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학생들에게 토론회를 갖도록 하고 선생님이 “그래, 그게 더 좋겠다”라고 말하는 학생에게 토론 점수를 1점 더 주면 어떨까.

텔레비전 심야 토론은 시작한 지 20년 가까이 되었다. 처음 할 때에도, 지금도 여권 두 사람, 야권 두 사람이 마주 앉아 국민을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주장만 100분 동안 반복하고 상대방을 비판하다가 끝낸다. ‘환경 대 개발’, ‘4대강 살리기 대 4대강 그냥 두기’, ‘보편적 무상급식 대 단계적 무상급식’…. 그때그때 사회적 이슈에 관한 토론이 거의 모두 그러했다.

이게 무슨 토론인가. 말싸움이지. 어린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그런 토론만 보고 자랐다. 그래서 그들이 30대, 40대가 된 지금 그들도 똑같은 토론을 한다. 말싸움에서 지면 안 된다는 것만 보고 배운 것이다. 따지기 잘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란 착각을 대한민국 도처에 전파한 것은 ‘토론 프로그램’이 아니었을까.

어제 발달장애인지원법에 관한 토론회에 갔었다. 6명의 토론자 중 두 명이 서로 다른 주장을 했다. 한쪽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발달장애인들을 적극적으로 모으고 ‘운동’을 통해 힘을 키워서 법을 만들고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쪽은 내년에 총선·대선이 있으니 현재 정부의 복지 정책과 너무 동떨어지지 않는 법을 전문가들이 속히 만들어 총선 전에 국회를 통과시키는 것이 발달장애인에게 더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제1 토론자는 그렇게 법을 만드니까 우리 복지 정책이 엉망이 되고 공급자 위주가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힘을 규합하고 조직의 결속력을 먼저 강화한 다음 힘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 은근히 제2 토론자를 무슨 이권을 바라고 저러지 하고 믿지 못한다.

어른이 되면 사람들은 신념을 갖게 된다. 나의 신념은 정의로운 것이고 너의 신념은 이기적인 것이라고 비판한다. 나는 순수한 신념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데, 너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실상은 세속적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위선자로 몰아세운다. 신념이란 것이 우리의 삶에서 무엇일까. 대중을 위한다고 하면서 실은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 ‘자기실현’ 욕망이지 않은가.
“그래, 그게 더 좋겠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한다. 토론에서 나와 다른 주장을 들으면서 “아, 그렇기도 하겠다”, “그런 방법도 있구나”, “그래 그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다.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토론회를 갖도록 하고 선생님이 “그래, 그게 더 좋겠다”라고 말하는 학생에게 토론 점수를 1점 더 주면 어떨까. 말싸움이 아니라 합의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론에서 서로 상대방의 주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문화가 초등학교 교육 때부터 시작돼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이 크면서 대학생이 되어 동아리 회의 때에도 “그래 그게 더 좋겠다”, 회사에 들어가 판매 방법 토론에서도 “그래, 그게 더 좋겠다”, 시민사회 대표가 되어 다른 단체의 다른 주장을 경청하면서 “그래, 그게 더 좋겠다”, 정치가가 되어 상대방 국회의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래, 그게 더 좋겠다”…. 이런 세상이 올 수는 없을까. 우리 주변부터, 가족부터, 친구들과 만나 “그래, 그게 더 좋겠다”를 오늘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상품 이름, 상품 포장에도 “그래, 그게 더 좋겠다”를 표시하는 기업이 나오기를 바란다.


노익상 한국리서치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