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구조조정이 필요한 때

가계 부채가 900조 원을 넘어섰다. 연간 이자로 빠져 나가는 돈도 50조 원에 달한다. 게다가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고 글로벌 경제도 쉽게 회복세로 돌아서지 못하고 있다. 가정경제의 현금 흐름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가계의 현금 흐름이 좋아지기 위해서는 부동산이나 주식과 같은 자산의 가격이 오르거나 소득이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사면초가에 빠진 형국이다. 창업 시장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2011년 10월 현재 국내 자영업자 수는 573만 명으로 국내 총고용 인원의 30%나 된다. 이들은 경기 불황으로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 여기에 베이비 붐 세대들이 퇴직이나 구조조정을 당하면서 생계형 창업으로 내몰리고 있다. 한 집 건너 떡볶이 집이 있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자영업 시장은 치열한 경쟁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아니하든 가계도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구조조정은 사고방식의 변화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현실은 변할 수 없다. 매월 지출 내역을 점검해 보자. 어디서부터 줄여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먼저 고정비 성격이 아닌 것부터 점검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외식비 같은 것이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고정비 성격의 생활비다. 차량 유지비, 사교육비, 주택 관리비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고정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전체적인 생활비를 줄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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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상품 해약에도 순서가 있다

다음 단계는 부채 점검이다. 대출이자는 급전일수록, 담보가 없을수록, 제2금융권으로 갈수록 이자가 비싸지는 법이다. 부채를 구조조정할 때는 금리가 높은 것부터 정리해 나가야 한다. 보다 낮은 금리로 갈아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하루빨리 옮겨야 한다.

가계 구조조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신용카드다. 행동경제학에선 신용카드가 소비를 늘린다는 여러 가지 연구 결과가 많다. 예를 들어 NBA 농구 입장권을 경매에 부치는 실험에서 신용카드로 입찰한 사람들이 현금으로 한 사람들보다 더 비싼 가격을 써 넣었다. 즉, 신용카드로 돈을 쓰는 자체가 현금보다 더 많은 지출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신용카드 사용은 미래의 수입을 담보로 현재를 소비하는 행위다. 반면 저축이나 투자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소비를 줄이는 행위다. 한마디로 신용카드는 쓰면 쓸수록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신용카드보다 체크카드처럼 수입 범위 내에서 쓸 수 있는 카드로 당장 바꿔야 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금융 상품도 어쩔 수 없이 해약해야 하는데, 이것에도 순서가 있다. 가급적 당장 현금화가 가능한 예금이나 적금을 먼저 하고 손실이 난 펀드라면 전액 환매하지 말고 시장 상황을 봐 가면서 부분 환매 전략을 취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끝까지 유지해야 하는 금융 상품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의료비 보장 보험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 질병 등으로 비용이 증가하면 가계경제가 더 나빠지게 된다. 할 수만 있다면 의료비 보장 보험과 같은 상품은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연금보험과 같은 장기성 보험은 해약하면 손해가 많기 때문에 약관 대출이나 보험금 감액과 같은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끝으로 과도한 주택 대출금이 있다면 자발적 세입자 전략이 필요하다. 부동산 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현시점에서 매도하기 어려우므로 전세를 주고 전세금이 싼 다른 주택으로 이사해 대출 부담을 줄일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부채가 적더라도 자발적 세입자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남는 돈으로 월세가 나오는 곳에 투자하기 위해서다.

안타깝게도 자산시장이나 고용, 가계 부채 등을 살펴보면 지금은 낙관적인 시나리오를 제시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알고 있는 위험은 더 이상 위험이 아니라고 한다. 지금은 확고한 현실 인식을 가지고 경제적 위험에 대비해야 하는 시기라는 점을 명심할 때다.


이상건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