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최근 들어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산업 정책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있다. 한때 정보기술(IT) 산업에 주력했던 각국의 산업 정책이 금융 위기 이후 해가 갈수록 제조업을 다시 중시하는, 제조업 부활 정책을 추진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같은 제조업이라도 고용 증대 효과가 큰 업종을 중심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

이를 가장 선도하는 곳은 미국이다. 오바마 정부 취임 이후 고용 창출 계수가 높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각종 세제 지원을 집중하고 있다. 일본도 엔저를 통해 제조 수출업의 부활에 주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유럽도 셰일가스 개발로 생산 여건이 크게 개선된 미국으로 이전하는 자국 기업을 잡아두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각국이 정책적으로 중점을 두면서 ‘르네상스’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제조업 경기가 활기를 띠고 있다. 미국의 공급관리자협회(ISM) 제조업지수는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동안 잊혔던 일본의 단칸지수도 올 1분기에 고개를 들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도 올 2월에 크게 반등했다.
 A worker is shown assembling parts on Jeep Compass and Patriot vehicles during a tour of the Chrysler Belvidere Assembly plant in Belvidere, Illinois February 2, 2012. REUTERS/Frank Polich (UNITED STATES - Tags: BUSINESS TRANSPORT)/2012-02-03 02:16:29/
A worker is shown assembling parts on Jeep Compass and Patriot vehicles during a tour of the Chrysler Belvidere Assembly plant in Belvidere, Illinois February 2, 2012. REUTERS/Frank Polich (UNITED STATES - Tags: BUSINESS TRANSPORT)/2012-02-03 02:16:29/
각국이 마치 유행처럼 제조업 부활에 노력하는 데에는 거시 경제정책 목표를 단순히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체감경기 개선에 주력하기 때문이다. 최근처럼 물가가 추세적으로 안정된 시대에 체감경기를 개선한다는 것은 일자리 창출에 주력하겠다는 의미다. 전통적으로 물가 안정을 중시해 왔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아예 고용 목표제(employment targeting)를 도입했다.

이런 목적을 달성한다는 시각에서 보면 아직도 주력 산업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IT 산업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IT 산업은 네트워크만 깔면 깔수록 생산성이 증가하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이 산업이 주도가 된다면 일자리, 특히 청년층의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다.

반면 전통적인 제조업은 생산하면 할수록 생산성이 떨어지는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된다. 이 때문에 IT 산업이 주도할 때와 동일한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을 더 투입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고용 창출 계수가 높아진다. 과거 제조업이 주도가 돼 경기가 회복될 때에는 그만큼 일자리가 늘어나 지표와 체감경기 간의 괴리가 심하게 발생되지 않았다.

전통적인 제조업을 중시할 때 추진 방법에서도 종전과 다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미국이 주력하고 있는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이다. 리쇼어링은 아웃소싱의 반대 개념으로, 해외에 나가 있는 미국 기업들을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등을 통해 불러들이는 정책을 말한다. 오바마 정부 집권 2기 들어 리쇼어링 정책을 보다 강화한 ‘일자리 자석(employment magnet)’ 정책을 추진할 뜻을 밝혔다.

리쇼어링 정책을 통해 미국 내로 들어오는 기업들은 퇴출국으로부터 관세와 각종 비관세 장벽을 통해 보복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들 국가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환율을 유지해 가격 경쟁력을 보완해 줘야 한다. 오바마 정부가 수출 진흥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달러 약세책이 나온 때가 리쇼어링 정책의 추진 시기와 맞물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다른 방법은 인수·합법(M&A) 시장을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다. M&A 시장은 거래되는 매물의 성격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정상적인 기업이 거래되는 ‘제1선 시장(primary market)’과 부실기업이 거래되는 ‘제2선 시장(secondary market)’이다. 부실기업을 인수해 제조업을 육성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한 나라 경제에서 IT와 제조업 중 어느 산업이 주도하느냐는 경기와 증시와 관련해서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 IT 산업은 상품 주기(life cycle)가 짧기 때문에 이 산업이 주도가 될 때에는 주기가 짧아지고 ‘경기 순응성(procyclicality)’이 나타나 진폭이 확대된다. 특정국 경기순환에서 주기가 짧아지고 경기 순응성이 나타날 때에는 전망 기관들의 예측력도 떨어진다.

