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10곳 중 1곳은 빚 갚을 여력이 없는 부실 위험 기업으로 나타났다. 건설 경기 회복을 점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들의 부도가 꼬리를 물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러면 금융권에 미칠 충격은 9조 원에 달할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국내 건설 부문에 대해 실시한 ‘스트레스 테스트(재무 건전성 심사)’ 결과다.
KDI는 최근 ‘건설 재무 안정성에 대한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2000년 이후 국내 건설 부문의 재무 건전성 추이를 분석했다. 자산 총액이 일정 기준 이상이고 외부 회계감사를 받는 모든 기업들을 대상으로 했다.
그 결과 지난해 기준 부실 위험 기업은 조사 대상의 12.9%인 202개로 집계됐다. 부실 위험 기업은 ▷자본 잠식이거나 부채비율 500% 이상 ▷영업적자이거나 이자보상배율이 100% 미만 ▷총부채 중 단기 차입의 비중이 60% 이상 등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기업이다. 빚은 많고 수익은 떨어져 당장 부도 위기에 처한 기업들이다.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285개까지 치솟았던 부실 위험 기업 수는 2010년 192개로 감소했다가 지난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김성태 KDI 연구위원은 “구조조정에 따라 건설 부문의 재무 건전성이 조금씩 정상화되는 듯했지만 최근 다시 분위기가 악화하고 있다”며 “글로벌 경기 부진이 부동산 부문에 본격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부실 위험 기업의 부채 규모는 13조 원에 달했다. 경기 회복이 늦어지면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기업들의 부도 행진이 시작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때 회수가 불가능한 부실채권은 9조 원에 달해 금융권의 충격이 클 전망이다. 부실 위험 기업의 일반적인 기준(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 100% 미만)을 적용하면 부실 위험 기업 수는 400개 수준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실 위험 기업 부채 13조 원
지난해 건설 부문 업체들의 부채비율은 평균 233.5%를 나타냈다. 금융 위기 당시 2008년(279.8%)보다 소폭 개선됐지만 절반 이상이 자본 잠식 상황인 시행사를 뺀 것이라 큰 의미는 없다.
수익성 지표인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평균 3.2%로 2005년(8.0%) 이후 6년 연속 하락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얼마나 갚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자보상배율은 54.2%까지 떨어졌다. 정상적인 영업 활동으로는 이자도 낼 수 없다는 의미다.
건설 경기에 기여했던 4대강 사업은 마무리 단계다. 경제가 성숙기에 접어들면 건설 투자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하락하게 된다. 국내 건설 부문 사업체 수가 2000~2010년 45% 급증할 정도로 비대해져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업계는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형사들도 주택 부문 적자를 플랜트 등 해외영업본부가 벌어오는 수익으로 막는 방식이다. 토목 등 관급 공사도 최저가 낙찰제 등으로 이익을 내기 힘들어졌다.
송흥익 KDB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일본은 1991년 부동산 거품 붕괴 당시 건설 업체 부채비율이 550%에 달해 12년간 부채 축소 과정을 거쳤다”며 “국내 건설사들도 부채를 줄이는 데 4~5년 정도 더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연구위원은 “건설 수요를 인위적으로 부양하면 가계부채만 늘릴 가능성이 높다”며 “기업의 해외 진출 역량을 키워주는 게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김유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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