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익의 눈

2000년 이후 지난 13년 동안 선진국 주가지수는 박스권에서 움직이고 있다. 또한 이머징 마켓 주가도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로는 추세적으로 상승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주가가 박스권 상단에 와 있다. 주가가 이를 돌파하고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갈까, 아니면 다시 무너질까. 이에 대한 답은 세계경제의 회복 여부에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세계 주가가 장기 박스권을 넘어서면서 새로운 상승 추세를 그려가기 쉽지 않아 보인다.
<YONHAP PHOTO-0407> US Treasury Secretary Jack Lew speaks alongside Chairman of the Federal Reserve Ben Bernanke (R) during a Financial Stability Oversight Council (FSOC) meeting at the Department of Treasury in Washington, DC, February 28, 2013. The meeting  was Lew's first event after being sworn in as Treasury Secretary. AFP PHOTO / Saul LOEB../2013-03-01 08:25:15/
<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US Treasury Secretary Jack Lew speaks alongside Chairman of the Federal Reserve Ben Bernanke (R) during a Financial Stability Oversight Council (FSOC) meeting at the Department of Treasury in Washington, DC, February 28, 2013. The meeting was Lew's first event after being sworn in as Treasury Secretary. AFP PHOTO / Saul LOEB../2013-03-01 08:25:15/ <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돈 풀어 경기 부양, 주가 상승

2000년에 정보통신 거품이 붕괴되면서 세계 주가가 폭락했다. 그리고 2008년에는 선진국 특히 미국의 주택 시장과 소비 거품이 해소되면서 주가가 또다시 큰 폭으로 하락했다.

높은 금융 부채로 부실해진 가계가 주가와 집값 등 자산 가격이 하락하자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소비 둔화로 매출이 감소한 후 기업도 고용과 투자를 줄였다. 소비와 투자 감소로 경기 침체가 심화되자 정부가 돈을 써서 경기를 부양했다. 그 후 경기는 어느 정도 회복됐지만 정부가 부실해졌다. 미국과 유로 지역이 겪고 있는 국가 채무 위기가 바로 그 결과다.

선진국의 정책 당국은 재정지출 확대와 함께 과감한 통화정책으로 대응했다. 미국은 연방기금금리를 거의 0%까지 인하했고 그도 모자라 양적 완화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돈을 풀었다. 미국은 2009년과 2010년에 1, 2차 양적 완화를 통해 약 2조4000억 달러의 돈을 시장에 공급했다. 유로 지역과 일본도 맞장구를 쳤다.

지난해 9월 이후로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유로 지역 위기 국가의 국채를 무제한 사주기로 했으며 일본은 소비자물가가 2% 오를 때까지 무한정으로 돈을 풀겠다고 했다. 미국도 지난해 하반기에 장기 국채와 모기지 채권을 추가로 매입하는 3, 4차 양적 완화를 단행했다.

주식시장에서 돈의 힘은 컸다. 2009년 2월 735까지 떨어졌던 미국 주가지수(S&P500)가 최근에는 1515까지 상승해 2배 이상 올랐다. 일본 주가는 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 주가지수인 닛케이225가 지난해 23% 상승한 데 이어 올해도 2월까지 12%나 올랐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동안 선진국 주가가 상승했고 올해도 오르고 있다. 이제 주가가 더 오르기 위해서는 소비와 투자가 늘면서 실물경제가 회복돼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3.2% 성장했던 세계경제가 올해는 3.5%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세계경제가 연평균 3.6% 성장했던 것을 고려하면 결코 낮은 성장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세계경제가 그 정도로 성장할 가능성이 낮다는 데 있다.

우선 미국 경제부터 살펴보자.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은 과감한 재정과 통화 확대 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했다. 그러나 이제 정책 대응의 한계점에 도달했다. 예산 자동 삭감(sequester)에 따라 올해 미국 정부는 850억 달러의 재정지출을 삭감해야 한다. 게다가 정부 부채 한도를 무한정으로 늘릴 수 없다. 재정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데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금리는 더 이상 내릴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양적 완화 정책으로 대응하겠지만 돈이 돌지 않으면 통화정책도 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이제 미국의 가계가 소비를 늘리고 기업이 투자를 더 해야 경기가 회복될 것이다. 그러나 가계가 금융 부채를 줄여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소비를 계속 늘릴 가능성은 낮다. 1990년에 가계 부채가 가처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2%였지만 이것이 2007년에는 129%까지 상승했다. 미국 가계가 미래를 낙관하고 돈을 빌려 흥청망청 쓴 것이다.

