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축대부조합은 부동산 관련 대출 위험을 줄이면서 지역 주민의 모기지 금융회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올해도 대외적으로는 유럽 재정 위기가, 대내적으로는 저축은행 위기가 국내 금융시장을 뒤흔들어 놓았다. 안타깝게도 저축은행의 위기는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와 부실 감독 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하지만 저축은행 위기의 본질은 구조적으로 금융회사의 수신과 여신 측면에서 본연의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국내 저축은행의 위기는 규모와 금융 산업 내 비중 등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전국적으로 고위험·고수익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건설 및 부동산업 등에 대출하는 투자은행(IB) 역할을 수행했던 스페인 저축은행의 위기와 유사하다.

스페인 저축은행들은 부동산 시장 호황기에 부동산 PF 대출과 부동산 관련 투자, 주택 담보대출 등을 크게 늘렸지만 2008년 금융 위기 여파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부실이 천문학적으로 확대됐으며, 현재 남유럽 재정 위기 속에서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스페인과 한국의 저축은행 위기의 원인은 기본적으로 서민과 중소기업에 금융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본연의 역할을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외 저축은행 중에는 위기를 겪었지만 이후 서민 금융회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성공적으로 변신한 사례가 있다. 먼저 일본 제2 지방은행이 그렇다. 1990년대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 다른 금융회사들과 같이 큰 어려움에 직면하자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후 지역 수신을 기반으로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현재 지역 중소기업 경제의 튼튼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다음은 미국 저축대부조합(S&Ls)이다.

1970년대 경기 호황을 바탕으로 주택 담보대출이 활황을 보일 때 급성장했다가 1980년대 들어 금리 상승에 따른 역마진과 부동산 경기 급락으로 부실화됐다.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과 배드뱅크(Bad Bank)를 통한 구조조정 이후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역 주민의 주택금융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경제 산책]일본·미국의 저축은행
위기 이후에 더욱 강해진 일본과 미국의 저축은행 사례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철저히 지역은행의 역할을 수행한 일본 제2 지방은행은 기업금융의 비중이 높아도(70% 수준) 지역 밀착형 관계형 금융(relationship banking)에 치중하면서 성공한 모델이 됐다. 미국의 저축대부조합은 부동산 관련 대출 위험을 줄이면서 지역 주민의 모기지 금융회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해외 사례를 통해 본 국내 저축은행의 방향은 무엇보다 설립 목적에 따라 충실히 지역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규모별 사업 영역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대형 계열화 저축은행은 지역 중소기업을 위한 지역 은행화하고 중소형 저축은행은 지역 자영업자 및 가계를 위한 서민 금융회사화로 차별화해야 한다.

저축은행 스스로도 지역 밀착형 서비스와 같은 자신의 장점을 살린 차별화 전략과 데이터에 근거한 과학적 접근으로 수신 구조를 개선하고 수익 모델을 확보하는 등 경쟁력을 높이려는 자구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