强달러에 밀려 금·은값 폭락

글로벌 자금이 달러로 긴급히 피신하고 있다. 자금난에 처한 유럽 은행들이 달러 확보에 앞다퉈 나서면서 달러 가치가 급등한 반면 유로화는 11개월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안전 자산으로 여겨지던 금마저 달러 강세에 밀려 급락 중이다. 경기 침체 장기화에 따른 수요 감소 우려로 은·구리·원유 등 상품 시장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주 10여 개 유럽 은행이 유럽중앙은행(ECB)으로부터 총 51억 달러의 1주일 만기 달러 대출을 받았다”고 12월 15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전 주(16억 달러) 대비 3배 이상 급증했다. 달러 수요가 늘면서 12월 14일 유로화 가치는 1.2944달러로 11개월 만에 1.3달러 선이 무너졌다.

반면 투자자들은 금을 비롯한 상품 시장에서는 자금을 빼내고 있다. 전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내년 2월 인도분 금 선물은 73.2달러(4.4%) 급락한 온스당 1589.9달러에 마감했다. 금값은 지난 8월 고점 대비 16% 하락했다. 이날 은값은 7.4%, 구리 가격은 4.7% 추락했다. 은의 가치는 지난 4월 사상 최고치의 58% 수준까지 밀렸다. 10월 이후 반등세를 보였던 원유는 경기 불황에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증산 소식까지 겹치면서 급락세로 돌아섰다. 12월 14일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5.6%, 북해산 브렌트유는 4.4% 각각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불안 심리 확산에 따라 달러 강세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 최대 채권 운용사 핌코(PIMCO)의 스콧 매더 수석 애널리스트는 다우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분간 자금이 달러로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EU 위기 ‘점입가경’…해결책 ‘오리무중’
독일 ‘왜 우리가 부담을 지나’

문제는 강달러의 원인을 제공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재정 위기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각국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이탈리아가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자 독일은 불가능하다고 맞섰다.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한 구제금융 재원 마련도 꼬이고 있다. 미국이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유로본드 도입을 다시 거론했다.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는 12월 14일(현지 시간) 상원에 출석해 위기 해결을 위해 유로본드를 포함한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탈리아 정부는 유로본드 도입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몬티 총리는 또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유럽재정안정메커니즘(ESM·5000억 유로) 기금 증액안이 무산된 것과 관련해 독일 등을 비판했다.

독일은 이와 관련, 유로본드 등에 반대한다는 방침을 재차 강조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독일 하원 연설에서 유로본드 발행은 위기 해법이 아니라는 기존 방침을 되풀이했다. 그는 ESM을 확대하는 방안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유로본드는 유럽 재정 위기의 근본적인 해법으로 거론돼 왔다. 그러나 독일은 재정 부담이 늘어난다며 반대하고 있다.

위기 해결을 위한 재원 마련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이날 공화당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Fed는 유로존을 지원할 의사도 권한도 없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도 유로존을 지원하기 위한 IMF 재원 확충에 나서지 않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미국과 영국이 IMF 재원 확충에 참여하지 않으면 유로존 국가인 독일도 불참할 가능성이 크다. 옌스 바이트만 분데스방크 총재는 이날 “(미국 등) IMF 회원국이 부담을 나눠 지지 않는다면 IMF 재원 확충에 참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