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곧 혁신이다 29


1994년 들어 이건희 회장은 삼성그룹 내 모니터 사업의 통합을 지시했다. 당시 필자가 삼성전자 기획실로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역시 기본 개념은 복합화였다. 계열사 간 중복되고 불필요한 경쟁 구도를 없애 통합하는 작업이었다. 모니터 사업의 통합은 그룹 내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통합 작업이었다.

삼성에서 모니터 사업을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은 삼성전관(현 삼성SDI)이다. 삼성전자는 그 이후였는데 전자에선 TV용 브라운관만 제작했다. 물론 완제품인 세트로서는 TV가 중요한 분야였지만 부품의 부가가치로만 보면 모니터용 브라운관의 가치가 훨씬 컸다. 삼성전관은 모니터 사업에 대한 이해가 뛰어났고 이미 자체적으로 개발팀과 생산팀이 조직돼 있었다.

삼성전자는 후발 주자로 뛰어들었지만 자신들이 세트 기업이니 우리도 하는 것이 맞다며 모니터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전부터 사업을 진행해 온 삼성전관의 경쟁력이 훨씬 뛰어난 건 당연했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삼성전자의 모니터 사업도 궤도에 오르면서 양 사가 시장에서 부딪치는 수준에 이르고 말았다. 모니터 사업부 통합에 나서게 된 배경이다.

통합은 물리적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당시는 이미 이 회장의 신경영을 통해 모든 조직원들이 변화를 수용하도록 교육이 돼 있었다. 이런 베이스가 있었기에 통합 작업이 가능했다고 본다. 68일간 이어진 선진 일류 산업 현장 시찰이 없었다면 ‘도토리 키 재기’식으로 각자 잘한다고 얘기했을 게 빤하다. 그런 식의 경영과 성과는 의미가 없다. 회사 임원진과 직원들 사이에서도 ‘최고의 모니터를 만드는 게 의미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공감대가 생겼다. 삼성이 월드 베스트 상품을 내놓기 시작한 배경이다.
세계 최고의 모니터를 만들라

세계 일류 모니터는 도대체 어떤 제품일까. 이를 위해 소니의 모니터 라인에 견학을 간 적이 있다. 전원이 들어가자 화면에 똑같은 패턴의 영상들이 뜨며 지나갔다. 그런데 어떤 모니터나 영상의 질이 똑같았다. 화면의 밝기만 봐선 늘어서 있는 모니터들이 마치 하나의 제품 같았다. 그때만 해도 삼성의 모니터는 어떤 것은 밝고 흐리고 해서 한 대도 같은 게 없을 정도로 품질이 균일하지 못했다. 품질 검사 수준으로는 합격이지만 모든 제품이 균일한 퀄리티를 확보하지 못한 수준이었다.

소니는 처음 설계 때부터 모든 과정을 균일하게 맞췄기 때문에 마지막 완성품에 이르기까지 균일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다. ‘품질관리라는 건 바로 저런 것이다.’ 현장을 둘러본 난 큰 충격과 함께 머릿속에 ‘소니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당시 우리는 품질은 물론 마케팅 등도 서로 잘났다고 싸우기에만 바빴다. 그 뒤 식스시그마도 도입했다. ‘100만 개 중에 3.4개 불량’ 수준이 식스시그마의 요체다. 삼성전관 사장으로 가며 첫해 시작한 게 프로세스 혁신과 식스시그마였다.

이 회장이 VTR 부품을 만드는 일본의 일류 공장을 직접 찾은 적이 있다. 공장에는 부품의 길이를 측정하는 미크론 단위의 자동 측정 기계가 있었다. 0~100미크론까지 눈금이 있었는데 한국에선 항상 90~95미크론 사이에 있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10미크론 사이에서 바늘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닌가. “규격이 100인데, 왜 굳이 10에서 왔다 갔다 하느냐”고 물었다.

“이렇게 엄격하게 유지해도 어쩌다 보면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이게 바로 불량이다. 불량품은 어쩌다 하나가 나올지 모르지만 이를 받아든 소비자는 모든 제품이 불량이라고 생각한다. 100이 규격이라고 하더라도 10분의 1, 20분의 1에 도전하면 그런 불량이 나오지 않을 것 아닌가.”

