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내년 경제성장률을 3.7%로 제시했다. 정책 목표인지, 전망인지 다소 명확하지 않지만 역대 정부가 제시한 성장률로는 최저치다. 그만큼 경기가 나쁘고 대내외 경제 여건이 좋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경제를 지나치게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봤다는 것은 좀 의아하다. 경기 부양 내지는 성장을 위한 정책적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3%대 성장률을 내놓은 것은 2008년 금융 위기 당시를 제외하고는 전례가 없다. 3.7%라는 숫자는 국책 연구 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3.8%보다 낮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3.8%로 분석됐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최근 5년간 경제성장률 성적표는 2008년 2.2%, 2009년 0.2%, 2010년 6.2%, 2011년 3.8%(잠정치), 2012년 3.7%(잠정치) 등으로 평균 3.22%다. 이명박 정부가 공약으로 내세웠던 ‘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위 경제 대국’은 공염불로 끝나게 됐다.

정부가 내년 성장률을 최저로 잡은 이유에 대해 재정부 관계자들은 ‘시장의 신뢰’와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을 꼽았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년 경제 운용 전략을 바둑에 비유하면서 “일단 두 집을 낸 후에 후일을 도모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정책적 의지보다 경제 현실을 감안한 수치를 내놓아야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YONHAP PHOTO-0823> TV토론 참석한 박재완 장관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일 오전 여의도 63시티에서 한국방송기자클럽이 주최한 TV토론회에서 물가안정과 내수확충 방안 등 경제현안에 대한 토론 참가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1.7.11
    utzza@yna.co.kr/2011-07-11 13:17:08/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TV토론 참석한 박재완 장관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일 오전 여의도 63시티에서 한국방송기자클럽이 주최한 TV토론회에서 물가안정과 내수확충 방안 등 경제현안에 대한 토론 참가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1.7.11 utzza@yna.co.kr/2011-07-11 13:17:08/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최상목 재정부 경제정책국장도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대내외 경제 여건을 정부가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즉 정부가 그만큼 내년 경제가 심각하게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실제 2012년 한국 경제는 벼랑 끝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내년에는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좋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내년 수출 증가율은 7.4%에 그칠 전망이다. 올해 증가율(19.2%)에 비해 11.8% 포인트나 떨어진 수준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역시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10개 수출 주력 업종의 내년 전망치를 조사한 결과 디스플레이를 제외한 9개 업종의 수출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경상수지 흑자 폭은 올해 250억 달러에서 160억 달러로 급감하고 설비투자 증가율 역시 3.3%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민간 소비는 3.1% 증가할 것으로 보이지만 수출의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정부의 내년 성장치는 민간 경제가 새로운 위기의식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률이 예상보다 하향 조정되면서 2013년 균형재정을 달성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석 달 전 예산안을 짤 때 가정했던 성장률은 4.5%였다. 성장률이 1% 포인트 떨어지면 세수가 2조 원가량 줄어든다. 재정부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세수는 성장률 외에 고용·환율·금리 등 여러 변수의 영향을 종합적으로 받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올해 성장률도 4.5%에서 3.8%로 하향됐지만 세수는 오히려 5조 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너무 ‘낙관적인 전망’이라고 평가한다. 올해까진 경기 회복세가 지속되는 상황이었지만 내년에는 투자와 소비를 중심으로 전반적인 경제 심리 악화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 취업자 수 증가 폭이 둔화되는 데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도 크게 오르기 어려워 소비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또 민생 복지 예산을 늘리라는 정치권의 요구도 한층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집권 마지막 해인 데다 총선까지 겹쳐 있어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불가피하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장관이 굳이 ‘시장의 신뢰’를 언급한 대목은 선뜻 납득하기가 어렵다. 낙관적인 관측이라면 몰라도 비관적인 전망에 굳이 신뢰가 필요할까.



박신영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