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라고 하면 어두웠던 외환위기 시절이 떠오르곤 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젊은 인재들에게 IMF 같은 국제 금융 기구는 글로벌 무대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 되고 있다. 높아진 국격(國格)에 따라 한국 인재들이 더욱 분주하게 국제기구에 노크하고 있다. 한국형 ‘글로벌 리더’의 탄생이 점점 기대되는 이유다.

지난 11월 15일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 새년천기념관. 세 시간 넘게 영어로만 진행되는 프레젠테이션이었지만 이를 듣는 500여 명의 눈빛은 긴장을 잃지 않았다. 기획재정부가 주최한 ‘제4회 국제 금융 기구 채용 박람회’의 첫날이었다. 한국 인재들에게 국제 금융 기구 취업의 길을 터주기 위해 마련된 행사다.

IMF·세계은행(WB)·아시아개발은행(ADB)·아프리카개발은행(AfDB)·유럽부흥개발은행(EBRD)·미주개발은행(IDB)·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7개 기구의 인사 담당자들이 채용 설명회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국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구본규(32) 씨는 “전공인 공공 정책 분야에서 국제 업무 경험을 쌓고 싶어 참석했다”며 “ADB와 OECD 등에서 한국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국제 금융 기구는 세계의 자원과 권력을 재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의 지위는 여기서 남다르다. 6·25전쟁 직후 최빈국으로서 이들의 개발 원조를 받았지만, 지금은 개도국을 지원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원조를 받다가 베푸는 입장으로 바뀐 거의 유일한 사례다.

하지만 실질적인 ‘파워 게임’의 무대인 국제 금융 기구에서 한국의 지위는 미미했다. 무엇보다 국가 발언권과 직결되는 한국인 직원의 비중이 지분율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가 바뀐 것은 최근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이어 김용 세계은행 총재의 임명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 인재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주요 20개국(G20) 의장국을 맡는가 하면, 최근 아시아 최초로 대형 국제 금융 기구인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유치하면서 ‘국격’도 높아졌다.

한국 인재들의 진출도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ADB와 IDB 등 국제 금융 기구에 8명의 한국 청년 인재들이 새로 진출했다. 한국의 발언권이 상대적으로 높은 ADB는 젊은이들의 관심이 높다. 회계·법무·인사 등 다양한 부서에 한국인 4명이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경제부처 24시] 국제기구 진출 러시…‘국격’ 높아진다
기획재정부 주최로 15일 서울 숙명여대에서 6개 국제금융기구와 OECD 인사담당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4회 국제금융기구 채용박람회'에서 참석자들이 인사담당자의 채용 계획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2.11.15
기획재정부 주최로 15일 서울 숙명여대에서 6개 국제금융기구와 OECD 인사담당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4회 국제금융기구 채용박람회'에서 참석자들이 인사담당자의 채용 계획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2.11.15
상반기 ADB·IDB 등에 8명 진출

국제기구 담당자들은 인재의 핵심 요소로 소통 능력과 경험을 꼽는다. 지난해 ADB에 발탁된 박효은 인사 담당자는 “경제뿐만 아니라 에너지·기후변화·환경 등 다양한 전문 분야의 인재가 필요하다”며 “비슷한 영역에서 대개 8년 정도의 경험을 쌓은 이들을 주로 찾는다”고 설명했다.

업무 경험을 충분히 쌓은 고위급에서는 한국인의 진출이 더욱 눈에 띈다. ADB는 지난 10월 예산심의위원회(BRC) 위원장에 윤여권(행시 25회) ADB 이사를 임명했다. BRC 위원장은 연간 22조 원이 넘는 ADB의 사업 예산 정책과 집행 방향을 심의하는 만큼 ADB 내 6개 위원장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자리다. 한국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내부 평가가 많다.

세계은행이 한국에 사무소를 설립하기로 한 것도 최근 화제였다. GCF 사무국 유치와 맞물려 한국이 국제기구의 메카로 떠오를 것이란 전망이 많다. 국내 민간 기업들도 개발도상국에 대한 투자 기회를 잡기에 유리해질 것이란 분석이다. 은성수 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이제 한국이 국제사회에 힘을 발휘할 때가 됐다”며 “청년들이 국제기구 진출을 통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꾸준히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