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분야 1위’ 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인터뷰

[한국 100대 싱크탱크] “올바른 복지 논쟁의 중심을 잡아줘야죠”
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약력:1961년 대구 출생. 1984년 성균관대 경제학과 졸업. 1993년 성균관대 경제학 박사. 1984년 한국개발연구원 주임연구원. 199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 1998년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 2005년 경실련 재정세제위원회 위원장. 200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올해 ‘대한민국 100대 싱크탱크’ 조사에서 가장 큰 이변의 주인공이다. 지난해 정치·사회 분야 5위에서 순위가 4계단 뛰며 올해 1위를 차지했다. 1971년 1세대 정부 출연 연구소 중 하나로 문을 연 이 연구원은 2008년 첫 조사에서 10위에 처음 이름을 올린 후 3년 만에 순위가 수직 상승한 셈이다. 이는 복지 수요가 폭발하는 최근 사회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복지 담론과 복지 이슈를 생산하고 보급하는 ‘복지 연구의 메카’로 불린다.

김용하(50)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은 “무역 1조 달러 시대가 됐지만 국민들은 ‘그런데 나한테는 뭐가 달라졌느냐’고 묻는다”며 “이제는 성장만으로 더 이상 국민들을 이끌 수 없는 시대”라고 말했다. 풍부한 아이디어와 기획력이 강점인 김 원장은 2008년 부임해 연구원을 크게 바꿔 놓았으며 그동안의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 9월 연임에 성공했다. 지난 12월 7일 은평구 불광동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연구원 본관에서 김 원장을 만났다.



정치·사회 분야 싱크탱크 1위에 오른 이유를 어떻게 보십니까.

국민들의 의식구조가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성장과 경쟁이 중심에 놓였지만 이제는 행복이나 건강에 더 큰 관심을 보이죠. 바로 우리 연구원이 국민의 건강과 행복을 연구하는 곳 아닙니까. 국민들의 커진 관심에 발맞추기 위해 선도적인 연구를 제때 꾸준히 해온 노력이 인정받은 결과라고 봅니다. 당장 올해 실적만 갖고 평가 받은 것은 아니라고 봐요.

연구 성과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연구만큼 중요한 것이 국민과의 소통입니다. 원장을 맡고 나서 매주 ‘이슈앤포커스’를 펴내고 있어요. 보건복지 분야 핫이슈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8쪽 분량으로 정리해 주는 거죠. 수십 개의 정부 출연 연구소 중 이런 이슈 페이퍼를 매주 내는 곳이 많지 않아요. 또 언론도 적극 활용하지요. 언론은 국민과 소통하고 연구 결과물을 확산하는 중요한 채널이에요. 빈곤 문제나 100세 문제, 인구문제, 선진 복지 국가 연구 같은 공동 기획물들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지요. 언론 기고도 자주 하고요. 저 역시 한 해 10편 이상 언론에 글을 씁니다.

가장 역점을 두는 연구 분야는 무엇입니까.

연구원 전체로 보면 사회 통합 문제가 가장 중요합니다. 기초보장연구실·복지서비스연구실·사회보험연구실이 바로 이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요. 미래에 예상되는 또 다른 큰 문제는 의료비 통제예요. 현재 국민 의료비가 국내총생산(GDP)의 7%가 넘어요. 앞으로 이 수치가 10%를 훌쩍 넘게 될 겁니다. 경제에 큰 부담이 되는 거죠. 보건 패러다임을 치료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바꿔야 해요. 보건의료연구실과 건강증진연구실에서 이 연구를 집중적으로 합니다. 저출산고령사회연구실은 제가 원장으로 와서 만든 곳이죠.

처음 연구원은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1971년 문을 연 가족계획연구원이 모태입니다. 올해가 출범 40주년이죠. 당시만 해도 인구 증가가 큰 골칫거리였어요.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성장도 중요하지만 인구가 이렇게 늘어나서는 답이 없다고 판단한 거죠. 그해 3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설립됐고 7월 가족계획연구원이 문을 열었어요. 그 후 1976년 한국보건개발연구원이 만들어졌고 두 연구원이 합쳐져 현재 형태가 됐지요. 그 사이 인구문제에서 보건·복지로 중심축이 바뀌었어요.

요즘 다시 인구문제가 화두인데요.

