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폐지 기업’으로 돌아본 2011년

2011년 증시는 선진국발 재정 위기의 여파로 그 어느 때보다 출렁거렸다. 이 와중에 여러 가지 이유로 상장폐지된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투자자들에게 ‘공포’를 안겨주기도 했다. 물론 기업 간의 인수·합병(M&A) 등에 따라 상장폐지 등 폐지 사유가 꼭 부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상장폐지 기업들은 경영 악화, 회계 부정 등의 불명예를 안고 주식시장을 떠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한경비즈니스가 한국증권거래소의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2011년 1월 3일부터 2011년 12월 15일까지 상장폐지된 기업은 코스피에서는 17개, 코스닥에서는 53개였다. 작년 같은 기간 코스피에서 27개, 코스닥에서 72개가 상장폐지된 것과 비교하면 줄어든 수치다. 하지만 상장폐지 사유는 ‘감사의견 거절’이 가장 많았다.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쳐 19개 기업의 ‘감사의견 거절’로 상장폐지 수순을 밟았다. 코스닥에서는 14개 기업이나 ‘기업의 계속성 및 경영의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판정을 받고 시장에서 퇴출됐다.
제일저축은행 장충동 지점에 고객들이 가지급금 지급 번호표를 받기 위해 줄을 길게 서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 20110921..
제일저축은행 장충동 지점에 고객들이 가지급금 지급 번호표를 받기 위해 줄을 길게 서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 20110921..
‘감사의견 거절’ 가장 많아

주목할 만한 것은 비교적 규모가 크고 우량 기업이 많은 코스피 시장에서도 ‘자본잠식’, ‘감사의견 거절’, ‘사업보고서 미제출’ 등의 이유로 증시에서 퇴출된 기업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코스피 시장을 떠난 17개 기업 중 7개 기업이 이 같은 부정적 이유에서였다. 나머지 10개 기업은 모기업으로의 M&A, 자진 상장 폐지, 펀드 해산 등의 이유였다. 코스피 시장에서 부정적 요인에 의해 퇴출된 기업은 셀런·봉신·오라바이오틱스·훈영·티엘씨레저·다산리츠·제일저축은행 등 7개 기업이었다.

이 가운데 다산리츠는 코스피 시장의 신뢰성에 큰 오점을 남긴 곳이다. 다산리츠는 2008년 국토해양부로부터 국내 최초로 자기 관리 리츠(상근 임직원이 직접 자산의 투자·운용을 수행하는 회사) 영업 인가를 획득했다. 리츠는 자본금 70억 원만 유지하면 상장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사채를 끌어들이는 등의 수법으로 자본금을 부풀려 2010년 9월 코스피 시장에 상장했다. 하지만 조직폭력배까지 동원한 자본금 가장 납입 과정 그리고 룸살롱 종업원을 위해 1억 원을 지출하는 등의 횡령 등이 검찰에 의해 적발되면서 상장폐지를 당했다.

다산리츠는 불과 9개월 동안 코스피 시장에 상장돼 있었으며 ‘역대 최단기 상장폐지’라는 오명을 안았다. 갑작스러운 상장폐지로 피해를 본 건 결국 개미 투자자들이었다.

제일저축은행 역시 부실 저축은행 퇴출 과정 속에서 상장폐지된 기업이다. 이 회사는 상장폐지 전부터 기관과 외국인이 먼저 매도에 나서며 여러 의심을 사기도 했다. 외국인은 영업정지 대상 저축은행 발표 1주일 전부터 제일저축은행 주식을 2500주 정도 순매수해 줄곧 바닥을 헤매던 제일저축은행 주가를 상한가로 끌어올린 뒤 거래정지 발표 이틀 전에 4080주를 팔며 ‘먹튀’ 혐의를 받기도 했다.

시장으로의 진입 장벽이 코스피에 비해 비교적 낮은 코스닥 시장에서는 퇴출 기업이 53개였다. 이 중 M&A 등 타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닌 ‘감사의견 거절’, ‘자본잠식’ 등 부정적 요인에 의해 상장폐지된 기업은 46곳이었다. 한 달에 적어도 네 개 기업이 코스피 시장에서 퇴출됐다는 뜻이다.

