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정부가 국회로 넘긴 2012년도 예산안이 12월 초에도 정치 공방에 휩쓸리고 있다.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인 12월 2일은 진작 물 건너갔다. 8년 만에 여야가 처리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정기국회 회기(9일) 내 처리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방법은 있다. 여당이 ‘날치기’ 처리를 하는 것이다. 연말까지 하려면 예산안만 처리하기 위해 임시국회를 여는 수밖에 없다.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22일 국회 본회의장 발언대에서 여당의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비준안 강행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의장석에 최루탄을 터뜨리고 있다.   2011.11.22 노컷뉴스 제공....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22일 국회 본회의장 발언대에서 여당의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비준안 강행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의장석에 최루탄을 터뜨리고 있다. 2011.11.22 노컷뉴스 제공....
이런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 A) 비준 동의안을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표결 처리한 것이 발단이 됐다.

지난 12월 1일 9일 만에 재개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계수조정소위는 파행을 거듭했다. 오전 10시 20분께 7명의 한나라당 의원들과 임영호 자유선진당 의원이 참석한 채 회의를 열었지만 시작 30여 분 만에 야당 반대로 중단된 것. 민주당 측은 “한나라당이 한미 FTA 비준안을 단독 처리한데 대해 사과하고 예산안도 단독 처리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회의에 참석하겠다”는 기존 방침을 되풀이하고 있어 예산안 심사는 당분간 공전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민주당 등 야당에 이어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도 복지 예산을 크게 늘려줄 것을 청와대와 정부에 요구하고 나선 것도 이유가 되고 있다. 민심 이반이 심각한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위해 정부에 사실상 예산안을 다시 짜야 한다고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예산 등을 논의하기 위한 당·정·청 회의가 이뤄질 리 없다. 11월 30일 청와대 고위 인사는 한나라당 정책위원회에 전화를 걸어 “복지 예산과 관련해 당과 청와대 내부에서 각자 조율이 필요하니 12월 1일로 예정된 당·정·청 회의를 연기하자”고 했다.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는 “당에서 무상 보육 문제를 제기한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내년부터 0~5세에 대해 국가가 보육을 책임지는 쪽으로 갑자기 수용했다”며 “이와 관련된 내년 세부 예산안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했다. 각 가정에 어린이집(보건복지부 소관)과 유치원(교육과학기술부 소관) 비용으로 얼마를 줄지, 이들 기관을 이용하지 않는 가정엔 양육비로 얼마를 책정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예산안과 함께 정치권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세제 개편안도 처리해야 한다. 민주당 일각에서 주장한 소득세에 최고 구간을 신설해 세율을 높이자는 이른바 ‘부자 증세’를 한나라당도 정책 쇄신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준표 대표와 정두언 최고위원, 김성식 정책위 부의장 등이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소득세보다 불로소득을 줄이고 주식과 배당 등 자본이득에 대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목소리(박근혜 전 대표 등 친박계)도 엉키면서 내년 국가 살림 계획 짜기가 뒤엉키는 양상이다.

올 마지막 정기국회까지 1주일 정도 남은 상황에서 국회와 정부가 이 일을 모두 처리하기는 힘들다는 전망이 그래서 나온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를 모두 담아내기엔 시간이 촉박하다. 국가의 기본이라는 예산과 세제가 졸속으로 처리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당연히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민경국 강원대 교수는 “예산과 세제는 톱니바퀴처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데 지금 정치권에서는 앞뒤 안 가리고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어 내년 예산은 예산대로 졸속으로 결정되고 세제는 세제대로 누더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부도 고민이다. 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이 누적된 재정 적자로 디폴트 위기에 놓여 있는 가운데 정부가 짜놓은 균형재정 달성 목표가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연말까지 복지 예산뿐만 아니라 내년 선거를 앞둔 국회의원들이 지역구나 이익 단체를 챙기려는 민원성 예산을 대거 반영할 가능성이 크다”며 “힘 빠진 정부로서는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김재후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