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생생 토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 처리가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런 사이 국회엔 국내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다. 매년 맞는 다음해 예산안 심사다. 정부는 지난 10월 내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기금 등을 제외한 정부가 국회에 낸 내년 예산은 326조1000억 원 정도다.
11월 18일 현재 국회는 농림수산식품위원회와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등 2개를 제외하고 모든 상임위가 예산 예비 심사를 마쳤다. 기자가 두 상임위를 제외한 15개 상임위의 예산 검토 보고서를 분석해 보니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 7조6672억 원을 더 불렸다.
예산 증가액은 도로공사 등 토목사업 같이 개발을 담당하는 국토해양부 등을 담당하는 국토해양위원회에서 가장 높았다. 정부가 국토위 예산으로 24조4768억 원을 배정해 제출했는데 국회가 여기에 3조1007억 원을 더 보탠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개발 사업에 예산을 따오기에 나선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방의 도로공사 100여 곳에서 1조7344억 원의 예산이 국회에서 증액됐다. 대부분 유력 대권 주자나 국토위 여야 간사(한나라 최구식, 민주 최규성) 지역구 공사가 많았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여야 간사(한나라 장윤석, 민주 강기정)가 모두 국토위 소속인 지역구도 눈에 띄었다.
보건복지부 등을 담당하는 보건복지위원회의 예산도 크게 뛰었다. 국회 복지위는 보건복지부의 내년 예산(21조7375억 원)에서 1조9000억 원 정도를 더 늘려달라고 요구했다. 복지부는 정치권의 복지 요구가 많아진 것을 감안, 이미 내년 복지 예산을 올해보다 1조453억 원 더 늘려 국회에 제출했었다.
복지 예산 중에서도 주로 노인과 육아 관련 예산이 크게 늘었다. 정치권이 내년 예산을 짜기 전부터 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정부가 재정을 우려해 합의되지 못한 정책들의 예산이다. 투표율이 높은 노인층과 중도층으로 변한 30~40대를 겨냥했다는 분석이다.
경로당의 난방비와 쌀 구입비 등 예산도 정부는 72억 원을 책정했지만 국회가 778억 원을 더 늘려 850억 원으로 만들었다. 노인 대상인 공공 분야 일자리 단가를 2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늘리는 데 쓰라며 662억 원도 넣었다.
30~40대를 위해선 육아 예산을 챙겼다. 영·유아 보육료 지원에 515억 원의 예산이 국회에서 불어났으며 보육 돌봄 서비스(282억 원), 어린이집 미이용 아동 지원(287억 원), 방과 후 돌봄 서비스(240억 원), 아동 시설 기능 보강(208억 원) 등이 정부 예산안에서 더해졌다. 어린이집 지원 예산은 정부안보다 두 배 이상(557억 원→ 1184억 원) 뛰었다.
그리스·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의 부도 위험 사태가 터지면서 국가 균형재정을 강조하는 시기에 국회의원들이 앞다퉈 예산을 늘린 건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국회의원들이 여야를 떠나 예산을 챙기기엔 서로 협조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국회 관계자는 “복지 예산을 복지부만 담당하지 않는 만큼 다른 상임위에서도 복지 관련 예산이 늘어났을 것”이라고 했다. 상임위의 예비 심사를 마친 예산은 예결특위를 거쳐 본회의에서 확정된다. 올해는 12월 2일이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이다.
김재후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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