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가 구글과 손잡은 진짜 이유
지난 11월 8일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은 두 회사 최고경영자(CEO)가 한자리에 앉았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과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29층 회의실에서 비공개 면담을 가진 것이다. 언뜻 보면 두 기업은 ‘전통 제조업의 대표’와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 선두 주자’로 서로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로부터 보름쯤 지난 11월 23일 핵심 역량 교류 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공식 체결하면서 그동안 물밑에서 추진돼 온 양사의 협력 관계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야기는 지난해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 회장은 “포스코에도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을 적용할 수 있도록 검토해 보라”고 정보기획실에 지시했다. 사업 영역이 글로벌화되면서 2020년 데이터 사용량이 2009년의 44배에 달할 정도로 데이터 양이 폭주할 것이라는 실무진의 보고를 받고 내린 지침이었다. 정보기획실은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IT 기업들과 접촉하기 시작했고 구글이 가장 유력한 파트너로 떠올랐다. 지난 8월 포스코는 구글과 플랫폼 도입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구글의 기업 문화·혁신 DNA 이식
지난 23일 맺은 MOU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간 것이다. MOU의 핵심은 ‘핵심 역량 교류를 통해 글로벌 생산, 창의적 협업, 지식 근로자로 대표되는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을 구축하고 기업 가치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쉽게 말해 IT뿐만 아니라 개방성과 협업을 중시하는 구글의 기업 문화와 혁신 DNA를 포스코에 도입하겠다는 의미다.
8일 만남에서 정 회장은 “컨버전스 시대를 맞아 구글의 기업 문화와 포스코의 비즈니스 역량을 결합해 ‘상생’의 시너지를 창출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며 “구글과 포스코가 협력해 ‘제철소의 IT화’를 완성한다면 제조업의 혁신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술 시대를 여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슈미트 회장도 “몇몇 시스템을 구매하는 데 그치지 말고 함께 큰 그림을 그려 나갔으며 좋겠다”며 “구글로서도 큰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두 회사는 우선 ‘중·장기 미래기술위원회’를 함께 구성해 핵심 과제를 선정하고 공동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포스코는 근무시간 관리, 의사소통 방식, 사내 커뮤니티 활용, 회의 시간 절약 등 구글식 문화도 도입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매년 두 차례 이상 공동 워크숍을 개최하고 부서별로 일정 기간 인력 교류도 추진할 예정이다.
구글과 협력으로 ‘스마트 철강 회사’가 구체화되면 포스코의 작업 환경은 ‘혁명’이라고 불릴 정도로 크게 바뀔 전망이다. 구글 지도를 통해 전 세계 공장 재고 파악과 제품 운송 과정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고 세계 곳곳에 있는 포스코 임직원들이 가상공간에서 통·번역, 화상 채팅 등을 통해 자유롭게 소통하고 협업할 수 있게 된다. 3차원(3D) 가상 제철소를 먼저 만들어 설비 도입, 장애 발생 등을 시뮬레이션해 보는 것도 가능하다.
구글이 포스코와 적극적으로 협력에 나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구글은 검색 서비스뿐만 아니라 세계 시스템 통합(SI) 시장에서도 나름대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구글 본사의 SI사업부는 스탠퍼드대 등 종합대학 도서관 시스템과 기업용 업무 시스템(그룹웨어)을 구축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대형 제조업체에 적합한 IT 솔루션 개발은 구글도 이번이 처음이다. 구글로서도 ‘포스코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포스코 프로젝트를 발판으로 사업 영역을 B2B 시장과 동아시아로 빠르게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포스코가 IBM·마이크로소프트·오라클 같은 기업용 솔루션 업계의 전통적인 거인들을 제치고 구글과 손을 잡은 것은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이와 관련해 구글의 클라우드 기반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들이 어떤 형태로 활용될지에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구글은 이미 클라우드 기반 기업용 애플리케이션인 ‘구글 앱스’를 기업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구글 앱스는 구글의 G메일과 메신저, 일정 관리, 문서, 홈페이지 등을 통해 사내 의사소통 지원과 강력한 협업 기능을 제공한다. 현재 기업들이 사용하고 있는 협업 솔루션을 대체할 만큼 충분한 기능을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를 비롯해 구글 앱스를 채택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포스코의 IT 시스템 선진화는 정 회장 취임 이후 최대 과제였다. 현재 포스코에서 쓰고 있는 디지털 정보 경영 시스템 ‘포스피아(POSPIA)’는 10년 전 구축된 것이다. 그동안 미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스마트 시대에 맞춰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포스코의 경영 환경이 10년 전과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철강 비중이 절대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종합 소재 회사’를 지향하고 있다. 국내에 한정돼 있던 사업 기반도 전 세계로 확장됐다. 계열사도 크게 늘어 이제는 ‘패밀리 경영’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포스코는 과거에도 IT를 활용한 업무 혁신에 앞서나가는 모습을 보여 왔다. 1999년 대규모 프로세스 혁신(PI)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 철강 업계 최초로 IT를 접목한 디지털 경영 체제를 구축했다. 당시 구축한 포스피아는 가동 1년도 안 돼 투자비를 훨씬 웃도는 3000억 원 이상의 비용 절감 효과를 기록해 업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앞으로 10년’이끌 초대형 프로젝트
포스코는 3단계에 걸친 PI 작업으로 리드 타임(기획부터 제품화까지의 시간)을 30일에서 14일로 50% 이상 줄였고 납기 준수율도 80%에서 96.2%로 향상시켰다. 또한 제품 재고량도 60% 줄이는 등 공정 혁신과 시스템 개선으로 제품 톤당 17달러의 비용 절감 효과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 회장은 지난해 말 ‘포스피아 3.0’ 구축을 선언했다. 그동안 포스코의 디지털 경영을 지원해 온 포스피아를 구조적으로 혁신함과 동시에 일하는 방식과 기업 문화를 재정립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정 회장은 “포스코가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10년을 대비하는 포스피아 3.0의 성공적인 구현이 중요하다”며 “과거 PI에 참여했던 인력을 적극 활용해 과거 포스코의 PI 사상을 잘 연결하고 부족했던 점을 효율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포스코는 지난 1월 ‘포스피아 3.0 추진사무국’을 발족했다. 포스피아 3.0은 전사 통합 시스템으로 재무와 구매, 마케팅 등의 경영관리 프로세스, 조업 관리 프로세스, 스마트 워크플레이스, 글로벌 정보 공유 체계 등 ‘4가지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지향한다. 그동안 추진사무국은 업무 영역별 4대 분과위원회와 함께 33개의 빅 픽처(최종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가장 바람직한 일하는 방식을 정리한 것)와 213개의 실행 과제를 도출해 냈다.
포스코는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시스템 설계에 들어가 2013년까지 포스피아 3.0 구축을 완료할 방침이다. 최종 목표는 ▷고객과 시장 변화에 유연한 업무 수행 체계로의 전환 ▷글로벌 오퍼레이션 체계 준비 ▷포스코패밀리와의 협업 강화, 협업 사무 환경 완성 ▷업무 변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정보 시스템으로의 전환 등을 달성하는 것이다.
포스피아 3.0은 전사적자원관리(ERP)·고객관계관리(CRM)·공급망관리(SCM)·데이터베이스(DB) 등 경영 지원을 위한 일체 기능을 제공하는 초대형 포털 시스템이다. IT 컨설팅 업계에서는 최소 수백 원 억이 이 프로젝트에 투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구글과의 협력이 어떻게 구체화될지 관련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장승규 기자 sj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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