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국회로 넘어간 내년 예산안과 세제 개편안이 표류하고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의식한 한나라당이 민심 수습을 이유로 전면 개편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심을 잡아야 할 청와대도 가세하고 있는 분위기다.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인 12월 2일은 물 건너갔고 정기국회 회기(12월 9일) 내 처리도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에도 초비상이 걸렸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 마지막날인 2일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 각부처에서 올라온 예산안 자료들이 쌓여 있다.  2009.12.2
/양윤모기자yoonmo@hankyung.com
내년도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 마지막날인 2일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 각부처에서 올라온 예산안 자료들이 쌓여 있다. 2009.12.2 /양윤모기자yoonmo@hankyung.com
내년 예산안은 정부가 각 부처의 내년도 사업 계획 및 정책들을 토대로 공청회 등 의견 수렴 과정과 조정 작업을 거쳐 확정된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통상적으로 요구하는 지역 예산 사업 이외에 새로운 항목이 추가되면 정부 예산안을 대폭 수정할 수밖에 없다.

기존 예산안을 줄이자는 요구가 없을 것이라고 보면 다른 항목 사업을 줄이거나 세입 규모를 늘리는 방안을 수립해야 할 상황이다. 더욱이 올해는 보육 교육 등 무상 복지 관련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세출 증대 압력이 거센 편이다. 합리성과 효율을 기반으로 짜 놓은 예산안이 정치권의 포퓰리즘적 드라이브에 밀리면 졸속 처리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표류하는 예산안과 세제 개편안

세제 개편안도 덩달아 흔들리고 있다. 부족한 세입 예산을 늘리기 위한 차원만은 아니다. 심화되는 양극화와 대기업 및 소수 부자들에 대한 사회 전반의 반감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 정치권과 정부 모두에 부담을 주고 있는 양상이다. 이 때문에 정부·여당도 이명박 정부 경제정책의 뼈대였던 ‘부자 감세’를 접는 분위기다. 지난 11월 초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은 ‘버핏세’라는 이름으로 부자와 고소득층의 과세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현재 8800만 원 초과인 최고 소득 구간 위에 1억 2000만~1억5000만 원 초과 구간을 하나 더 만들어 이들에게 38~40%의 세율을 부과하자는 주장이다. 정부가 제출한 세법 개정안에는 연소득 8800만 원을 초과하는 자에게 지금과 같은 35%의 세금을 부과하도록 돼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12월 1일 열릴 예정이던 당·정·청 회의도 다음 주로 연기됐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예산·세제 개편안에 폭주하는 정치권의 목소리를 조율하고 수용할만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기획재정부는 보육료 지원, 대학 등록금 인하 등에만 2조~3조 원의 예산을 늘려달라는 요구가 이어지자 내년도 균형 재정 달성을 장담할 수 없다는 우려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법인·소득세 인하를 철회한 상황에서 증세에 나선다면 ‘MB노믹스’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점도 부담스럽다.

여야의 거센 요구와 관계없이 재정부가 걱정하는 또 하나의 포인트는 해외 변수다. 우선 유럽 재정위기로 재정 건전성 강화에 대한 부담이 높아진 만큼 하방 경직성이 강한 복지 예산 증액 요구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기에 세계 경기 둔화로 내년도 세금 수입이 줄어들면 재정 적자 문제가 더욱 크게 불거질 수 있다. 실제 유럽 재정 위기와 미국의 경기 침체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수출 기업들의 채산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돈 나올 곳은 빤한데 쓸 곳이 많은 형국이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제한된 예산으로 정말 한계를 많이 느낀다”고 토로했다.

예산안의 처리 시한도 극히 불투명하다. 예산안이 법정 처리 기한인 회계연도 개시 30일 이전에 처리된 적은 18대 국회 들어 한 번도 없다. 4대강 사업 등 이명박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사업에 대해 야당이 제동을 걸어 처리가 미뤄졌다. 여당의 정치력 부재도 한 요인으로 지목됐다. 이번에는 청와대와 집권 여당 내부 분란이 발목을 잡을 공산이 크다. 선거를 앞두고 계파 간, 정파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게 요즘 과천 공무원들의 근심이다.



박신영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