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선 콘텐츠 프로젝트 그룹 담(談) 대표


“어이 딸, 지금 밖에 눈 엄청 많이 오거든. 미끄러우니까 차 조심해라.”

당신 할 말만 하고 뚝 끊어버리는 전화 매너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 내 나이 마흔을 넘긴 지가 언제인데, 아버지는 아직도 기상이변이나 사건 사고가 생기면 득달같이 전화를 하신다. 살가운 안부를 챙겨 묻는 것도 아니다. ‘눈이 오면 눈이 온다’, ‘홍수가 나서 길이 통제됐단다’, ‘올림픽대로에 5중 추돌 사고가 났는데 지금 어디 있냐?’ 등등. 단도직입, 본론으로 들어가 당부의 이야기만 쏜살같이 남기고 사라지신다.

몇 해 전 유난히 눈이 많았던 겨울, 어느 날의 일이다. 당시 나는 빙판길에서 넘어져 꼬리뼈를 다친 상태였다. 평소 하이힐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던 나는 안타깝게도 한동안 운동화 외 다른 신발을 신을 수 없는 신세가 됐다.

그날도 언제나처럼 분주한 마음으로 현관을 나서고 있었다. 마침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이 있는 관계로 복장을 갖춰 입어야만 했다. 많이 나아진 듯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구두를 신기에는 무리인 것 같았다. 선뜻 마땅한 신발을 골라잡지 못하고 현관을 서성였다.

‘날이 날인 만큼 무리를 좀 해 봐?’

비교적 무난해 보이는 높이의 구두를 선택하고 발을 집어넣으려는 순간이었다. 거실에서 나를 주시하던 아버지가 무언가 주섬주섬 챙기며 나오셨다.

“오늘 눈 많이 온단다. 이거 신으면 되겠던데?”
[아! 나의 아버지] 눈 오는 날, 가죽 부츠의 추억
창고를 정리하다가 챙겨 놓은 게 있다면서 신발장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손에 어색하게 들려 나온 주인공은 나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가죽 부츠. (물론 단화다!) 죽어라 굽 높은 구두만 고집하던 딸에게 아버지는 평소 갖가지 의학 기사들을 인용하며 하이힐의 폐해에 대해 역설하곤 하셨다. 저 가죽 부츠는 또 얼마나 못마땅해 하셨던가. 한 계절 신고 내팽개치는 신발은 왜 그렇게 많은지 핀잔을 주며 신발장 자리까지 많이 차지하는 부츠라며 천덕꾸러기 취급을 하셨다. 그런데 저 신발을 어떻게 아버지가?

구두약까지 칠해 반짝반짝 광을 낸 가죽 부츠를 건네며 운동화보다 한결 더 패셔너블할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고는 몸이 불편한 딸을 위해 무릎을 굽히고 손수 신발을 신겨 주시는 게 아닌가. 내려다보는 시선 밑으로 아버지의 마른 어깨가 선명히 들어 왔다. ‘그래 맞아. 아버지는 이런 사람이었지.’

겉으로는 그 누구보다 강하고 때로는 모진 모습을 보여도 자식을 위해 서슴지 않고 무릎을 굽히는 분이시다. 고입 연합고사장에서도 보호자들이 입장할 수 있는 마지막 구역을 넘어 들어와 난생처음 큰 시험을 치르는 딸에게 ‘파이팅’을 외쳐 주셨다. 대입 학력고사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터덜터덜 걸어 나올 때에도 그 많은 무리들 중 맨 앞에서 손을 흔들던 사람이 바로 아버지였다. 부모란 무엇일까. 그 자식은 많은 순간 잊고 살지만 단 한 번도 그 곁을 떠나지 않는 마지막 보루가 아닐까.

앞으로도 많은 날 눈이 오고 비가 내리고 사건 사고들이 일어날 것이다. 아버지의 그 무뚝뚝하고 일방적인 전화를 받을 날들이 아직도 한참이나 더 많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20년, 아니 30년쯤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