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3일 찾은 신세계백화점 본점. 여성 의류 매장을 돌아보니 정중앙에 탁 트인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한쪽에는 가방이, 다른 한쪽에는 블라우스가, 벽면에는 액세서리가, 코너에는 신발이 제각각 진열돼 있다. 칸막이가 없는 것을 보니 같은 매장의 것이 분명하다.

입구에 서 있는 마네킹은 올봄 유행이라는 프린트 원피스와 검은색 재킷을 입고 있는데 각각 이탈리아와 미국에서 들여온 것이다. 손에 들고 있는 가방은 프랑스 제품이다. 여러 브랜드의 제품을 한곳에 모아 판매하는 이곳은 바로 ‘편집매장’이다. 세계 각국에서 많게는 사십여 개의 브랜드 상품을 한곳에 모아 놓은 일종의 뷔페식 매장이다.
[비즈니스 포커스] 백화점 편집매장 ‘다각화’ 붐, 상품군 진화…타깃도 세분화 추세
편집매장이 본격적으로 백화점 내로 진출한 것은 1996년쯤이다. 신세계백화점이 국내 최초 생활용품 편집매장 피숀을 본점에 선보였고 2004년 해외 디자이너 브랜드 ‘분더샵’을 강남점에 오픈했다. 갤러리아백화점도 1997년 여성 의류 편집매장 ‘지스트리트 494’를 론칭했고 1999년 명품관에 국내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로 구성된 ‘지디에스’를 열었다. 하지만 한동안 편집매장은 견고한 기존 입점 브랜드 파워 사이에서 대중성을 확보하기가 만만치 않았던 것이 현실이다.

드디어 편집매장의 전성시대가 온 것일까. 최근 백화점 편집매장의 활약이 돋보인다. 신세계백화점은 올해 1~2월 매출 실적에서 편집매장이 상품군별 신장률 베스트 10중 1, 2, 4, 5, 7위를 기록해 50%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고물가로 소비 심리가 위축되며 백화점 매출이 많게는 한 자릿수 성장에 그치는 반면, 편집매장 매출은 수직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롯데백화점에서도 “분야에 따라 다르지만 신장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고 현대백화점은 “남성 잡화 편집매장은 매출이 40% 상승했다”고 밝혔다.

편집매장의 활약이 돋보이는 가운데 매장 수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2004년 이전 3개였던 편집매장을 현재 20여 개로 확대 운영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4~5년 전부터 편집매장을 선보여 현재 30여 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고 갤러리아백화점은 9개 매장을 열고 있다. 롯데·신세계·현대·갤러리아·AK플라자 등 국내 유명 백화점은 모두 3~4월 내 신규 편집매장을 오픈했다.
[비즈니스 포커스] 백화점 편집매장 ‘다각화’ 붐, 상품군 진화…타깃도 세분화 추세
백화점 내 층마다 하나꼴로 있어

주목할 점은 편집매장의 다각화다. 브랜드 선정에서부터 매장 운영에 이르기까지 자유롭게 편집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는 만큼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는 모습이다. 먼저 취급하는 상품군이 확대되고 있다. 의류뿐만 아니라 액세서리·신발·가방·모자 등 아이템별로 별도의 매장을 구성하는 형태다. 조규권 신세계백화점 패션전략팀 팀장은 “초기에는 의류 중심으로 편집매장을 구성했지만 최근에는 명품과 아동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군의 편집매장을 선보이고 있다”며 “편집매장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세계백화점은 현재 식품을 제외한 전 품목에서 편집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유명 스카프만 모은 ‘쏘 솔트’, 셔츠와 니트 등 단품을 모은 ‘S de S’도 있다. 현대백화점은 프리미엄 청바지만 모은 ‘데님바’, 향수 편집매장인 ‘CEO퍼퓸스’, 홈데코 분야에서 ‘H by H’ 등 다양한 분야의 편집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백화점 내 편집매장은 층마다 하나꼴로 있는 셈이다.
[비즈니스 포커스] 백화점 편집매장 ‘다각화’ 붐, 상품군 진화…타깃도 세분화 추세
시장 세분화 전략에 따라 타깃이 명확해졌다는 것도 특징이다. 초기 편집매장이 여성을 주 타깃으로 한 데 비해 최근에는 연령대와 성별에 따라 맞춤식으로 제공되고 있다. 패션·외모에 관심을 갖는 남성이 늘면서 의류뿐만 아니라 벨트·구두 등을 파는 잡화류 편집매장(현대백화점의 ‘로열마일’, 신세계백화점 ‘맨즈컬렉션’, 갤러이아백화점 ‘지 스트리트 494옴므’ 등)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

