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경제계 뜨고 진 별

한 해가 저물었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은 올해도 여지없다. 유럽발 금융 위기 한파가 1년 내내 몰아쳤다.

기업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숱한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한다. 그래서 위기는 누군가에겐 기회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낭떠러지가 될 수 있다. 2011년 한국 경제계는 드라마틱했다. 미처 숨 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건·사고들이 벌어졌다.

성공과 실패가 갈리고 승자와 패자가 나눠졌다. 아울러 자연의 섭리에 따라 운명을 뒤로한 영웅들도 있었다.

2011년 뜬 별과 진 별은 누구일까.
안철수·이수만·김범수…신묘년을 화려하게 수놓다
올 한 해 가장 뜬 경제계 인사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이다. 서울시장 선거전이 본격화됐던 지난 9월부터 안 원장은 대한민국 최고의 뉴스 메이커로 떠올랐다. 지난 10월에 치러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의 승자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박원순 시장이었지만 실제 선거전에서 더욱 주목받은 이는 안 원장이었다. 선거가 끝난 뒤에는 강력한 대권 후보로 부상했다.

‘대세’로 불리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지율을 뛰어넘는 유일한 잠룡으로 위상이 상승했다. 유력한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안 원장 관련주인 안철수연구소는 올 들어 주가가 600% 정도 올랐다. 안 원장은 의대 최연소 학과장에서 컴퓨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백신 제작자로, 벤처기업인에서 카이스트·서울대 교수로, 정치권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물로 변화를 거듭했다.

2011년 이른바 ‘안풍’이 강력하게 불고 있는 이유로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에서 원인을 찾는 전문가들이 많다. 국민들이 여당이든, 야당이든 기존 정치권은 구태라는 인식을 가지면서 상대적으로 깨끗한 이미지의 안 원장이 뜨고 있다는 것이다.

2011년은 ‘현대자동차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현대자동차의 활약은 눈부셨다. 세계 자동차 시장의 본산인 미국에서 시장점유율 5%(기아자동차 제외)를 넘어선 데다 중국·유럽에서도 펄펄 날고 있다. 현대차의 약진은 그룹 차원에서 실시해 온 품질 최우선 경영의 결실이기도 하다. 지난 10년 동안 “품질을 잃는다면 모든 것을 잃는다”며 품질 경영을 강력하게 밀어붙인 ‘정몽구 리더십’이 올 들어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리더십은 흔히 ‘뚝심 리더십’이라고 한다. 한 번 결정하면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품질 경영도 마찬가지다. 1999년 취임 이후 특유의 품질 최우선 경영을 도입하면서 지금까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1999년 미국 시장에서 ‘10년 10만 마일 워런티’를 내세운 것도 정 회장의 ‘뚝심 경영’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미친짓’이라고 비웃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예측 불허의 ‘정몽구식 수시 인사’도 재계에 확산될 조짐이다.



K팝 열풍에 양현석 등도 상한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화려한 한 해를 보냈다. 정 부회장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인 트위터를 통해 고객과 적극 대화함으로써 소통 리더십의 대명사로 떠올랐고, 퇴직 임직원 자녀들에게 10년간 연간 최대 1000만 원까지의 학자금을 지원해 주는 파격적인 복지제도를 도입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5월 이마트 법인 설립 비전 선포식에서 청바지를 입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등 사내 행사에서 청바지 차림으로 등장해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등 스타 CEO로 급부상했다. 2011년은 정 부회장이 대표이사 취임 2년 만에 재계 3세대 젊은 경영인을 대표하는 선두 주자로 떠오른 해다.

K팝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엔터테인먼트 회사 오너들이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과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이사다. 이수만 회장과 양현석 이사는 지분 평가액이 각각 2000여 억 원과 1400여 억 원에 이른다. 이 회장은 SM엔터테인먼트의 지분 24.39%(404만1465주)를 보유하고 있으며 양 이사는 YG엔터테인먼트 주식의 35.79%(178만 4777주)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이 회장이 이끄는 SM엔터테인먼트는 동방신기·소녀시대·슈퍼주니어 등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을 연이어 배출했다. 이 회장은 K팝의 일본 진출을 이끌었다. 동방신기가 가장 먼저 일본 진출에 성공하면서 K팝 열풍의 다리를 놓았다. 올해는 일본에 이어 유럽 공략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이 대거 출연한 ‘SM타운 라이브’ 공연을 개최하며 유럽에서도 한류가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렸다.

