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 데이비슨과 질지언에 배우는 ‘공감’의 비결


주말에 운전대를 잡고 야외로 나가다 보면 까만 헬멧에 어깨 높이만큼 핸들을 올려 잡고 도로 위를 질주하는 오토바이를 볼 수 있다. 다른 오토바이보다 유독 눈에 잘 띄는 할리 데이비슨이다. 독특한 엔진 소리로도 알 수 있다. 자유와 젊음이 멋지게 어우러진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전 세계 오토바이족들의 우상이 되었다. 어떻게 해서 할리 데이비슨이 오토바이족의 우상이 되었을까. 데브 팻나이크가 쓴 ‘와이어드’에는 그 비결이 바로 ‘공감’에 있다고 소개한다.

할리 데이비슨의 공감은 본사 주차장에서부터 시작된다. 대기업 건물에 차를 주차하다 보면 지하층에 들어가자마자 ‘임원용’ 등의 문자가 적힌 주차 구역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회사는 고객 중심의 회사가 아니라는 인상을 받기 십상이다. 팻나이크는 “모든 회사의 주차장은 그 회사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면서 “회사의 주차장을 보면 그 조직의 계급 체계, 지향하는 가치, 그 회사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등을 알 수 있다”고 강조한다.

어떤 회사들은 주차장의 가장 앞자리를 고객을 위해 비워 놓는 반면 다른 회사들은 주차장의 가장 좋은 자리를 경영진에게 제공한다. 누구든지 전자의 회사에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위스콘신 주 밀워키에 있는 할리 데이비슨 본사 주차장을 방문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케이지(Cage) 주차 금지. 오토바이만 주차 가능!’ 속어인 케이지를 모르는 고객들을 위해 친절하게 다시 한 번 오토바이만 주차 가능하다고 써놓은 것이다. 케이지는 오토바이족끼리 자동차를 일컫는 그들만의 속어다.



주차장 좋은 자리는 임원용? 고객용?

주차장은 고객과의 공감을 위한 첫 번째 관문으로 그 시작에 불과하다. 할리 데이비슨의 사무실 분위기는 오토바이 문화를 보여주는 성지와 같다고 한다. 각종 오토바이 사진들과 멋지게 채색된 오토바이 연료 탱크들이 사무실 통로를 따라 끝없이 진열돼 있다. 또한 벽에는 직원 중 한 명이 최근 오토바이를 타고 플로리다에 있는 해변에 갔을 때 찍은 기념사진이 붙어 있다.

본사 건물 내 각 층의 명칭은 ‘브이-트윈’이나 ‘에볼루션’ 같은 예명을 갖고 있는데, 이는 모두 할리 데이비슨이 생산한 다양한 엔진들의 이름에서 따왔다. 건물뿐만 아니라 회의실 탁자도 4개의 엔진 위에 두꺼운 유리판을 올려놓아 만들었다. 이게 모두 할리 데이비슨을 찾는 고객과의 공감을 위한 디자인이자 장치인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회사는 직원과 고객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해 각 부서의 팀장들에게 되도록 많은 시간을 오토바이족들과 함께 보낼 것을 요구한다. 그렇다고 할리 데이비슨 직원이 되기 위해 반드시 오토바이를 타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회사 내의 많은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탈 줄 모른다. 문제는 고객과의 공감을 중시하는 할리 데이비슨의 경영 철학을 공유하고 이를 일터에서 실행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즉 직원들이 오토바이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쌓아온 폭넓은 공감대가 고객편에서 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객들은 할리 데이비슨을 선전해 주는 복음 전도사 집단이 되어 주었다. 나아가 고객들은 할리 데이비슨이 미국의 자유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지금도 할리 데이비슨은 세상에 있는 모든 조직들이 부러워하는 높은 고객 충성도를 갖고 있다.

