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생생 토크
쇄신파의 반란은 하루 만에 무효로 돌아갔다. 한나라당은 결국 박근혜 전 대표가 접수했다.
국회의원 167명의 거대 여당 한나라당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와 최구식 홍보본부장 비서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으로 침몰 중이었다. 침몰하는 배에 선장은 없었다. 홍준표 대표는 먼저 사퇴한 유승민·원희룡·남경필 최고위원에 이어 그만둔 상태였다.
이런 와중에 정두언·원희룡·김성식·정태근·남경필·권영진·주광덕·김세연·구상찬·황영철 등 쇄신파들은 12월 13일 의원총회에서 “재창당만이 살 길이라며 당을 모두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친박계 의원들의 완강한 벽에 부딪쳤다. 이에 따라 김성식·정태근 의원이 탈당을 선언했다. 쇄신파와 친박계의 대립은 극에 달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박 전 대표가 직접 나서 12월 14일 쇄신파 의원들을 만났다. 이 회동에서 두 그룹은 오해를 풀었다. 박 전 대표는 12월 13일 의총에서 친박계 측이 쇄신그룹에 전달한 ‘비대위 체제를 총선까지 끌고 가야 한다’는 쪽지는 자신의 뜻이 아니라고 해명하고 “어떤 사람이나 몇몇이 공천권을 갖는 것은 구시대적 방식”이라며 “공천을 대한민국의 정당 역사 속에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만들어 내겠다”고 공언했다.

‘재창당을 뛰어넘는 변화’는 1996년 민자당에서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재창당하는 수준을 의미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민정당·민주당·공화당 3당 합당으로 태어난 민자당은 5·6공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당시 인기가 높던 이회창·박찬종 씨를 당 고문으로 영입해 수도권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박 전 대표는 12월 15일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도 참석했다. 이날 합의된 내용을 의원들에게 알리고 추인을 받기 위해서다. 박 전대표의 의총 참석은 2009년 5월 원내대표 경선 관련 이후 2년 7개월 만에 처음이었다. 의총에선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박 전 대표가 위원장을 맡아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까지 이 체제를 유지하기로 의결했다.
박근혜의 한나라호(號)는 이렇게 12월 19일 공식 출범했다. 박 전 대표가 당 전면에 나서는 것은 2006년 6월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후 5년 5개월 만이다.
박근혜의 한나라 호는 많은 것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간 친이·친박으로 나뉘었던 당내 계파 갈등은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박 전 대표는 “우리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를 향해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열심히 함께 노력하자”며 당내 계파 해체를 공식화했다.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 의원은 “박 전 대표가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하면 그동안 소위 친박으로 불리던 사람은 다 뒤로 물러나고 당직 근처에 얼쩡거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던 공천권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역사상 모범이 되도록 하겠다. 독립적인 공천심사위원회를 꾸려 외부에서 참신한 인재를 많이 영입하겠다”는 약속에 따른 것이다.
정책 쇄신 의지도 피력했다. 박 전 대표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가 국민에게 다가가고, 국민의 삶을 챙기고, 국민의 어려움에 대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우리 당의 명운이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하루 만에 끝난 쇄신파의 반란은 언제든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전 대표가 사실상 쇄신파가 요구하는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받아들인 게 없어 갈등이 일시적으로 봉합됐다는 설명이다. 당장 정두언·원희룡 의원은 “내용이 없는 합의”라고 했고 김성식·정태근 의원은 “한나라당에 다시 들어갈 생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김재후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hu@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