연구원에서도 인구문제 연구에 다시 힘을 쏟고 있어요. 지금은 저출산 고령화가 문제죠. 인구 증가 억제를 위해 탄생한 연구원으로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에요. 인구문제는 단순히 자녀를 많이 낳거나 적게 낳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에요. 국가의 미래가 걸린 국가 전략이죠. 그래서 ‘인구 전략’이라는 용어를 씁니다. 인구문제에서 핵심 명제는 두 가지예요.

우선 고령화라고 하지만 한국은 아직 매우 젊은 국가죠. 과거 40년, 향후 40년을 볼 때 2010년과 2011년이 인구 부양비가 제일 낮아요. 가장 왕성하게 성장할 수 있는 최고의 시기인 거죠. 그런데 경제성장률은 이미 8%대에서 4%대로 떨어져 있어요. 안타까운 일이죠. 앞으로 20년 후면 인구구조상 최악의 시기가 올 겁니다. 바로 지금이 경제를 성장시키고 국가의 힘을 키워야 하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인 거죠.

두 번째 명제는 무엇입니까.

현재 한국의 노인 인구 비율은 11%입니다. 스웨덴은 18.6%죠. 스웨덴이 한국보다 훨씬 늙은 나라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2050년에는 상황이 정반대가 되지요. 한국은 38.2%인데 스웨덴은 23.6%밖에 안 돼요. 이래서는 경쟁이 안 되죠. 한국이나 스웨덴이나 평균 수명이 길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예요. 바로 출산율에서 차이가 나는 겁니다. 스웨덴은 출산율이 1.9로 인구가 거의 그대로 유지되지만 한국은 1.23밖에 안 돼 한 세대가 지나면 계속 인구가 반씩 줄어요. 저출산 문제는 반드시 미래에 대한 투자를 통해 우리 세대가 해결하고 넘어가야죠. 그렇지 않으면 미래가 없어요. 이에 대한 심층 연구를 연구원에서 이번에 했습니다.
[한국 100대 싱크탱크] “올바른 복지 논쟁의 중심을 잡아줘야죠”
내년 총선과 대선을 계기로 복지 논쟁이 불붙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분명한 것은 과거처럼 성장론만으로 국민을 이끄는 데는 한계가 왔다는 거죠. 국민들은 지금 너무 힘들어 합니다. ‘복지하면 망한다’는 논리로는 분출하는 그들의 욕구를 수용할 수 없어요. 왜 그런 욕구가 발생하는지, 국민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현실적인 제약 조건이 무엇인지 심층적으로 분석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최선의 답을 만들어 내야죠.

현재 한국의 복지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절반 수준밖에 안 돼요. 하지만 최근 10년간 복지 지출 증가율로 보면 1위죠. 굉장히 빨리 증가했지만 아직 절반밖에 안 되는 상황인 거죠. 한쪽에서는 복지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불만을 무책임하게 부채질을 해요. 다른 쪽에서는 복지는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죠. 이럴 때 전문가들이 중간에서 방향을 잡아 줘야 해요. 그게 바로 국책 연구원의 역할이죠.

스웨덴이 한국의 복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스웨덴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윌리엄 베버리지의 복지국가 이념을 최초로 실현한 나라입니다. 세금을 많이 거둬들여 복지비용을 충당하죠. 세율이 높으면 기업이나 부자들은 다른 나라로 다 빠져나가지만 스웨덴은 그렇지 않아요. 자유 시장경제에 대한 철저한 신념과 개방경제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기 때문이죠.

기업하기 좋은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 주는 거예요. 스웨덴 모델은 자유 시장, 개방경제와 함께 가는 겁니다. 스웨덴 모델을 주장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스웨덴이 이상적인 모델이지만 한 번에 갈 수는 없어요. 몇 가지 제도만 도입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에요. 정부에 대한 신뢰, 국민 인식, 가족 관계, 경제 시스템 모두 함께 가야죠.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싶은 과제가 있습니까.

내년 초까지 해외 선진국의 사회보장제도와 보건제도를 종합적으로 정리하려고 해요. 아직 그쪽 정보들이 충분하게 정리가 안 돼 있어요. 보건복지 관련 통계와 모델을 빠르게 정비해 놓아야 해요. 그래야 어떤 정책 제안이 나왔을 때 예상 비용 등을 바로 계산해 낼 수 있거든요. 복지 문제에서는 당장 비용보다 10년 후, 20년 후 비용이 중요해요. 시간 감각적 통찰이 필요한 거죠.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사진 서범세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