현대백화점 이성환 MD개발담당 바이어는 “꾸미는 남성들이 늘면서 남성 패션의 핵심 요소로 벨트가 부각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롯데백화점은 최근 젊은 층을 겨냥한 ‘영(YOUNG) 매장’을 확대하는 추세다. 지난 2월 본점에 20~3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한 ‘바이 에 토르’를 선보였고 3월 31일에는 본점 에비뉴엘 5층에 ‘10꼬르소꼬모’를 오픈하고 서점·갤러리·카페 등으로 구성된 복합 문화 공간을 열었다. 이곳은 20~30대 여성뿐만 아니라 중국인·일본인 등 외국인 고객을 위해 외국어 방송 서비스를 하고 있다.

브랜드 발굴에 있어서도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 없는 해외 브랜드 의류뿐만 아니라 해외 유명 편집매장 자체를 들여오기도 한다. 롯데백화점이 지난 3월 25일 오픈한 ‘키슨’은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다. 국내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데도 힘쓰고 있는 모습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2월 홍대와 가로수길 등 로드숍 디자이너를 선정해 ‘디자이너 슈즈 편집 숍’을 연 데 이어 3월 31일과 4월 6일에 가로수길과 청담동에서 활약 중인 디자이너를 한데 모아 ‘신세계 앤 컴퍼니, 컨탬퍼러리’를 오픈했다. 비교적 경제적인 가격대로 편집매장의 틈새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우리 백화점에만 있어요’

백화점들이 편집매장을 다각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소비자들의 니즈를 자연스럽게 좇은 결과라는 해석이다. 롯데백화점 홍보팀 관계자는 “요즘 고객들은 트렌드를 빨리 받아들이고 소비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해외 트렌드를 곧바로 반영하기에는 기존 브랜드엔 한계가 있다. 하지만 편집매장에선 트렌드에 맞는 상품만 골라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렌드를 좇는 고객의 니즈가 여성 의류뿐만 아니라 전 상품군에서 생겼고 매장은 이를 따라간 것이라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차별화’를 주된 이유로 꼽는다. 기본 브랜드는 동일한 상품을 모든 백화점에서 볼 수 있는 데 비해 상품군·콘셉트 등에서 머천다이저(MD) 뜻대로 편집이 가능한 편집매장에서는 독특함을 유지할 수 있다. 신세계백화점 홍보팀 관계자는 “고객 입맛에 맞는 상품을 발굴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선보여 백화점의 경쟁력과 고객 충성도를 높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독특한 상품을 소량 들여온 뒤 반응이 좋으면 대량 수입할 수 있는 ‘테스트 마켓’의 역할도 가능하다.

장기적 관점에서 백화점의 성장 동력을 키우려는 포석이라는 관점도 있다. 아직 대다수 편집매장은 협력 업체와 컬래버레이션으로 진행되는 모습이다. 백화점은 매장 면적을 내주고 수수료를 받는 형태가 많다. 하지만 백화점에서 전담 바이어를 두고 직접 소싱부터 매장 인테리어, 재고 관리를 담당하는 형태를 늘리면 백화점의 특색을 더 잘 나타낼 수 있다. 이에 따라 롯데백화점은 지난 2월 직접 매입 편집매장인 ‘바이 에 토르’를 열고 “협력사에서 독립하고 자체 경쟁력을 키우는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키우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아직 편집매장은 ‘매출 견인’보다 ‘투자’의 성격이 강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물론 신세계백화점을 대표로 최근 편집매장이 빠른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전체 매출 규모에서 편집매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10%가 되지 않는다. 백화점마다 다각화를 모색하는 것도 편집매장이 아직 ‘진행 중’이라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패션 업계 전문가들은 향후 편집매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상품 하나하나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편집매장을 운영하는 기법에 있어서도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