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 활성화 5대 과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소기업 간 협업은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우리 중소기업들이 특정 대기업과 수직적으로 통합돼 있고 보완적인 자산도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중소기업 간 협업을 촉진하면서 성공 사례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협업 비즈니스 모델의 정립과 종합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선진국도 협업 촉진에 사활

최근 국내 중소기업들은 융합과 공생 발전 생태계 및 신성장 동력 산업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금융 위기 이후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고 기술과 경쟁의 패러다임이 변화하자 협업과 네트워크 경영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각국 정부는 성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강소 제조 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첨단 제조 프로그램을 수립해 운용하고 있으며 인도 정부도 신제조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미국은 1인 창업 기업이나 중소기업이 3D 프린터를 활용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제품화한 후 인근의 기술지원센터에서 기술적 자문을 받은 후 생산 전문 업체에 위탁 생산해 온 라인과 소셜 판매 등을 통해 조기 상용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업 간 협업 및 산·관·학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이미 선진국 기업 간에는 협업, 즉 전략적 제휴가 보편화돼 있다. 실리콘 밸리를 비롯한 첨단 기술 산업 클러스터가 번창하고 있는 이유도 창업 벤처기업들이 협업을 통해 개발 기술의 상용화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선진국에는 연구개발·구매·생산·물류·마케팅 등 공급망 각 단계별로 전문화된 기업이 많고 이들 기업 간에 협업이 일상화돼 있다. 이러한 기업 간 협업은 기술·제품과 산업의 융합을 촉진할 수 있다. 21세기 들어 융합이 가속화되자 일본 정부는 2005년에 ‘신협업법’을 제정해 중소기업 간 협업을 촉진하고 있다.

기술·시장·경쟁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국내 중소기업이 성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독자 생존의 사업 모델보다 협업 사업 모델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4년부터 중소기업청의 지원 아래 산업연구원이 개발한 전문기능연계형(ICMS) 협업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ICMS 모델은 비전속적인 수평 분업형 비즈니스 모델로 마케팅·연구개발·디자인·금형·구매·제조·물류 등의 분야에서 전문 기능을 보유한 기업들이 상호 보완성을 바탕으로 프로젝트별 혹은 사업 아이템별로 기능 횡단형 협업체(CF)를 구성해 사업을 수행하는 일종의 전략적 파트너십 형태의 협업 모델이다. 국내 기업 간 거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수직 하청 거래는 대기업이 원청기업이 되어 중소기업에 발주함으로써 사업을 전개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반목과 갈등이 심화돼 왔다.

ICMS 협업은 기업 규모에 관계없이 사업 아이템이나 프로젝트를 확보한 기업이 CF의 주관 기업 역할을 수행하면서 협업 참여 기업의 전문 기능과 연계해 최소한의 투자로 사업을 전개하는 협업 모델이다. 협업에 참여하는 기업들은 다양한 사업 기회를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연하고 신속하게 사업을 전개함으로써 우수한 품질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저렴한 비용에 적기에 생산해 납품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또한 협력사 간에 유기적인 정보 공유 시스템을 구축, 자사 능력 이상의 주문도 협업을 통해 소화함으로써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다. 벤처기업은 ICMS 협업을 통해 아이디어와 개발 기술을 조기에 사업화할 수 있으며 사업 기회의 확대재생산을 통해 매출 증대와 전문성을 제고하면서 국제화를 추진할 수 있다.

국내 중소기업 간 협업을 활성화하려면 우선 협업의 주체인 기업 경영자의 협업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국내 중소기업의 협업 필요성은 세계화와 정보화의 가속화 속에 기술과 제품의 수명 주기가 단축되고 기술·제품·산업의 융합이 가속화되면서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국내 중소기업 경영자 대부분은 협업 실패에 대한 막연한 우려와 단기적인 비용을 고려해 협업을 회피해 왔다. 또한 기업 기밀의 보호와 수익의 독점을 위해 협업보다 독자 성장 전략을 선호해 왔다. 그 결과 벤처 창업 기업의 사업 성공률이 상대적으로 낮고 중견기업 수도 적어 양극화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제는 협업시대]인식 전환 필수…‘협업 중재자’ 키워야
공정한 협업 계약·갈등 해결 지원 필요

이처럼 국내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협업의 긍정적인 효과를 올바로 알지 못하면 성장 잠재력 강화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경영자 스스로가 협업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거나 중소기업 경영자를 대상으로 한 협업 교육을 통해 중소기업의 협업을 촉진해 나가야 한다.

둘째, 협업의 성과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기업 내부에 협업 전담 인원이나 부서를 설치해야 한다. 최고경영자는 이들과 함께 협업이 필요한 분야와 최적 파트너 선정 등을 추진해야 한다. 또한 협업 추진과 관련해 예상되는 조직 내부의 반발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수단도 강구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이 협업을 추진할 때 관련 부서의 역할이나 규모가 축소될 것이라는 생각에 협업 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벤처기업이나 창업 기업을 포함한 중소기업의 협업을 지원할 수 있는 중재자(코디네이터)를 육성해야 한다. 현재 중소기업청에서 협업 전문 인력을 육성하고 있지만 수십만 개에 달하는 중소기업의 협업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중소기업이 속한 산업별로 가치 사슬과 공급 사슬이 상이하고 생태계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어 협업 중재자의 양성뿐만 아니라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전문성을 제고해 나가야 한다. 이와 함께 업종별·기능별 협업 기업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중재자나 중소기업들이 이를 활용해 협업체 구성을 지원하거나 협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넷째, 공정한 협업 계약의 체결과 협업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갈등을 해결하고 수익을 협력업체 간에 공정히 배분할 수 있도록 협업 비즈니스 서비스 지원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협업 사업이 성공적으로 종료되더라도 협업에 참여하는 중소기업 간에 투입 자원에 비례한 이윤 배분이 이뤄지지 않으면 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으며 협업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협업 사업을 지원하고 있는 조직이 변호사·회계사·세무사·변리사 등으로 구성된 협업 자문 및 지원단을 구성해 운용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러한 지원 시스템은 협업 참여 기업의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사전에 방지하면서 중·장기적인 협업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내 중소기업의 협업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지원 정책의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다양한 형태의 중소기업 협업 정책을 운용하고 있으며 미국 정부가 최근 운용하고 있는 첨단 제조 프로그램의 지원 하부구조보다 우수하고 다양한 지원 시설을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책 간 연계성이 일부 부족하고 중소기업이 지원 하부구조를 파악하기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다.
[이제는 협업시대]인식 전환 필수…‘협업 중재자’ 키워야
이에 따라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연구·개발, 교육 훈련, 비즈니스 서비스 지원 프로그램을 연계하고 협업체를 엄선한 후 협업체 수요에 맞게 정책 자금을 통합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협업 지원 사업에 대한 홍보를 강화해 중소기업들이 협업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와 함께 다양한 협업 프로그램의 성과를 주기적으로 평가해 성과가 부진한 사업은 유사 사업과 통합하고 성과가 우수한 프로그램은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주력산업팀장│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