양 이사는 대표 프로듀서를 겸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로 가수 출신이다. 그룹 해체 후 잠시 솔로 활동을 벌였던 그는 1996년 자신의 별명인 ‘양군’의 이니셜을 따 YG엔터테인먼트를 세우며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발을 디뎠다. 양 이사와 동생인 양민석 현 YG엔터테인먼트 대표, 2인조 그룹 ‘지누션’과 매니저 1명 등 5명이 시작했던 조그마한 기획사는 15년 후 매출 1000억 원을 바라보는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성장했다. 싸이·타블로·빅뱅 같은 유명 가수들이 소속돼 있다.

흔히 SNS 시대라고 한다. 스마트폰 열풍이 불면서 SNS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SNS로 가장 뜬 인물을 꼽으라면 김범수 카카오톡 이사회 의장을 빼놓을 수 없다. 카카오톡 사용자 수가 3000만 명을 넘어서면서 국내 최고의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준말로 “카톡 할게”라는 대화는 일상어가 됐다.

김 의장은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SDS에 근무하다가 한게임을 설립하며 창업 대열에 합류했다. 바둑·장기·포커·고스톱 등의 다양한 게임을 온라인으로 고스란히 옮겨놓은 한게임은 이른바 ‘대박’이 났고 이후 네이버와 합병해 NHN을 설립했다. NHN은 국내 인터넷 업계의 정상에 올랐다. 그렇지만 7년 만에 정상에서 물러난 김 의장은 다시 무선 인터넷 메신저 서비스인 카카오톡으로 제2의 ‘대박’을 일궜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다. 평창 동계 올림픽을 유치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경제계 3인방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박용성 대한체육회 회장(두산중공업 회장) 등이 주인공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이 회장은 지난해 2월 밴쿠버 동계올림픽부터 이번 더반 IOC 총회까지 1년 6개월 동안 170일을 국외에 체류하며 110명의 IOC 위원 대부분을 만났다. 2009년 9월부터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아온 조양호 회장은 국외 체육 행사와 IOC 총회에 빠짐없이 참석하며 ‘평창 알리기’에 나섰다. 조 회장이 2년여 동안 참석한 행사만 총 34개이고 이동 거리는 지구를 16바퀴 돌 수 있는 64만km에 달한다. 박용성 회장의 행보도 남달랐다. 두산중공업 회장임에도 2009년 2월 체육회장에 취임한 이후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열정을 쏟았다. 그동안 총 272일간 국외에 체류하면서 지구 13바퀴를 도는 글로벌 행보를 해왔다고 체육회는 밝혔다.



담철곤·이윤재, 날개 없는 추락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이다. 2011년을 돌이켜보고 싶지 않은 해로 기억할 인물들도 적지 않다.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에게 2011년은 최악의 해다. 담 회장은 지난 10월 300억 원대의 단순 횡령한 혐의로 징역 3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담 회장은 위장 계열사 임원에게 장기간 월급과 퇴직금을 주는 방식으로 회사 돈을 빼돌려 개인적으로 사용한 혐의 등이 인정돼 지난 5월 구속 수감됐다.

담 회장은 동양그룹 창업자인 고(故) 이양구 회장의 둘째 사위로 오리온의 전신인 동양제과에서 잔뼈가 굵었다. 담 회장은 동양시멘트 입사 이듬해 동양제과 구매부 과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30년 동안 대부분 제과 부문에서 경력을 쌓았다. 동양제과 전무·사장·부회장 등을 거쳤다. 오리온을 국내 소비재 기업 중에서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지금은 구치소에서 추운 겨울밤을 보내고 있다.

최근 청부 폭행죄로 검찰에 구속된 이윤재 피죤 회장은 ‘피죤 신화’를 일군 입지전적 인물에서 올해 나락으로 떨어진 경영인이다. 이 회장은 1978년 국내 최초의 섬유 유연제를 선보인 뒤 약 50%에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며 30년 넘게 1인자로 군림해 왔다. 그러나 올 초부터 시장점유율이 계속 하락해 경쟁 브랜드에 선두 자리를 빼앗긴 상태다. 그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직원들을 구타하거나 흉기로 위협하는가 하면 회사 공금을 자기 돈처럼 횡령했다는 의혹을 받으며 세간의 질타를 받았다. 결국 이은옥 전 피죤 사장을 청부 폭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법 처리됐다.