IT 산업과 대조적으로 제조업이 주도가 될 때에는 어느 국면(예, 회복기)이든 진입하기가 어렵지 일단 진입하면 오래간다. 그 결과 주기가 길어지고 진폭이 축소되는 ‘안정화(stabilizer)’ 기능이 강화돼 이때 전망 기관들의 예측이 잘 맞고 이를 토대로 계획을 세우더라도 큰 무리가 없다.
한국, 글로벌 전략 수정 필요

전통적인 제조업 부활 정책은 미국 증시 앞날과 관련해 벌어지고 있는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 논쟁’이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날 것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월가 참여자들 중 대부분은 주가 상승세가 경제 여건에 비해 빠르다는 점을 인정한다. 올 들어 다우존스지수 상승 폭은 무려 11%에 달하지만 성장세는 2%대로, 잠재 수준을 밑돌 것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돈의 힘에 의해 주가가 올라가는 유동성 장세의 성격이 여전히 강하고 거품이 끼었다고 볼 수 있다.

주도 산업이 IT에서 제조업으로 바뀌고 있는 점도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이 현재 미국 주가가 ‘비이성적 과열’이 아니라고 보는 이유 중 하나다. 2001년 사태에서 보듯이 IT가 주도가 될 때에는 거품이 특정 계기로 꺼지게 되면 시장과 경기에 커다란 혼란을 초래한다. 하지만 제조업이 주도가 될 때에는 주가가 일단 상승세를 타면 설령 거품 우려가 제기된다고 하더라도 랠리(rally)가 오래간다.

그런 만큼 시간이 갈수록 비관론보다 낙관론에 힘이 실리는 게 요즘 월가의 분위기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 짐 오닐 골드만삭스자산운용 회장 등은 아직도 미국의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주식을 계속 사들이고 있다.

최근 들어 우리 경제는 부동산과 증시, 경기 면에서 ‘트리플 디커플링(triple decoupling)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기 성장률은 이미 2%대로 떨어졌다.

자연스럽게 우리 경제의 앞날과 관련해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단기적으로 연착륙과 경착륙 간의 논쟁 속에 후자에 무게를 두는 시각이 오래됐다. 중·장기적으로 지속 성장 여부와 관련해 ‘성장의 덫(growth trap)’에 걸릴 것이라는 비관론과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각국의 산업 정책에서 제조업 부활 정책은 트리플 디커플링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고심하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경기 부양과 우리 경제 안정 유지 차원에서 외환위기 직후부터 쏠림 현상이 심했던 IT 산업 위주에서 벗어나 이제부터는 산업 정책이 최소한 제조업과 균형을 맞춰 나가야 한다.

중국 등 해외에 나가 있는 국내 제조업 기업들의 생산 여건이 악화되면서 영업이익률이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글로벌 전략도 수정할 필요가 있다. 미국 등이 추진하는 ‘한국판 리쇼어링 정책’을 병행하되 퇴출국으로부터 예상되는 수출상의 불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환율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해 줄 필요가 있다.


<용어 설명>
경기 순응성 (procyclicality)은…
금융 시스템이 경기변동을 증폭시킴으로써 금융 불안을 초래하는 금융과 실물 간의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의미한다. 즉, 경기 상승기에는 자산 가격 상승, 위험 선호도 증가에 은행 대출이 증가하면서 정점(peak)이 더 올라가고 이 과정에서 잠재적인 금융 부실이 확대된다. 반면 경기 하강기에는 실물 활동 위축, 자산 가치 하락, 위험 회피 성향으로 은행 대출이 급감하면서 저점(trough)이 더 떨어지고 금융 부실이 가시화된다.

‘비이성적 과열 (irrational exuberance)’은…
1996년 들어 주가가 거침없이 오를 때 당시 Fed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이 처음 사용해 유명해진 용어다. 이 발언 직후 미국 주가가 20% 폭락한 점을 감안해 최근 월가에서 이 논쟁을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