그러고 보니 한국은 항상 한계치에 맞춰 놓고 있었다. 자연히 불량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작업 보증을 통해 스피드·품질·원가를 모두 절감했다. 이를 보고 이 회장은 일본에서 전화를 걸어 한국에 있던 관계 임원, 사장단을 모두 불러냈다. 그 덕분에 필자도 따라가 공장을 보게 된 것이다. 규격의 한계에만 맞으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과 100만 개 중애 1개도 벗어나선 안 된다는 극한의 생각과는 결과에 엄청난 차이가 존재했다.

세계적 휴대전화 제조사인 노키아의 한국 공장이 마산에 있었다. 세계의 여러 공장 중 이곳은 최고의 품질, 생산성, 원가 경쟁력을 자랑하는 공장이었다. 그곳에도 직접 찾아가 현장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에서 2000명이 일하고 있으면 여기에선 500명이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해답은 ‘서브어셈블리(subassembly: 기계·전자 기기 등의 하위 부품이나 조립)’에 있었다.

제품 생산에 필요한 부품을 예비 단계에서 미리 조립해 납품받는 방식이다. 노키아 한국 공장은 이를 위해 작은 외주 업체들을 발굴했다. 이들이 저마다 가져온 부품을 맨 마지막에 조립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품질이 균일하지 않은 어려움이 생기지 않느냐”고 물었다. 당연했다. 이곳에선 이를 막기 위해 품질을 생명처럼 여기고 이상이 발견되면 즉각 퇴출시키는 등 아주 엄격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최종 조립 라인에 서있는 사람들이 편한 마음으로 조립해도 불량이 나지 않을 정도로 서브어셈블리의 수준이 높았다.

설비도 계획 보전이 돼 있었다. 고장이 나기 전에 미리미리 관리하고 수리하는 것을 뜻한다. 모든 기계의 치수를 끊임없이 보정해 맞춰 놓는 식이다. 완전한 품질의 부품을 완전한 설비 하에서 조립하니 최고의 세트가 완성됐다.



디자인은 기업 이미지·전략의 복합체

라인을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여직원들이 굉장히 쉽고 느슨하게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불량이 없었다. 삼성의 생산 라인을 보면 모두가 초긴장된 상태에서 생산하고 조정하느라 애를 쓰곤 했다. 그런데도 불량이 많았다. 처음부터 올바르게 한다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 여기에 ‘규격에 맞춘다’는 수준을 뛰어넘어 ‘한 치라도 어긋나선 안 된다’는 엄격함을 스스로 갖춰야 노키아코리아나 소니를 따라잡을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브라운관의 성공 이후로도 삼성은 ‘월드 베스트’ 상품을 몇 개 더 만들겠다는 목표를 계속 세워갔다. ‘양에서 질’이라는 신경영의 철학적 목표가 구체화된 것이 월드 베스트 상품이다. 쉽게 말해 최고를 만들고 제값을 받자는 뜻이다.

디자인 부문의 고문을 맡았던 후쿠다 고문이 있었다. 1992년 삼성이 도쿄에 디자인 분소를 설립하면서 모셔온 분이다. 이분이 낸 보고서 하나가 지금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삼성전자에는 상품 기획 전략이 없다. 디자인은 상품 전략을 구현하는 것인데, 전략이 없으니 디자인하는 사람이 따라갈 수가 없다. 또 관계된 사람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니 어떻게 바람직한 모습의 디자인이 나오겠는가. 디자인이란 것은 그 회사의 이미지와 전략이 종합적으로 표현되는 복합체와 같은 것이다. 삼성은 디자인을 하나의 단순한 기능으로만 본다. 중구난방하다 보니 사기도 떨어진다. 이래선 삼성의 미래도 어둡다.”
이건희 회장은 후쿠다 고문의 보고서를 ‘디자인 일류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의견으로 받아들였다. 디자인에서도 일류, 품질도 일류, 점유율도 일류…. 그 결과로 나와야 할 것이 바로 월드 베스트 상품이었다. 반도체를 비롯해 디스플레이가 맨 앞에 서 있었다. 삼성의 오늘을 만든 여러 요인 중 눈에 가장 잘 띄는 것이 ‘월드 베스트’ 시리즈다.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게 위해 밤낮없이 노력했다. 연구·개발, 디자인, 마케팅 그 어느 하나 가릴 것 없이 모두 뛰어들어 만들어낸 결과물이 월드 베스트 상품이다. 이후 삼성은 거의 모든 전자 부문에서 세계 1등이 됐다.

정리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전 삼성종합기술원장·농심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