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TPP 논쟁


일본 정부의 속이 타들어 간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미국 의회 비준 통과 이후부터다. 우선은 위기감이다. 한일 경합재가 많은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 수출 경쟁력을 잃을까봐 우려돼서다. 한국산이 관세 호재로 값이 싸지면 일본산은 덜 팔릴 수밖에 없다. 그간 잠잠하던 일본 정부도 승부수를 띄웠다. 총리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가 선언 의지 확인이 그렇다. 이후 열도는 참가 여부를 둘러싼 갑론을박의 논쟁 현장으로 바뀌었다. 진행 양상, 찬반 근거 모두 한국의 FTA 체결 당시와 판박이다.



한미 FTA가 미국서 비준되자 서둘러

그렇다면 TPP는 뭘까. 기본적으로 모든 관세를 없애는 협정이다. 자유화 레벨이 아주 높으며 가맹국의 모든 재화·서비스·자본이 활발히 교류되도록 한 형태다. 즉 상품뿐만 아니라 자본·노동의 자유로운 교류까지 허용해 개방 범위가 깊고 넓다.

경제적으로 하나의 국가가 목표다. 현재 싱가포르·보르네오·칠레·뉴질랜드 4개국이 협정 체결을 완료했다. 여기에 미국·호주·베트남·페루·말레이시아가 참가 표명(협상 중)을 밝혔다. 총 9개국이다. 태평양에 접한 아시아·오세아니아·북미·남미각국이 TPP 후보 국가다. 한국·중국·캐나다 등의 참가 예정은 현재로선 없다. TPP보다 FTA가 낫다는 인식 때문이다.

참가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추진파 vs 반대파’의 주장 근거는 명확하고 확실하다. 수출 지향적인 이해관계인은 강력 추진을 외치는 반면 내수산업 관련 종사자는 결사반대를 주장한다. 표와 돈을 바꾸던 자민당의 이익 유도적인 정치 구조 때문에 농림어업의 입김이 센 일본에서 무역협정은 전통적으로 소극적인 이슈였다.
토요타_모토마치_공장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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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미 FTA가 비준(미국)되자 상황이 급반전됐다. 집권 여당을 비롯한 재계가 “침체에 빠진 일본 경제를 위해 TPP는 절체절명의 체결 과제”라며 이구동성 외친다. 반면 야당과 일부 여당 의원은 TPP의 파괴력을 감안, 미국 기준을 일본에 강요·도입할 수 없다며 맞받아친다. 농업계는 시장 개방, 경쟁 심화로 괴멸할 것이란 논리를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찬반 논리를 살펴보자. 찬성 근거는 수출 효과를 첫손가락에 꼽는다. 1990년대 복합 불황 이후 내수 침체 속에 그나마 수출 호황으로 먹고살았기에 대폭적인 관세 철폐는 일본산의 가격 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를 비롯해 전자제품·정밀기계 등이 수혜 품목이다. 약 2조7000억 엔의 성장 효과가 거론된다. “1.5%를 위해 98.5%를 희생할 수 없다”는 논리다.

반론은 구체적이다. 농업 피해가 대표적이다. 또 관세 철폐의 이득은 10년에 실질 국내총생산(GDP) 0.5~0.6% 상승효과뿐이다(미쓰비시UFJ리서치). 수출 증가로 내수 확대와 국내 생산성 증가 효과는 기대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약하다. TPP 체결국의 체력도 문제다. 대부분 1인당 GDP가 1만 달러 이하거나 인구가 적다.

고가의 일본 제품을 살만한 구매력과 시장성이 낮다. 미국만 아니면 체결 동기가 적다. 미국이 들어와도 문제는 남는다. 자동차 수출관세가 2.5%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역으로 엔고 영향이 더 크다. 2.5% 관세 효과는 환율로 2엔 전후에 불과하다. 디플레(수입 가격↓)로 국내 소비는 이득일 수 있지만 뜯어보면 손실일 확률도 높다.

전망은 불투명하다. 당장 내각 지지율이 하락세다. TPP와 함께 소비세 인상과 연금 개혁 등이 세트로 묶여 지지율을 떨어뜨린다. 정치적 리더십이 재차 도마 위에 오른다는 의미다. 가뜩이나 엔고 때문에 괴로운 판에 TPP가 새로운 갈등 불씨로 거론되는 배경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