코스닥 상장폐지 기업 중 11월 상장폐지된 코웰이홀딩스는 독특한 이력과 상장폐지 과정이 눈에 띈다. 코웰이홀딩스는 국내 상장 3호 중국 기업이자 자진 상장폐지한 기업이다. 국내에 상장된 외국 기업이 스스로 국내 증시에서 떠난 것은 코웰이홀딩스가 처음이다. 2008년 1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코웰이홀딩스는 케이만제도에 설립된 지주회사다. 홍콩과 한국에 2개의 자회사, 중국에 1개 손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에서 휴대기기 부품과 카메라 모듈, 픽업용 광부품 사업 등을 추진해 왔으며 애플에 전자 부품을 납품하는 폭스콘·C SMC·LG전자 등을 매출처로 갖고 있다. 상장폐지 이유는 한 사모 투자 전문 회사가 소액주주들의 지분을 공개 매수한 뒤 상장을 폐지하고 기존의 오너와 공동 경영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소액주주의 지분이 없어지면 주식 지분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자동적으로 증시 상장폐지 절차에 들어간 것이다.

2009년 일본 기업으로는 처음 국내 증시에 입성했던 네프로아이티 역시 지난 9월 시장을 떠났다. 네프로아이티는 상장 투자자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네프로아이티는 8월 초 국내 기업 만다린웨스트에 경영권을 넘기기로 하고 소액 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를 했지만 만다린웨스트의 박모 부사장이 청약 증거금을 무단 인출하는 횡령 사건을 저질렀다. 박모 부사장이 규제가 허술한 소액 공모 제도의 허점을 노린 것이다. 결국 네프로아이티는 횡령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과는 시장 퇴출이었다.
부실기업 ‘천태만상’…70개 기업 ‘아웃’
원조 바이오 테마주도 시장서 사라져

바이오 테마주의 원조 격인 제이콤 또한 지난 4월 상장폐지됐다. 2007년 3월 30일 코스닥에 상장한 제이콤은 애초 위성항법장치(GPS) 모듈 제조업체였다. 시초가는 3600원었지만 그해 12월 신약 개발 및 동물 복제 의약품 개발 업체인 비티캠에 최대 주주의 주식을 양도하면서 주가가 뛰기 시작했다. 비티캠은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장모인 박영숙 씨가 대표로 있어 제이콤과의 합병이 더욱 주목을 받았었다.

하지만 가시화된 성과가 좀처럼 나오지 않자 이 회사의 주가는 이후 1~2년간 상한가와 하한가를 오가는 널뛰기를 거듭했다. 바이오 관련 연구 성과가 전해지거나 정치권에서 사업을 지지하는 발언이 있을 때는 주가가 한순간 올랐다가 빠지는 양상을 되풀이했다. 2008년 말 미국 대선 때 버락 오바마 당시 대선 후보가 배아줄기세포 연구 확대를 지지한다고 했을 때에도 제이콤의 주가는 들썩였다. 결국 이 회사는 지난 4월 5일 예금 부족으로 25억3000만 원 규모의 당좌수표 부도가 발생해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했다.

9월 23일 상장폐지된 씨모텍 역시 어떤 의미에서 ‘화제의 기업(?)’이다. 씨모텍은 원래 노트북 무선 인터넷 장비를 만드는 우량 기업이었다. 하지만 나무이쿼티라는 자본금 5000만 원의 ‘기업 인수·합병 전문 회사’가 2009년 인수한 뒤 급격한 경영 실적 악화, 두 번의 대규모 유상증자, 전 대표의 자살이라는 수순을 밟으며 결국 코스피 시장에서 퇴출됐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회사의 최대 주주였던 나무이쿼티는 제이콤에도 투자한 이력이 있는 기업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나무이쿼티를 전형적인 ‘기업 사냥꾼’으로 보고 있으며 현 정권 실세와의 연관성도 거론되고 있다.

올해 초 퇴출된 스톰이앤에프는 코스닥의 유명한 ‘미꾸라지’였다. 스톰이앤에프의 모체는 이미 증시의 뒤안길로 사라진 팬텀이다. 팬텀은 우회 상장 후 주가가 수십 배 급등하며 엔터 기업 우회 상장 러시를 주도했고, 횡령·배임 등 각종 불법을 저지른 채 퇴출돼 엔터 기업 신뢰를 추락시킨 회사다. 스톰이앤에프 역시 유명 MC 및 연예인을 전면에 내세우며 ‘주가 띄우기’에 나섰지만 경영진의 온갖 불법 행위 의혹, 연예인과의 계약을 통한 회계 조작 등이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나면서 결국 코스닥 시장 퇴출이라는 운명을 맞았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