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 교수 스카우트 전쟁


국내에서 경영학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주요 경영대들은 ‘우수 교수진 모시기’에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다. 아무리 명문 경영대라고 할지라도 이제는 ‘교수 채용’ 공고를 내는 것만으로 양질의 교수를 채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영대들은 정원이 크게 늘어나면서 학생들을 지도할 교수를 양적으로 늘려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질적으로도 연구 실적이 우수한 교수를 영입하는 것은 경영대의 대외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이렇듯 경영학 교수에 대한 수요가 점점 증가하는데 비해 국내 경영대가 원하는 일정의 자격 요건을 갖춘 교수의 공급은 한정적이어서 소위 경영학 교수들의 몸값이 치솟고 있는 상황이다.
성대 경영대 데이비드 데이 교수
성대 경영대 데이비드 데이 교수
연세대 경영대는 현재 전임교수가 70명이며 객원교수 5명과 연구교수 2명이 있다. 5년 전 59명에서 11명 늘어난 것이다. 이미 선발돼 2012년에 부임할 3명의 교수를 포함하면 내년 73명으로 늘어나고 앞으로 연세대는 5년 안에 전임교수를 100명까지 늘릴 예정이다.

국내 경영대가 교수의 수를 비약적으로 늘려야 하는 이유는 일부 대학의 정원이 300명까지 확대됐고 2009년 법학과가 폐지되면서 신설된 자유전공학부의 70~80%가 상경계열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 전공 학생들도 부전공·복수전공으로 경영학 수업을 듣고 있어 학생들의 수요에 맞추기 위해서다.



국제 학회 통해 교수 ‘헤드헌팅’

이에 따라 경영대들은 국내외로 우수 교수를 확보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고 있다.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경영대 교수를 물밑 접촉하고 국내 경영대로의 이직을 제안하는 좋은 기회가 바로 각종 국제 경영학 학회다. 경영학 내 마케팅·회계·재무 등 각 세부 전공 교수들은 학장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전공별 학회에서 영입 가능한 교수의 ‘현지 헤드헌팅’에 나선다. 가장 많이 관심을 두는 자격 요건은 미국의 명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해외 대학에서 활동하면서 연구 실적을 검증받은 교수다.

한국어가 가능한 한국 출신이나 한국계 교수라면 1순위다. 박경희 이화여대 경영대학장은 “우리 교수들이 학회에 참석하는 것은 논문 발표를 위한 목적도 있지만 우리 대학으로 모셔올 교수 후보를 많이 만나보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말한다. 나인철 한양대 경영대학장은 “일부 학회는 일종의 ‘채용 박람회’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국제경영학학회가 대표적으로 교수 채용 박람회 역할을 하는 학회다. 국내 주요 대학 경영학 교수들은 이 학회에 참석해 많은 해외 교수들을 만나 관계를 맺고 궁극적으로 이직을 제안하기도 했다.

일반 채용 시장이 신입과 경력으로 양분되는 것처럼 교수 채용에서도 박사 학위를 막 받은 엔트리 레벨과 교육·연구 두 부분에서 활약이 뛰어난 슈퍼 클래스로 나뉜다. 국내 경영대의 엔트리 레벨은 연봉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 약 3000만~4000만 원 수준이며 정착 연구비를 추가로 제안 받는다. 하지만 슈퍼 클래스는 얘기가 다르다.

수억 원대의 고액 연봉을 제안 받으며 인센티브도 많은 경우 연봉의 절반 수준까지 보장받는다. 나인철 경영대학장에 따르면 “연봉 외 연구 지원비는 편차가 크지만 학교가 지급하는 지원금에 외부 연구비까지 더하면 상당한 수준까지 몸값이 올라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경영대 관계자들은 경영대 교수의 ‘몸값’이 해외와 비교해서는 국내 수준이 턱없이 낮아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성토한다. 앞서 살펴봤듯이 박사 학위를 막 받은 교수가 국내에 들어온다면 3000만~4000만 원 수준이지만 해외 명문대학에 간다면 9개월 연봉이 15만~18만 달러(1억6000만~2억 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주택 제공 문제, 자녀 교육비용 등도 해외 대학에 비해 열악하다.
[2011 전국 경영대 평가]미 명문대 박사 ‘1순위’…몸값 ‘쑥쑥’
결국 북미권에 수학하고 활동하는 교수들이 이러한 이유로 한국행을 꺼리면서 교수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설명이다. 민재형 서강대 경영대학장은 “우리가 원하는 실력을 갖춘 교수를 모시려고 해도 교수 임금이 계열별로 통일돼 있는 국내 사정으로는 그들이 요구하는 몸값을 지불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박상용 연세대 경영대학장은 “해외 명문 대학은 1년에 3과목(처음 2~3년은 2과목)만 강의하고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데 비해 국내 대학은 보통 4과목을 강의하기 때문에 연구 여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국내 타 대학 교수 ‘모셔오기’도 활발

국내 경영대가 교수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또 다른 이유는 다른 아시아 대학도 경쟁적으로 고액 연봉을 제시하며 미국과 유럽의 유명한 교수 유치전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월 25일자에서 “10년 전만 해도 야심 있는 경영학 연구자들은 주로 미국 등 서구세계에서 일하고 싶어 했지만 지금은 방향이 정반대로 바뀌었다”며 “아시아가 경영학 분야 최고 학자들의 경연장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몇 년간 유명 경영학 교수들이 중국과 싱가포르 등 아시아권 대학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FT는 “미국과 유럽 대학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강의 부담을 늘리고 연봉을 동결하는 반면 아시아 대학들은 고액 연봉을 제시하며 교수들의 아시아행을 이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국내외 경영대들은 재정이 많은 학교와 부족한 학교 사이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한편 국내 경영대학 사이에서 교수를 서로 스카우트하는 사례도 크게 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 사회에서 교수들의 이직은 금기시돼 왔다. 하지만 최근 경영대를 중심으로 우수한 교수 유치전이 치열해지면서 학교를 옮기는 교수들이 크게 늘고 있는 것. 이화여대 경영대는 자조적으로 ‘경영학 교수 아카데미’라고 부를 정도로 교수 유출이 잦다.

이화여대 경영대는 지방대 출신 교수지만 잠재성이 높은 교수를 발굴해 왔다. 그 교수들이 이화여대에서 좋은 연구 실적을 보이자 고려대와 서강대 등에서 스카우트해 간 사례가 있다고 박경희 경영대학장은 밝혔다. 경영학 교수들의 학교 이동이 빈번해지면서 각 경영대들은 소속 교수를 잘 붙잡아두는 데도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이에 대해 나인철 경영대학장은 “경영대가 경쟁력을 높이고 고품질 교육과 연구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교수의 학교 이동이 활성화되는 것이 좋다”며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세계적인 비상을 꿈꾸고 있는 국내 경영대가 보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연구 시스템을 구축하고 외국인 교수들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경영대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한편 이미 학계에서 인정받은 교수 모시기에만 혈안이 될 것이 아니라 신임 교수를 잘 육성해 학계에서 주목할 만한 실적을 낳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