산이다. 외국인의 ‘바이 재팬(Buy Japan)’과 엔저 호재가 증시 견인의 일등 공신이다. 닛케이지수는 1만4000엔을 넘어섰다(5월 7일). 거의 5년 만이다. 환율이 달러당 100엔대에 접근하면서 수출 호재가 기여했다. 아베 정권 직전(9000엔 선)과 비교하면 56% 급등세다.

오르지 않은 주식이 이상한 분위기다. ‘넘버원(No.1)’ 펀드도 ‘일본 주식’이다. JP모건에셋의 ‘JPM더재팬’은 아베 출범 이후 거액이 몰려들며 기삿거리가 됐다. 순식간에 한도를 채워 판매가 정지됐다. 1000억 엔 상한으로 300억 엔 정도면 운용하려고 했는데 금방 1000억 엔이 몰려서다. 상한을 늘려(2000억 엔) 4월부터 다시 모집했지만 역시 10일 만에 종료됐다.

부동산은 더 뜨겁다. 국회 해산(2012년 11월 14일)부터 현재(5월 초)까지 상승률 1위는 부동산 펀드다. 독립 부동산 펀드인 ‘케네딕스’의 주가는 1만2340엔에서 7만2600엔(5월 6일 종가)으로 6배나 뛰었다. 실물도 비슷하다.
[일본] ‘아베노믹스’ 버블 만드나, 닫혔던 지갑 ‘활짝’…거품 경계 목소리
도심 입지로 100㎡ 이상 평형(3LDK)이 대부분인 한 아파트(더파크하우스그랜)는 가격대가 1억~3억5000만 엔대지만 속속 팔려나간다. 2월 판매 개시 후 2개월 만에 1기분 46채 중 90%가 팔렸다. 속도는 갈수록 빠르다. “경기 회복에 동반한 물가 상승이 예상되자 저금리일 때 주택을 사려는 심리 덕분(회사 관계자)”이다. 추세는 일반적이다. 3월 수도권 맨션의 평균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3% 오른 4807만 엔이다. 2개월 연속 상승세다.

아베 카드는 여러모로 관심사다. 경기 회복을 응원하기 위해 결성된 걸그룹까지 나왔다. 걸그룹 아베노믹스의 싱글 앨범 타이틀곡은 ‘아베☆MIX’다. 경제 용어를 가사로 쉽게 풀어내 화제다. 경기 회복 땐 미니스커트 길이가 짧아진다는 점에 착안해 닛케이지수와 비례하는 스커트 길이를 약속해 주목을 받았다.

아쉽게도(?) 닛케이지수가 반복 상승하자 “더 이상은 벗을 수 없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그만큼 요즘 일본열도에선 ‘아베’가 최대 키워드다. 기업 부문도 표정 관리 중이다. 4월 설문 조사를 보면 90%의 기업이 향후의 경기 전망에 ‘맑음’이라고 답했다(마이니치신문, 121개사 대상). 직전 조사보다 2.5% 상승했다. 확연해진 기업 심리 회복이다. 반면 악화 진단은 ‘제로’다.

다만 시장 전체의 파급 여부는 ‘글쎄’다. 백화점만 해도 도심부는 좋지만 식품·의류 등 일용품이 중심인 교외 점포는 여전히 고전이다. 양극화되는 소비 시장의 반영 추세다. 온기 확산 여부를 결정할 핫이슈인 임금 인상은 여전히 어둡다. 3월 근로자 평균 임금(현금 급여 총액)은 27만5746엔으로, 전년 동월 대비 0.6% 떨어졌다. 2개월 연속 감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호황 확산을 기대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정부 압력(?)으로 여름 보너스의 상향 지급이 확실시되고 경기 회복의 시차가 반영되면 내수 소비가 늘어날 환경 변수가 무르익기 때문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