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논란이 불거진 것은 최 전 장관이 최근 정치권과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장의 행보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최 전 장관은 안 원장에 대해 “과학자는 과학을 해야 하는데 왜 정치권에 기웃거리느냐”며 못마땅한 기색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결국 기자들은 다음 날 아침 9시를 엠바고 해제 시점으로 정하고 최 전 장관의 송별 만찬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기사화하기로 결정했다. 이명박 정부의 대표 관료로 손꼽히는 최 전 장관의 무게감에 ‘안철수’라는 이슈가 더해진 만큼 기사화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 대통령 되고 싶어 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최 전 장관은 기자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강도로 안 원장의 행보를 비난했다. 그는 “안 원장은 과학을 잘해서 국리민복 증진에 기여하고 하나의 일자리라도 더 만들어야 한다”며 “안 원장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인슈타인이 미국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하는 것과 같다”고까지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안 원장이 안철수연구소 보유 주식의 절반을 저소득 청소년을 위한 교육 재원으로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직후 안 원장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인기가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더욱 휘발성이 강했다.
그는 안 원장을 한 번 만난 적이 있다며 “겸손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하고는 “정치 얘기가 나오는 것을 보고 의외였다”고도 했다. 그는 ‘과학자라도 특정 정책이나 정치 세력을 지지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평범한 사람들은 그렇게 해도 되지만 나라의 진운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그러면 안 된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안 원장 정도의 위치에 있는 과학자는 한눈팔면 안 된다”며 “돈 좀 벌고 이름 좀 났다고 그러면(정치를 하면) 안 되며 과학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최 전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예상대로 다음 날 아침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사실 최 전 장관의 이 같은 면모는 예전부터 그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키워드였다. 최 전 장관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옳다고 판단되면 상대방이 누구든지 즉석에서 의견을 피력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이날도 자신에 대해 “나는 ‘스트레이트포워드(straightforward: 복잡하지 않은, 솔직한)’한 사람”이라며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힘들고 어렵게 살았다”고 말했다.
그런 최 전 장관도 9월 15일에 일어난 순환정전 사태를 접했을 땐 정말 곤혹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사태 발생 당일 오후 4시 10분쯤 순환정전 보고를 받고 나서는 게임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일 청와대에서 콜롬비아 공무원들과 굳이 밥을 먹었어야 했느냐는 질문에 “굉장히 큰 프로젝트(한국·콜롬비아 간 경제협력)를 놓아두고 나 살자고 전력거래소에 가서 군기 잡고 야전침대를 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평소 카리스마 가득한 모습의 최 전 장관이 송별 만찬에서 이처럼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자 이날 자리를 함께한 일부 공무원들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몇몇은 최 전 장관 자리로 와서 자신의 술잔을 건넸다. 최 전 장관도 일일이 부하 직원들의 이름을 부르며 잔에 술을 채웠다. 특히 정전 사태에 대한 문책을 받은 몇몇 공무원들에 대해선 “그래도 참 열심히 일한 이들이니 너무 고깝게 보지 말아 달라”며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보였다.
박신영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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