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 주점 ‘천상’
실패 없이 한 번의 창업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처음 가게를 열고 안정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은 아주 운이 좋은 케이스가 아닐 수 없다. 창업자들은 보통 큰 성공보다 실패하지 않으려고 대형 브랜드를 가맹하는 형태로 창업하고 개인 점포로 창업하더라도 운영 중인 점포를 인수하곤 한다. 하지만 스스로 개척해 일군 점포는 당장의 금전적인 보상이 따르지 않더라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과 도전 의지를 남겨 준다.
이태원의 일본식 퓨전 주점 ‘천상’의 박순임 사장이 돌이켜본 창업 계기는 일본 여행에서 맛본 돈가스였다. 창업 경험이 없는 전업주부였던 그는 정통 일식 돈가스가 한국에서도 성공할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 점포를 열 궁리를 했다.
지역도 다양한 문화가 유입되는 이태원이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라고 판단해 1999년 제일기획 맞은편 43㎡의 점포를 오픈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해밀턴 호텔을 중심으로 뻗은 중심 상권과는 떨어져 있지만 나름대로 새로운 아이템이니 좀 떨어져 있더라도 고객들의 발길을 끌 수 있을 것이란 낙관적인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개점한 뒤의 현실은 점심시간에만 반짝 직장인들의 매출이 있을 뿐 저녁이나 이후의 매출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일매출이 50만 원을 넘지 못하는 날이 이어지고 월말이면 직원들의 급여를 위해 이 카드 저 카드로 돌려 막아야 했다. 이런 상태가 2년여 이어지자 결국 실패를 인정한 박 사장은 가게가 이렇게 되기까지의 잘못을 하나하나 아프게 곱씹었다.
메뉴부터 운영까지 전부 바꿔
실패한 가게들이 결국 손을 털고 나오지만 박 사장은 하나부터 열까지 점포의 모든 것을 다시 고쳐 살려낼 궁리를 했다. 메뉴부터 뜯어보니 자신이 도입한 이자카야 메뉴는 서비스 안주가 많아 요리의 마진율이 너무 낮았다. 공짜로 주던 서비스 메뉴도 정통을 고집하는 대신 퓨전을 도입해 단품 요리로 만들었다.
주방장이 “다른 가게에선 서비스로 나가는 것들을 어떻게 파느냐”고 했지만 홀에서 손님들을 관찰해 온 박 사장은 고집스럽게 직접 개발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100여 개의 다양한 안주 메뉴를 만들었다. 정통 일식 돈가스로 출발한 가게가 한국식이 가미된 일본식 퓨전 주점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메뉴들은 일일이 고객의 반응을 체크하고 다음 신 메뉴로 끊임없이 발전시켰다.
식재료도 직접 고르며 문제점을 찾다 보니 신선한 제철 재료를 더 싸게 구입하는데 요령이 생겨 식자재의 로스도 조금씩 줄었다. 이렇게 사장이 일일이 주방부터 홀까지 전천후로 뛰어다니며 챙기고 고치기 시작하니 직원들과 고객들의 반응이 바뀌기 시작했다. 달라진 요리와 달라진 가게에 손님들이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저녁과 밤의 매출도 오르기 시작해 매출이 2배가 됐다.
마침 장사가 신통치 않았던 옆 가게에서 인수 제안이 들어왔기에 과감히 확장을 선택했다. 매출 2배를 달성한 후 점포 크기도 2배가 넘게 늘게 된 것이다. 점포 확장에 들인 투자금은 1억 원이 넘었지만 투입된 사람은 주방과 홀 각각 1명으로 족했다. 늘어난 테이블 수만큼 매출도 따라 늘었으니 투자 대비 수익률이 놀랄 만큼 높아졌다. 손님 구경하기가 힘들던 돈가스 가게에서 매달 순익이 수천만 원에 이르는 퓨전 주점 사장님이 되었으니 요령을 피울 만도 하건만 실패의 경험이 준 교훈을 배운 박 사장은 메뉴뿐만 아니라 인테리어도 정기적으로 바꾸는 등 끊임없이 변화를 주고 있다.
![[성공하는 점포 탐구]실패는 더 큰 성공의 밑거름이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102/AD.25520299.1.jpg)
이재영 김앤리컨설팅 소장 jy.lee200@gmail.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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