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하이닉스’호의 미래 심층 분석
SK텔레콤이 하이닉스반도체 인수 계약을 체결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했다. SK그룹은 에너지와 통신의 양대 축이 있지만 내수 위주의 사업 구조로 성장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SK그룹에 하이닉스는 일종의 모험이다. 반도체 사업은 연간 3조~5조 원의 대규모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자본 싸움이다. 가격 변동이 심한 반도체 시장이 자칫 불황에 빠지면 인수한 회사마저 휘청거리는 ‘승자의 저주’에 빠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SK그룹과 하이닉스에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지난 11월 14일 SK텔레콤은 하이닉스반도체(하이닉스) 주식 1억4610주(지분율 21.1%)를 3조4267억 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신주 1억185만 주(14.7%)를 2조3426억 원(주당 2만3000원)에, 구주 4425만 주(6.4%)를 1조841억 원(주당 2만4500원)에 각각 인수할 계획이다. 11월부터 정밀 실사에 들어가 2012년 초에 최종 가격을 확정할 예정이다.
지분 21.1%로 SK텔레콤은 그 자체로 최대 주주의 자격을 얻게 된다. 현재 하이닉스는 국민연금공단(8.08%)과 한국정책금융공사(5.47%)를 비롯한 7개 기관이 17.3%의 지분을 갖고 있다. 나머지는 대부분 소액주주들이 보유하고 있다. 하이닉스, 삼성전자(반도체 부문)만큼의 투자 가능
일단 인수 가격에 대해 하이닉스 쪽에서는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분석된다. 김형식 토러스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하이닉스의 구주 판매액은 기존 주주들이 가져가고 신주로 발행되는 금액인 2조3000억 원이 하이닉스의 투자금으로 쓰인다고 하면 기존 EBITDA(영업이익에서 감가상각액을 뺀 것·비공식적으로 ‘에비타’라고 부르기도 함) 내 투자액인 3조 원을 합해 5조 원 이상을 설비 투자에 사용할 수 있다”며 “이는 일본 엘피다가 올해 1조 원 정도, 대만 난야가 6000억~7000억 원대를 투자한 것에 비하면 굉장히 큰 금액이다. 미세 공정에서도 하이닉스가 한 공정 앞서 있는 상황인 데다 투자금액에서까지 차이가 나면 격차가 훨씬 더 벌어질 것이고, 이는 하이닉스에 호재”라고 평가했다.
지난해까지 하이닉스는 EBITDA 이내인 약 3조 원을 재투자했다. 김형식 애널리스트는 “주인이 없는 회사이기 때문에 EBITDA 내에서만 투자가 가능했지만 새로운 주인이 의욕을 갖고 에비타 이상인 5조 원대의 투자를 집행하면 하이닉스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참고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지난해 10조 원의 영업이익을 냈고 올해 5조4000억 원을 투자했다.
2010년 전 세계 반도체 업계 순위를 보면 하이닉스는 6위다. 메모리 반도체 중 D램은 삼성전자에 이어 2위, 플래시메모리 분야에서는 4위다. 하이닉스는 이미 2004년 미국 매그나칩에 비메모리 부문을 매각한 후 비메모리 부문은 거의 접은 상태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내에서 모바일용 시스템 반도체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미 삼성전자는 자사의 스마트폰인 갤럭시S 시리즈는 물론 애플의 아이폰에까지 시스템 반도체를 납품할 정도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상태다. 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로 하이닉스도 이와 같은 비메모리 부문을 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오영보 한맥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청주 사업장의 M11 공장 위층이 지금 비어 있는데 여길 무엇으로 채우느냐가 관건이다. 그간 투자 방향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구체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플래시메모리 분야에서도 투자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의 수요는 D램에서 플래시메모리로 점차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이닉스는 D램에서는 삼성전자에 이은 2위지만 플래시메모리에서는 아직 삼성전자·도시바·마이크론에 뒤져 있다. 반도체 사업은 경기 변동에 매우 민감
돈 가뭄에 목말라하던 하이닉스에는 ‘핫머니(단기성 투기자금)’가 아닌 SK텔레콤 같은 건실한 대주주를 만난 것이 분명 호재다. 그러나 SK텔레콤에 대한 금융계의 의견은 그렇게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일단 국제 신용 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SK텔레콤이 하이닉스 인수 계약을 체결한 당일인 11월 14일 부정적 의견을 담은 리포트를 발표했다. S&P는 “SK텔레콤의 장기 기업 신용 등급 ‘A’를 유지하되 ‘부정적 관찰 대상(Credit Watch Negative)’으로 지정하고 2012년 초 SK텔레콤이 순조롭게 하이닉스를 인수하게 되면 신용 등급을 ‘A-’로 한 단계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반면 하이닉스에 대해서는 ‘B+’를 유지하되 ‘긍정적 관찰 대상’으로 지정했다.