2008년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부채를 갚아가고 있지만 지난해 가계 부채가 가처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8%로 아직도 높다. 또한 2009년 이후 완만하게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주택 경기가 다시 꺾이면 가계가 소비를 더 줄일 것이다. 기업도 산업 가동률이 80% 이하로 낮기 때문에 투자와 고용을 크게 늘릴 가능성은 낮다.

유로 지역 경제는 미국보다 더 어렵다. 2012년 유로 지역 경제는 마이너스 0.5% 성장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다소 나아지겠지만 잘해야 0% 성장일 것이다.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에 이어 요즘 ‘FISH(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네덜란드)’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데, 유로 지역의 위기가 점차 중심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기로에 선 세계 증시, 선진국 ‘박스권’…경기 회복 살펴야
기로에 선 세계 증시, 선진국 ‘박스권’…경기 회복 살펴야
중국 등 이머징 마켓 경제성장으로는 한계

크게 보면 세계경제의 성장 축이 기존의 선진국(G7)에서 중국과 인도를 포함하는 이머징 마켓으로 이전되는 과정이다. 세계경제에서 미국의 역할이 축소되고 중국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08년 미국의 금융 위기가 세계경제를 극심한 침체에 빠뜨리지 않은 것은 중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 진통은 있게 마련이다.

중국 경제는 지난 30년 동안 ‘연평균 10% 성장’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달성했다. 그러나 2008년 올림픽을 개최한 이후 경제성장률이 7~8%로 떨어지고 있다.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성장률이 둔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고성장에서 성장 둔화 단계로 가는 국면에서 기업과 금융회사들이 부실해진다. 고성장 때 투자를 많이 했지만 성장이 한 단계 둔화되는 국면에서 수요가 그만큼 뒷받침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경제의 경착륙을 막기 위해 투자에서 소비 중심으로 경제성장을 유도할 것이다. 정부가 투자를 지시하면 공기업은 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정부가 가계에 소비를 늘리라고 강요할 수 없고 소비는 가계의 소득 증가에 따라 서서히 늘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 경제가 1980년대 매년 10% 넘게 성장하다가 1988년 올림픽 개최 이후 성장률이 7% 안팎으로 떨어졌다. 고도성장 때 과잉투자의 결과로 기업을 뒤따라 은행이 부실해졌다. 부실은 외과 수술을 통해 털고 넘어가야 했는데, 그게 바로 우리가 1997년에 경험했던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였다. 중국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와 비슷한 과정을 거칠 가능성이 높다.

세계 주요국 주가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수준으로 거의 되돌아 왔다. 2000년 이후로 오랫동안 지속된 박스권을 벗어나 새로운 상승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시장을 지배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경기 회복 속도가 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유로 지역의 국가 채무 위기는 언제든지 수면 위로 부상할 수 있고 미국 민간 부문의 디레버징 과정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중국 경제도 수면 아래서부터 부실이 쌓여 가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몇 달 동안 국내외에서 발표하는 경제지표에 특별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위험 신호를 미리 파악하는 것도 좋다. 필자는 몇 개의 지표(엔-캐리트레이드 지수, 미 달러 지수, 호주 달러·스위스 프랑 상대 환율, 한국과 이탈리아 CDS 등)로 금융 스트레스 지수를 작성해 글로벌 금융시장의 위험도를 측정하고 있다. 불안 조짐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주가가 추세적으로 상승하는 시기에는 주식을 사서 장기 보유하는 게 정답이다. 그러나 선진국 주가는 2000년부터, 이머징 마켓 주가는 2008년부터 일정한 범위 내에서 변동하고 있다. 그래서 자산 배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앞으로 두어 달 정도 주가가 더 오를 수도 있다. 이 시기가 금융자산 배분을 재조정 할 때다.


김영익 창의투자자문 대표 yi.kim@kcinve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