국내 저축은행 경영 1세대인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이 이용준 행장 등과 함께 고객 1만1700명 명의를 도용해 1400억 원 상당을 불법 대출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로 구속되면서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유 회장은 스물여덟 살이던 1968년 6월 22일 삼호상역을 설립했고 1972년 제일상호신용금고로 상호를 변경했다. 유 회장은 외환위기 당시 경안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한데 이어 신영·일은·신한 상호신용금고를 잇달아 인수하면서 성공 가도를 달렸다.

올해는 ‘한국경제 호’를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은 유명 경제인들이 세상을 떴다. 대표적인 인물이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다. 지난 12월 13일 향년 8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사인은 급성 폐손상. 육사 6기 출신인 박 명예회장은 육군 소위로 임관해 1963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했다. 1964년 현 대구텍의 전신인 대한중석 사장 재임 1년 만에 흑자 기업으로 바꾼 후 1968년 4월 포항제철(현 포스코)의 초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포항제철 사장 재임 10년 만에 연 550만 톤의 철강을 생산하는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구두회 LS그룹 명예회장도 지난 10월 2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LS그룹 공동 창업자인 구 명예회장은 LG그룹 고 구인회 창업자의 막내 동생으로 1958년 한일은행(현 우리은행)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1963년 금성사(현 LG전자) 상무를 시작으로 LG그룹에 몸담았다. 이어 범한해상화재보험(현 LIG손해보험)·금성계전(현 LS산전)·금성반도체·럭키금성그룹(현 LG그룹) 미주지역 총괄, 호남정유(현 GS칼텍스) 등에서 CEO로 일했다.





4대 그룹 총수들의 ‘올해의 말’

<YONHAP PHOTO-0763> 이건희 회장 "삼성, 사회적 동반자 돼야"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이건희 삼성 회장이 3일 오전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그룹 신년하례회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향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1.1.3

    seephoto@yna.co.kr/2011-01-03 11:39:23/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이건희 회장 "삼성, 사회적 동반자 돼야"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이건희 삼성 회장이 3일 오전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그룹 신년하례회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향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1.1.3 seephoto@yna.co.kr/2011-01-03 11:39:23/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예년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항상 삼성의 인사 방침은 신상필벌입니다. 잘한 사람은 더 잘하게 발탁하고 못한 사람은 과감하게 누른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습니다.”

- 지난 12월 초 ‘자랑스러운 삼성인상’ 시상식에서 그룹의 인사 기준에 대해 묻자
<YONHAP PHOTO-0769> 정몽구 회장, 저소득층 학생 8만4천명 지원

    (서울=연합뉴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사진)이 2012년부터 5년간 저소득층 대학생과 중·고등학생, 농어촌 지역 초등학생 등 총 8만4천명의 교육을 지원하는 '저소득층 미래인재 육성을 위한 종합 지원 프로그램'을 4일 발표했다. <<산업부 기사참조>>

 2011.12.4

    photo@yna.co.kr/2011-12-04 11:13:58/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정몽구 회장, 저소득층 학생 8만4천명 지원 (서울=연합뉴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사진)이 2012년부터 5년간 저소득층 대학생과 중·고등학생, 농어촌 지역 초등학생 등 총 8만4천명의 교육을 지원하는 '저소득층 미래인재 육성을 위한 종합 지원 프로그램'을 4일 발표했다. <<산업부 기사참조>> 2011.12.4 photo@yna.co.kr/2011-12-04 11:13:58/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시장에서 창의적 변화와 끊임없는 도전만이 생존을 위한 유일한 전략이며, 미래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더욱 노력하고 앞서서 도전하고 새로운 길을 계속 개척해야 할 것입니다.”

- 연초 시무식에서 현대·기아차가 잘되기 위해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는 뜻으로





최태원
최태원
최태원 SK그룹 회장

“‘왜 우리가 다 합쳐서 성장을 위해 밖으로 나가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우리에게 선택의 차원이 아닙니다. 상황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그렇게 가야만 하는 과제입니다.”

- 지난 10월 열린 ‘SK그룹 CEO 세미나’에서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장을 강조하며
안철수·이수만·김범수…신묘년을 화려하게 수놓다
구본무 LG그룹 회장

“미래 성장을 위해서는 지금처럼 해서는 안 됩니다.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이 있으면 먼저 투자하고 그에 따른 많은 인력을 투입해야 합니다. 불황일수록 좋은 인재를 채용할 기회가 많으니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은 과감히 확보해야 합니다.”

- 지난 9월 LG인화원에서 열린 사장단 워크숍에서 인재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취재=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