할리 데이비슨처럼 조직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때 흥미로운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조직이 외부 세계와 형성한 튼튼한 연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다. 그 시작은 바로 생산자의 편이 아니라 소비자, 즉 고객의 편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그것은 고객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서 시작한다. 즉 문제는 ‘혁신’이 아니라 ‘공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제품이 또 하나가 있는데 바로 모차르트와 링고 스타가 사랑한 질지언(Zildjian)의 ‘심벌즈’다. 재즈 음악에 필수적인 악기인데, 할리 데이비슨이 젊음과 자유의 상징이듯이 질지언의 심벌즈에도 젊음과 자유가 담겨 있다. 매사추세츠 주 노르웰에 자리 잡은 질지언은 1623년 터키에서 시작한 가족 기업으로 오토만제국의 황제가 전장에서 심벌즈를 이용해 승전보를 올리면서 유명해졌다. 이어 미국으로 건너와서도 옛 명성을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용에서 나아가 재즈와 록 음악용으로 제품 개량에도 성공했다.

그 비결 역시 할리 데이비슨과 같은 고객과의 공감대에서 비롯됐다. 아베디스 3세는 무대 뒤에서 보스턴을 방문한 다양한 음악가들과 함께 어울려 연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머지않아 드럼 연주자들이 다른 음악가들이 사용하는 것보다 더 좋은 다양한 심벌즈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질지언이 수백 년 동안 만들어 온 심벌즈는 오케스트라용이어서 드럼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시끄럽고 무거웠다. 결국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드럼용 심벌즈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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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과의 공감 실패하면 사업도 실패

아베디스 3세에 이어 경영을 맡은 아들 아먼드는 심벌즈 제작 방법을 다 배우고 나서 드럼 연주를 배우기 시작했다. 아버지 아베디스는 드럼 연주자들과 어울리길 좋아했지만 아먼드는 자신이 직접 드럼을 연주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먼드는 보스턴에 있는 재즈 바의 무대 뒤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다른 음악가들과 어울려 밤늦게까지 파티를 즐기는 것을 좋아했다. 새벽 3시까지 인생과 드럼 그리고 장래 포부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아베디스가 아먼드에게 회사를 물려준 1970년이 되자 질지언의 심벌즈는 드럼 연주자들과의 깊은 유대에 힘입어 재즈는 물론 록 연주에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아먼드는 음악가들과 꾸준히 접촉하면서 얻은 수많은 지식들을 활용해 심벌즈 제조 과정을 개선했다. 이를 통해 심벌즈의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었으며 품질도 개선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팻나이크는 “질지언은 시장조사나 연구·개발에 시간을 투자하는 대신 자신들의 고객인 드럼 연주자들과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언제나 그들의 요구에 관심을 기울였다. 드럼 연주자들과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그들의 요구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 심벌즈 시장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그들이 했던 일의 전부였다”고 강조한다. 이게 바로 소비자 중심 전략이라는 것이다. 질지언을 방문한 음악가들이 새로운 심벌즈를 직접 연주해 보고 새 상품에 대한 견해를 이야기해 줄 수 있도록 사운드 프루프 라운지(Sound Proof Lounge)가 개설돼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업들이 고객들과 공감대로 연결돼 있으면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무엇이 필요한지 더 빨리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만 집중할 수 있어 경쟁자들에 비해 새로운 기회를 더 효과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공감이야말로 정확한 전략 설정과 민첩한 실행력의 출발점이라는 게 팻나이크가 내린 결론이다. 할리 데이비슨과 질지언의 공통점은 이들 제품을 세일즈하는 ‘영업부장’이 다름 아닌 고객들이라는 점이다. 피터 드러커는 ‘추종자’를 둔 리더가 진정한 리더라고 했다. 이에 비유하면 ‘복음 전도사(제품을 홍보하는 충성도 높은 고객)’를 둔 회사가 최고의 회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러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에서 위대한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위대한 인물일지언정 공감이나 동정을 할 수 없는 인물로 묘사한다. 다섯 명의 자녀를 고아원에 버려 놓고도 루소는 국가에 자신의 아이들을 교육하도록 위임한 것이고 어디까지나 플라톤 사상에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자상한 교육법을 담은 ‘에밀’의 작가는 유럽에서 선풍적 인기를 얻은 루소였지만 자식을 버린 비정한 아버지였다. 위대한 인물이라도 훌륭한 인물이 아닐 수 있다. 또는 혁신적인 기업이라도 훌륭한 기업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여부는 어쩌면 인간과 사회, 고객과 ‘공감’을 중시했느냐 여부에 달려 있지 않을까.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