그 이유에 대해 S&P는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반도체 사업이 경기 변동에 매우 민감한 사업이라는 것이다. SK텔레콤의 이동통신 사업은 특별한 리스크 없이 안정적인 매출과 이익이 창출되는 사업인데, 변동성이 큰 사업을 인수함으로써 SK텔레콤의 사업 안정성을 해친다는 것이다. S&P는 “하이닉스의 수익 변동성과 대규모 자본 지출은 SK텔레콤의 안정적 현금 흐름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둘째, 그간 현금 유동성이 풍부했던 SK텔레콤의 차입이 늘어나 재무 안정성을 해친다는 것이다. S&P는 “SK텔레콤이 은행 차입금과 보유 현금으로 인수 대금을 조달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SK텔레콤의 재무 상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셋째,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S&P는 “하이닉스가 SK텔레콤의 핵심 사업과 연관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SK텔레콤의 하이닉스 인수는 성장 전략이 현재의 신용 등급 ‘A’에 반영된 것보다 훨씬 더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는 S&P가 SK텔레콤의 기업 지배 구조를 평가하는데 부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국내 증권사들의 SK텔레콤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삼성증권은 S&P와 비슷한 이유로 SK텔레콤에 대해 ‘홀드(Hold)’ 의견을 냈다(11월 11일). 국내 증권사들이 법인 고객이기도 한 대기업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잘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홀드’의 의미는 곱씹어봐야 한다. 강지훈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SK텔레콤의 하이닉스 인수는 시장 포화, 지속적인 마케팅 비용 부담, 규제 이슈 때문에 매력도가 감소하고 있는 통신 산업의 현실을 방증한다. 이런 맥락에서 하이닉스 인수는 성장성 확보를 위한 노력으로 평가할 수도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망했다. SK텔레콤에 대한 국내 반응 엇갈려
한국투자증권은 SK텔레콤에 대해 매수 관점을 유지한다는 의견을 냈다(11월 14일). 양종인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SK텔레콤의 하이닉스 인수는 긍정적인 점이 부정적인 점보다 커 보인다”며 네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2012년과 2013년 하이닉스의 추정 이익(시장 컨센서스에 따름)으로 계산한 지분법 이익(순이익×20%)은 각각 1951억 원, 3284억 원으로 인수에 따른 이자비용 1427억 원(차입 금리 4.5%)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둘째, 인수 가격을 적용한 하이닉스의 2년 평균 주가순자산배율(PBR)은 1.5배로 과거 8년간의 평균 1.6배보다 낮다는 점을 들었다.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는 것이다. 셋째, 정부 규제가 많고 성장이 정체된 통신 산업에서 벗어나 규제가 없고 성장성이 높은 수출산업으로 다각화한다는 점이다. 넷째, 하이닉스가 시스템 LSI(비메모리 반도체)로 사업을 확대하면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만 양종인 애널리스트도 SK텔레콤의 이익 변동성이 커지는 점은 부정적인 요소로 언급했다.
업계의 예측대로 하이닉스가 시스템 LSI 사업을 확대한다면 SK텔레콤이 그간 돈독한 관계를 맺어 왔던 삼성전자와의 파트너십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지금까지 하이닉스는 삼성전자의 경쟁자라기보다 아우와 형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시스템 LSI 사업을 키워 모바일 기기 업체들과의 납품 경쟁을 벌일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1년 전까지는 ‘KT-아이폰’, ‘SK텔레콤-갤럭시S’라는 파트너십이 이어졌지만 최근엔 이런 영역 구분도 점차 희미해진 상황이기 때문에 SK텔레콤과 삼성전자와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먼 미래의 일이지만 하이닉스가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에서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면 SK텔레콤이 다시 휴대전화 제조업에 손을 댈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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