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뽈랄라 아저씨’ 현태준
“잡동사니의 보물섬, 취미 생활의 폭포수, 아이디어의 목욕탕에 풍덩하실 것을 진짜로 환영합니다.”
홍대 앞 카페거리로 유명한 다복길, ‘뽈랄라 수집관’이라는 파란색 간판을 따라 좁고 기다란 계단 입구에 들어서니 손글씨로 된 ‘친절한’ 환영 메시지가 먼저 반긴다. 뒤이어 이어지는 ‘뽈랄라 수집관’의 정체에 대한 설명. “뽈랄라 수집관에는 엉뚱이 현태준 아저씨가 모아온 세상의 장난감·인형·만화책·잡지·괴짜상품…(중략) 등등 여러 가지 재미나고 신기한 물건들이 가득 전시돼 있습니다.” ‘여기는 대체 뭐하는 곳인가’라는 궁금증에 대한 대답임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호기심을 더 자극한다. 마치 전혀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입구에 서 있는 느낌이랄까.


짐작했겠지만 아저씨는 직함이 많은 사람이다.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고 수필가이면서 장난감 수집가다. 동시에 여행 작가이고 최근엔 ‘뽈랄라 싸롱’을 오픈해 술집 주인장 타이틀까지 달았다. 술집 주인 빼고 나머지는 ‘전방위 아티스트’ 쯤으로 통칭할 수 있겠다. 아저씨 스스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현대미술 아리스트’라고 했다. ‘아리스트’는 아티스트의 ‘짝퉁’으로, 예술을 위한 예술, 그러니까 일부의 사람끼리만 소통되고 대중과는 거리가 먼 예술을 ‘지양’하고 생활 속의 예술을 하는 사람쯤의 의미가 담겨 있다.
아저씨에 대해 부연 설명하자면 이렇다.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난 아저씨는 서울대 미대 공예과를 졸업, 결혼 후 역시 미술을 공부한 아내와 함께 종이 장난감이나 액세서리 등을 개발하는 ‘신식공작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인터넷 포털과 잡지 등에 만화를 연재하기도 했고 서울예술대 등에 출강하기도 했다.

“3년 전 연희동 작업실에서 일할 때 거기 쌓인 물건들을 가져다 수집관을 만들어 입장료를 받으면 월세는 빠지겠다는 얄팍한 생각으로 시작했죠. 그런데 진열하는 데만 1년이 걸렸고 그동안 계속 월세는 빠져나가고 작업도 못하면서 들어간 돈이 엄청났어요. 더구나 막상 연희동 작업실의 물건을 갖다가 오픈했는데도 그쪽 물건이 하나도 줄지 않았어요. 혹 떼려다 혹 붙인 셈이죠. 연희동 작업실 말고도 제3의 창고가 또 있죠. 진짜 좋은 건 거기 다 있어요. 남들이 보기엔 허접할 수 있지만 제게는 소중한 것들이죠.”
처음 수집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고 했다. 사실 아저씨는 원래 ‘수집벽’이 있긴 했다. 오래된 물건도 잘 버리지 못하고 뭔가 주워오는 걸 좋아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재미 삼아’였던 수집이 ‘일’이 된 건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로 문구점들이 폐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부터다. 장난감들이 내다 버려지는 광경을 보며 아저씨는 마음이 급해졌다. ‘버리기 전에, 없어지기 전에 수집해야 한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아저씨는 장난감 수집을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사람들은 가치 있고 돈 되는 것만 보관하고 하찮은 것들은 다 버리죠. 돈과는 관계없지만 우리에게 꽤 중요한 물건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아쉽게도 수집관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조만간 전시물들을 치우고 공간 리뉴얼을 통해 ‘렌탈 쇼케이스장’으로 바꿀 예정이기 때문이다. ‘뽈랄라 수집관 시즌2’의 시작이다. “자기만의 수집품을 전시하고 판매도 하는 공간으로 대여할 예정입니다. 장난감뿐만 아니라 작가의 작품일 수도 있고 수공예품일 수도 있죠. 관람객으로서도 계속 전시물들이 바뀌는 데다 무료입장할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을 겁니다. 전시물들은 일단 데이터베이스화 작업을 거친 뒤 다음 길을 모색해야죠.”
숱한 직함만큼이나 아저씨의 하루는 무척 바쁘다. 연희동과 홍대, 인천 등 3군데 작업실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뽈랄라 싸롱을 오픈하면서는 ‘마담’ 역할까지 하느라 새벽에 귀가하기 일쑤다. 출판 계약한 책만 다섯 권. 올해 8월에는 1인 잡지 편집장 타이틀도 추가할 계획이다. 잡지명은 ‘오빠 생활’. 아저씨의 말을 빌리면 ‘품격 있는 아저씨들의 저질 문화 잡지’란다. 과거에 유행했던 브로마이드도 부활시킬 생각이다. 벌써 수영복 브로마이드 제작을 위한 아가씨 모델 섭외를 완료한 상태. 아저씨에게 ‘재미니스트이냐’고 물으니 “그냥 마음 편히 사는 것뿐”이라며 “심심한 건 괜찮아도 지겨운 건 못 참는 성격”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해진 길을 가잖아요. 그런데 인생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는 걸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꼭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요. 대신 경제적으로 힘들겠지만 다른 수입원이 생길 수도 있고 부족한 듯 살아도 더 행복할 수도 있죠. 그러다가 또 멋진 일을 만날 수도 있고요.” 아저씨처럼 사는 건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아저씨처럼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어쩐지 위로가 된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