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찬 브리드 대표
어썸노트(Awesome Note)라는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 이하 앱)이 있다. 2009년에 나와 2년째 계속 인기를 끌고 있는 앱이다. 영어 버전으로 우선 출시됐고 비교적 아이폰 초창기 시절부터 인기를 끈 데다 해외 유저가 훨씬 많기 때문에 처음에 이 앱을 한국 기업이 만들었다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이 앱을 만든 회사가 브리드라는 한국 앱 개발사라는 점, 그것도 단 2명이 만들었다는 것은 꽤나 신선하게 들린다. 필드에서 경험 축적한 개발 고수
인터뷰를 하면서 백승찬 브리드 대표를 만나고 있다는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즉각 반응이 왔다. ‘아, 이분 예전에 ‘신의 손’이라는 프로그램 만든 분인데….’
이런 반응이 즉각 나오는 것은 그만큼 백 대표가 이른바 재야 개발자로서 명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신의 손’이라는 프로그램은 그가 대학 재학 중 만든 일종의 타자 연습 소프트웨어였다.
1975년생인 백 대표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졸업한 뒤 바로 미국의 니시미디어라는 회사에 취직했다. 이 회사는 한국에 지사를 설립했는데 백 대표는 처음에 한국 법인에 취직했다가 본사인 미국으로 건너가 일하게 됐다.
미국 생활은 그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줬다. 당시 그는 넷플릭스를 미국에서 처음 접했다. DVD를 가정으로 배송한다는 것이 사업이 된다고 생각했고 한국에 들어오면 이와 비슷한 일을 한번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몇 년 뒤 한국에 들어와 사업을 해보려고 했지만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2003년 프루나(PRUNA)라는 P2P 파일 공유 사이트를 만들었다. 혼자서 만든 이 사이트가 큰 인기를 끌면서 광고 수익으로 돈을 벌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프루나는 그가 개발자로서 실험적으로 도전한 것이지 계속 할 일은 아니었다. 그는 사이트를 매각하고 2006년 뉴미디어라이프라는 휴대용 멀티미디어 기기(PMP) 회사에 들어갔다.
백 대표는 왜 PMP 회사에 들어갔을까. “단말기를 만들어 보고 싶은 로망이 있었습니다.” 단순하지만 명쾌하다. 계속 개발에 매진했던 그는 이 회사에서는 개발 일을 하지 않았다. 대신 기획을 했다. 그런데 그가 회사로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미국에서 아이폰이 나오면서 시장이 재편되기 시작했다. 회사가 급격히 어려워졌다.
“고생만 하셨겠네요?”
“고생은 했죠. 그런데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아이팟터치와 아이폰을 열심히 연구했거든요.” 경쟁을 해야 하니 다른 회사 제품을 열심히 뜯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제품의 특징과 장단점을 알게 된 것이다. 그것 말고도 뉴미디어라이프에서의 생활은 또 다른 면에서 중요한 기회가 됐다. 이 회사에서 그는 함께 창업하게 되는 강영화 이사와 훗날 벤처를 창업하는 김호근 아이쿠 대표를 만났다.
“앞으로 딱 1~2년만 해 보고 싶은 것을 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 이상 머뭇거리면 해보고 싶은 일을 못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는 강 이사를 설득해 창업했다. 회사 이름은 브리드(BRID)라고 지었다. 브릴리언트 아이디어(Brilliant Idea)를 줄인 말이다. 자신은 개발을, 강 이사는 디자인을 맡았다.
처음 창업할 때는 딱히 아이템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다만 아이폰을 열심히 연구한 바 있으니 앱을 만들어 보자고 했다. 2008년의 일이었다. 일단 개인 사업으로 시작했다. 앱스토어에 들어가 보니 온통 게임 앱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물론 해외 앱스토어 얘기다(아직 국내에 아이폰이 들어오기 전이다.)
게임으로 창업하려고 하니 막막한 것은 둘째고 재미가 없었다. 창업자 두 사람이 모두 게임에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냥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만들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백 대표는 평소 휴대전화에서 메모장을 가장 많이 썼다. 자신이 많이 쓰기 때문에 기존 메모장들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다. 제품별 특징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스마트폰 시대에 와도 사람들이 메모장을 많이 쓸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메모장 관련 앱이 무수히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 그의 마음에 드는 앱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정말 편리하게 쓸 수 있으면서도 다양한 기능이 통합된 앱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메모장 앱을 만들기로 했죠.”
처음엔 사용자 인터페이스(UI)나 사용자 경험(UX) 등을 개선하는데 주력했다. 그러면서 2009년 여름에 어썸노트 첫 앱을 출시했다. 그런데 반응이 좋았다. 그저 UI 중심의 개선이었는데도 사람들은 그 앱이 차별화됐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기능 개선에 들어갔다. 일정 관리 등이 가능하게 하는 등 업데이트를 거듭했다. 결국 3.99달러라는 비교적 고가(?)에 앱을 판매했는데도 100만 개가 넘게 팔렸다.
“유료로 나온 메모장 앱 중에는 가장 많이 팔렸어요. 100만 다운로드까지는 카운트했는데 그 뒤로는 안 했습니다. 아무튼 100만 개에서 200만 개 사이로 팔렸어요.” 레드오션에 블루오션 있다
메모장 앱은 결코 블루오션이 아니었다. 그도 그 때문에 잠깐 망설였다고 한다. 주변에서 너무 레드오션이라고 충고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좀 달랐다. “레드오션이라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관련 제품도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메모장은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쓰지만 제대로 된 소프트웨어가 없었습니다. 무수히 많은 프로그램 중에서 최고가 되면 된다고 생각했죠.”
치열한 틈바구니 속에서 경쟁한다는 것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는 캘린더 기능을 개선한 앱을 포함해 3~4가지 종류의 스마트폰용 앱을 개발하고 있다. 2명이서 시작한 회사는 4명으로 불어났고 1명을 충원 중이다. 앞으로도 브리드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지만 불편한 것을 개발하는 그런 소프트웨어, 그런 앱을 집중적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안드로이드가 아닌 아이폰 앱스토어에 집중하는 것도 이 회사의 특징이다. 유료 시장에 주력하는 이 회사로서는 무료 비중이 큰 안드로이드보다 아이폰 앱스토어가 매력적이다.
“어썸노트를 개발할 때 처음엔 영어만 지원하다가 나중에 한국어 등 12개국 언어로 확대했습니다. 앞으로 나오는 앱들은 한국어와 영어를 포함해 여러 언어를 동시에 지원할 겁니다. 영어권이 아닌 곳에서도 아이폰을 쓰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거든요. 전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그런 앱을 만들고 싶습니다.”
임원기 한국경제 IT모바일부 기자 wonkis@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