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의 신’ 김정기 현대자동차 포항남부지점 부장

양준혁은 1993년 프로야구에 입단해 2010년 은퇴할 때까지 MVP를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지만 은퇴와 동시에 개인 통산 최다 안타 및 홈런 등 공격 9개 부문에서 최고 기록을 세우며 ‘기록의 사나이’가 됐다. 매년 최고의 성적을 내는 선수는 많지만 평균 은퇴 나이를 넘어서까지 현역에서 수준급의 실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일반 직장인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팬들은 양준혁을 ‘양신’으로 부르며 ‘신(神)’급으로 대우한다.

김정기 현대자동차 포항남부지점 부장도 그런 의미에서 ‘영신(영업의 신)’으로 불릴 만하다. 그는 1979년 4월 현대자동차 영업 사원으로 입사해 지금까지 33년 동안 자동차 5945대(2011년 10월 말 기준)를 판매한 ‘국내 최다 누적 판매 1위’ 기록을 갖고 있다. MVP를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양준혁과 달리 김 부장은 1990년부터 1994년까지 5년 연속 전국 연간 최다 판매왕(현대자동차서비스)까지 받을 정도로 빛나던 시절도 있었다. 그의 연간 최다 판매는 1991년의 444대다.

입사 동기들은 오래전에 관리직으로 빠졌거나 개인 사업을 하고 있고 현업에 남은 이는 한 손에 꼽을 정도다. 그는 젊은 시절 잠깐 외도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현장에서 영업을 계속하고 있고 끊임없이 기록을 써나가는 중이다.
[석세스 스토리]“잠자는 시간 외 모두 영업에 쏟죠”
33년간 5945대 판매…국내 최다 기록

그는 자동차 영업, 특히 현대자동차와 맺은 인연을 “운명이었다”라고 표현한다. 1976년 갓 군대를 제대한 스물세 살 청년 김정기는 법원서기 시험을 꿈꿨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생계를 이어가야 할 처지였고 첫 직장으로 대구 범양식품에 입사해 코카콜라 영업 사원이 된다. 말이 영업이지, 요즘처럼 지게차도 없이 하루 종일 콜라 상자를 트럭에 올렸다 내렸다 하는 고된 노동이었다.

왜소한 그의 몸집이 감당하기엔 힘든 일이어서 1년 만에 그만두고 새로 한 일은 부두에서 수출품을 배에 싣기 전에 검수하는 일이었다. 육체노동은 아니었지만 주야 교대로 찬바람을 맞아야 하는 일이었다. 결국 그는 가족의 생계보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하고 다시 직장을 그만둔다.

마침 여동생의 친구가 새한자동차(한국GM의 전신)의 경리직이었는데, 단 한 명 있던 영업 사원이 그만뒀다고 해 이력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합격을 확신했던 그의 기대와 달리 탈락의 고배를 마셨고 다음 해 현대자동차 공채에 합격해 자동차 영업 사원의 첫발을 내디뎠다. “만약 그때 새한자동차에 입사했더라면 지금 현대자동차의 눈부신 성장을 부러운 눈으로 지켜봐야 했겠죠. 여러 과정을 거쳐 현대차에 입사하게 된 과정을 보면 운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입사 뒤 보름간의 교육이 끝난 뒤 그는 바로 영업에 나섰다. 지인들 중엔 차를 살 만한 연고가 없어 그는 말 그대로 ‘외판원’처럼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포항의 사무실들을 가가호호 방문해 전단지를 돌리기 시작했다. 마침 ‘대한서적’이라는 서적 총판점 주인이 차에 관심을 보이자 매일같이 “지나다 들렀다”는 핑계를 대며 서점을 찾아갔다. 열 번을 찾아가자 마침내 주인은 “차를 사겠다”고 계약서에 사인했다. 이렇게 해서 그의 첫 계약이 이뤄졌다. 그때 판 차가 ‘포니 픽업’이었다.

“코카콜라 영업을 하면서 어느 정도 영업에 대한 개념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처음 몇 년간은 힘들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회사도 몇 번 그만두고 와서 ‘여기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라는 절박함을 가지고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이어오는 그의 영업 비결은 간단하다. 우선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것이다. 새벽잠이 없는 그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으로, 누구보다 빨리 회사에 출근했다. “그날 무엇을 할지 일찍 나와 준비한 것과 오자마다 느닷없이 일을 시작하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둘째, 잠자는 시간 외에는 모두 영업에 쏟는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는 밤 10시가 되어야 귀가한다. 집에 있으면 나태해지기 쉽고 고객의 전화 응대가 귀찮아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술을 마시거나 당구·골프 등의 잡기는 그의 사전에 없는 말이다.

지금까지 꾸준하게 이런 생활을 반복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했다. 새벽같이 나가서 밤이 되어야 들어오고 주말엔 고객들 경조사 챙기기에 바쁜 남편이 못마땅했던 신혼의 아내는 남편에게 불만을 쏟아 내다가 크게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입사 6년째부터 그가 판매왕(10위권 이내)에 이름을 올리면서 부부 동반으로 참여한 수상식에서 남편의 모습을 보게 되고 회사로부터 다달이 받아오는 금반지와 연간 판매왕에게 주어지는 하와이·동남아시아 가족 여행은 아내를 든든한 후원자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2012년 2월 중 6000대 돌파 예상
[석세스 스토리]“잠자는 시간 외 모두 영업에 쏟죠”
영업직의 은퇴는 일반 직장인보다 빠른 것이 보통이다. 점점 고객과의 나이 차이가 벌어져 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 고객이 이것저것 요구 사항을 마음대로 얘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 부장은 “그런 면도 있지만 오래된 고객과 꾸준히 유대 관계를 쌓으면 그들의 2세들이 대를 이어 또 새로운 고객이 된다.

최근 판매 실적의 3분의 1가량은 그렇게 만들어진 인연들 덕이다. 젊은 사람들을 대할 땐 처음부터 ‘삼촌’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대하라고 한다. 젊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맞게 내가 변해야 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다. 나이 든 사람의 특징은 뭔가를 부탁하면 해결이 느리다. 나이 들수록 부지런해야 한다”고 비결을 얘기했다.

오랜 기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 고객이 갑자기 다른 메이커의 차를 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고객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공들인 고객이 내게 차를 사지 않았다고 해서 관계를 끊는 것보다 그런 상황도 내 품 안에 안고 가는 게 중요하다. 다음번 차를 살 때 돌아올 수 있고, 무엇보다 그 고객이 다른 메이커의 차를 샀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인들에게 현대차가 차라리 낫다고 얘기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도 젊을 때는 이게 안 되었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렇더라”라고 조언했다.

정년퇴직까지 3년 1개월여 남은 김 부장의 기록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지금의 추세라면 2012년 2월 중에 누적 판매 6000대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퇴직 때까지는 계속 판매에 매진할 계획입니다. 그 이후에는 영업 현장에서 산전수전 겪으며 터득한 것을 전국의 많은 후배들에게 전해 주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10년 전부터 정리해 보려고 했는데, 미루다 보니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밝힌 은퇴 후 활동 계획이다.


포항=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