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의존도 높고…변화 속도는 느려


2000년대 중반까지 TV와 디스플레이, 반도체 시장에서 전 세계를 호령했던 일본 전자 회사들의 침몰이 지속되고 있다. 2011년은 일본 대지진, 태국 홍수, 엔화 강세로 소니·파나소닉·샤프 등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고 D램 회사인 엘피다는 자금난 속에 공격적인 감산과 함께 주요 거래처들에 선수금을 요청할 정도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필자는 2005년부터 분기에 한 번씩 일본의 주요 전자 회사들의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도쿄·오사카·교토 등을 방문하고 있다. 2005년에 방문한 소니는 TV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이 컸고 파나소닉은 PDP TV가 기술적으로 월등하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하지만 지금 소니와 파나소닉은 TV에서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면서 해당 사업에 대한 사업 축소를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소니는 삼성전자와 S-LCD 설립 후 단 한 번도 TV에서 흑자를 기록하지 못했고 급기야 32인치 이하 중소형 TV 사업 철수와 함께 삼성전자와의 조인트 벤처인 S-LCD의 지분을 정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FILES) This file photo taken 02 December 2003 shows Sony headquarters towers in Tokyo Sony.  A group led by Japan's Sony Corp. struck an agreement in principle 13 September 2004 to acquire Hollywood's last major independent studio, Metro-Goldwyn-Mayer, after Time Warner dropped its bid, sources said.  Sony agreed to stump up nearly five billion USD for what was once Tinseltown's greatest dream factory after US media giant Time Warner withdrew its offer when it was outbid, according to reports.      AFP PHOTO/Yoshikazu TSUNO/FILES
(FILES) This file photo taken 02 December 2003 shows Sony headquarters towers in Tokyo Sony. A group led by Japan's Sony Corp. struck an agreement in principle 13 September 2004 to acquire Hollywood's last major independent studio, Metro-Goldwyn-Mayer, after Time Warner dropped its bid, sources said. Sony agreed to stump up nearly five billion USD for what was once Tinseltown's greatest dream factory after US media giant Time Warner withdrew its offer when it was outbid, according to reports. AFP PHOTO/Yoshikazu TSUNO/FILES
완벽 추구 ‘장인 정신’은 속도전에 약해

일본의 전자 회사들이 부진한 이유는 무엇이고 그들의 경쟁력은 얼마만큼 훼손됐을까. 일단 일본 전자 회사들 중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회사들의 주요 제품은 TV· PC·휴대전화 등 완제품 회사들이 많다. 여기에 범용화가 진행된 D램·디스플레이·2차전지 등도 함께 가격 경쟁 심화 속에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 전자 회사들의 침몰하는 첫 번째 이유는 한국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에서 일본 업체들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호적인 환율도 한국 업체들의 경쟁력 제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제공했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발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산업 환경 하에서 일본 업체들의 대응 속도가 한국 업체들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 업체들은 제품 사이클이 짧은 전자 산업의 특성상 제품 개발 속도가 빠르며 사양 변경에 대한 대응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일본 전자 회사들은 한국 업체와 달리 특유의 장인 정신 때문에 완벽한 제품이 아니면 출시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제품 개발 속도가 한국 업체들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이 디지털 산업 환경 하에서는 대응 능력 저하로 작용하고 있다. 제품 개발 속도에서의 악순환은 거래처로부터 신뢰도 상실로 작용하면서 해당 사업에서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고 이에 따라 해당 사업에 대한 투자와 마케팅을 축소하면서 경쟁력이 더욱 떨어지는 악순환이 연속되고 있다.

두 번째 원인은 생산 시설의 세계화가 예상보다 취약하고 공급망관리(SCM)도 체계적이지 못하다. 일본 전자 회사들의 상당수가 생산을 여전히 일본에서 하고 있다. 물론 일본 대지진 이후 자연 재해 리스크가 커지면서 해외 생산 비중을 높이고 있는 추세지만 한국 업체들 대비 자국 생산 비중이 높은 점이 경쟁력 저하로 작용했다. 일본 전자 회사들 중에서 중국 공장에서 재미를 본 회사는 거의 없으며 많은 회사들이 중국 비중을 줄이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중국 톈진·후이저우·둥관·쑤저우 등에서 현지화에 성공했고 관련 협력사와 계열사들도 함께 해당 지역에 진출해 있다. 일본 전자 회사들의 해외 현지화 공장도 이번 홍수로 어려움을 겪은 태국과 원가 경쟁력이 취약한 대만·필리핀 등지다. 해외 생산 비중이 작아 SCM도 한국 업체들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원인은 내수시장 규모가 크다는 점 때문에 적극적인 해외시장 개척이 미진했다는 점이다. 일본 내수시장은 한국의 3배 이상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전자 회사들은 일본 내수 매출만 가지고도 소폭의 흑자가 가능했다. 파나소닉·NEC 등 일본 주요 전자 회사들이 일본 내수용으로만 휴대전화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점은 좋은 예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작은 내수 규모 때문에 적극적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했고 이를 통해 규모의 경제 효과를 통해 원가 경쟁력을 더욱 높일 수 있었다.
[위기의 일본] 일본 기업, 왜 지지부진한가?
전자·소재 포기…재생에너지서 승부

그러면 일본 전자 회사들이 모든 면에서 한국 업체들에 떨어질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핵심 부품과 소재 부문에서는 여전히 일본 전자 회사들의 벽이 높다. 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한국 전자 회사들이 전자 소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던 점이 좋은 예다. 하지만 일본 대지진 이후 한국 전자 회사들도 자체 소재 경쟁력 제고를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으며 구매처 다변화 노력도 함께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이 경쟁력을 확보한 전자 소재 부문에서도 경쟁력 하락은 불가피해 보인다.

한편 일본 전자 회사들은 한국 업체들과의 경쟁 심화로 태양광·LED·풍력·전기차용 부품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로 제품군을 변경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분야는 성장성이 높다는 점과 한국 전자 회사들의 도전이 미미하다는 점에서 일본 업체들에는 새로운 기회 요인이 되고 있다. 파나소닉·도시바 등은 해당 부문에서 안정적인 이익이 창출되고 있으며 샤프와 히타치도 동 부문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잡고 있다.

다만 2011년에는 유럽 재정 위기로 인해 태양광 수요가 줄어들면서 신·재생 부문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일본 전자 회사들의 미래 사업 방향이 경쟁이 심한 전자 제품과 관련한 전자 부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 업체들의 시장 지배력 상승 국면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한편 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전자 회사들의 탈일본화가 지속되고 있다. 일본 회사들의 탈일본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주요 거래처들도 일본 대지진 이후 해당 사태가 다시 일어날 것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주요 거래처들의 구매 부서는 일본 비중을 낮추는 것이 주요 과제가 됐다. 따라서 일본 전자 회사들이 현재의 위치라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해외 생산 비중을 높일 수밖에 없다.

세계 1위의 적층세라믹콘덴서 업체인 무라타는 2013년까지 해외 생산 비중을 30%까지 높일 계획이며 반도체 웨이퍼를 만드는 신에츠 등도 해외 생산 비중을 높이고 있다. 여기에 소니는 2011년 4분기부터 일본 내 TV 생산 비중을 제로 수준까지 낮췄다.

다만 일본의 해외 생산 기지 현지화 노력이 얼마만큼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노사문제 등 현안 과제가 많으며 이미 현지화에 성공한 한국 업체들과 경쟁해 경쟁력을 확보할 가능성도 높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수익성 측면에서 일본 공장의 탈일본화가 원가 경쟁력 상승으로 바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노근창 HMC투자증권 기업분석팀장 greg@hmci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