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불확실성, 변동성, 위기와 기회…. 2012년 금융시장을 전망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악화 일로의 글로벌 경기가 2011년 2분기 저점을 통과했다는 시각도 있지만, 대부분의 금융 전문가들은 여전히 불안한 요소가 남아 있다는 데 뜻을 같이한다.국제통화기금(IMF)과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향후 전 세계적 경제 전망을 계속 하향 조정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 국내 경제가 미국과 유럽 등 해외발 이슈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처럼 2012년 금융시장도 대외 변수에 따라 좌우되는 불안정 양상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재정 위기가 금융 위기로 재전이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며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달라진 세계경제 환경을 이끌 주체가 없다는 점이 심각한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글로벌 금융 환경에서 우리 정책 당국의 금융정책은 어떤 방향성을 띨까. 한국금융연구원 김병덕 선임연구위원은 “금리 측면에서는 불안정한 대외 환경이 급격한 정책 금리 상승을 저지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며 환율 측면에서는 글로벌 시장의 달러화 약세, 안정적인 외화 수급 여건 등으로 원·달러 환율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금리와 환율 외 이슈에 대해서는 “가계 부채 증가율을 적정 수준으로 관리, 총량 측면에서는 점진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수준으로 안정화하는 것이 필요하며 금융 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한 소비자 보호 체계의 전면 개편도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글로벌 시장서 달러화 약세
코스피를 포함해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3년여간 강한 상승세를 기록한 글로벌 증시는 조만간 깊은 또는 장기간의 조정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된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상반기 주식시장을 ‘장밋빛’으로 내다보며 “그러나 하반기에는 유럽 은행권의 자본 확충 과정에서의 진통, 미국 긴축의 시작 여부, 미국과 한국에서 대선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정치적 불투명성의 존재 등의 요인이 위험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2012년 코스닥 시장은 상대적 강세가 전망되고 있다. 김동준 신한금융투자증권 투자분석부장은 “‘칠공주(LG화학·하이닉스·기아차·삼성전기·제일모직·삼성SDI·삼성테크윈)’,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에서 상실했던 투자자들의 수익률 게임이 거시 경제의 불확실성 완화, 차별화된 성장성, 부품 소재 산업의 중요성, 분배 이슈, 벤처 스타 탄생, 중소형주 및 가치주 펀드의 성장세 등으로 우호적인 환경이 예상되는 중소형주 중심의 코스닥 시장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채권 수급 상황은 물가를 고려한 실질금리 하락과 함께 은행의 채권 매수 재원으로서 예금 증가 정도가 다소 주춤할 수 있지만 보험 등 장기 투자회사들의 위험 기준 자기자본(RBC), 퇴직연금 상품 관련 대기 수요 등으로 장기채 수급 여건이 크게 악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채권 수요의 또 다른 주축인 외국인은 내외 금리 차 축소, 투자 규제 가능성 등에 따라 매수 강도가 2011년에 비해 둔화될 수 있다. 하지만 국가 신용 등급을 고려한 통화 및 재정 건전성 측면에서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외화 자산 다변화 노력이 지속될 것이란 관점에서 국내 장기물 투자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은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은행 산업은 기로에 서 있다. 한정태 하나금융 리서치센터 기업분석실장은 “2012년 그림을 그려 보면 상반기는 유럽 문제가 간간이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되고 하반기에는 은행 산업의 성장 한계에 대한 우려감이 점차 이슈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내년은 대선 정국으로 기업 측면보다 수요자 측면에서 은행의 공공성이 강조될 가능성 높아 하반기로 갈수록 주식시장에서 은행 산업은 재미를 줄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증권시장은 매크로 지표와 자본시장의 환경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업황 특성상 증권사들 이익의 불확실성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길원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증권 업종, 정확히는 대형 증권사들의 성장을 기대할 만한 환경이 마련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며 “무엇보다 장기금리의 하락 추세는 안전 자산의 선호를 약화시키는 중요한 기제로, 부동산 신화의 몰락과 저금리 기조의 고착화는 개인의 금융·비금융 자산을 위험 선호 자산으로 이동하도록 강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 정책 당국이 제시한 대형 투자은행의 요건인 자기자본 3조 원을 기준으로 요건을 갖춘 상위 증권사들과 그렇지 못한 증권사 간 그룹이 명확히 나뉘어 대형 증권사들은 차별적인 성장 동력을 보유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보험 업계는 성장성이 둔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병건 동부증권 리서치센터 기업분석 1팀장은 “2011년에는 낮아진 투자자들의 기대를 바탕으로 개선되는 업황이 더해져 보험주의 저평가 매력이 부각됐던 반면 2012년은 보험주의 불안한 환경 요인과 저성장이 융합돼 매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다만 어려운 대외 여건으로 경제 전반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보험 업종의 방어적 성격이 돋보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2년 기금 운영 계획에 따르면 국민연금을 포함한 65개 전체 기금의 수입 규모는 382조1000억 원으로 2011년보다 3.5% 증가가 예상된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전체 연·기금 중 기금 규모가 가장 큰 국민연금은 기금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제고하고 기금 규모 증가에 대비한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 투자 다변화, 분권화, 역량 강화를 기금 운용 방향으로 설정했다”며 “채권 위주 투자에서 주식, 대체 투자, 해외 투자 비중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공무원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은 지속되는 재정 적자 문제로 추가적 제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2012년 국내 사모 펀드 시장은 거대 지각변동이 불가피해 보인다.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조교수는 “헤지 펀드라는 새로운 기회의 등장으로 국내 사모 펀드 산업이 일대 도약하고 한층 성숙되는 해가 될 것”이라며 “사모 투자 펀드(PEF)에는 자금 조달에서 일시적으로 어려운 시기일 수도 있지만 서로 다른 특성을 지난 PEF와 헤지 펀드 간 경쟁은 각자의 경쟁력을 크게 강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카드 산업은 매출 외형이 다소 늘어나겠지만 카드사 간 경쟁 격화와 수수료 인하 요구 압력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되거나 제자리걸음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올해 커다란 위기를 맞았던 저축은행 역시 내년에도 위기가 잠재해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그 배경에 대해 “저축은행이 많이 보유하고 있는 수도권 부동산에 대한 경기 전망이 밝지 않기 때문”이라며 “뼈아픈 구조조정을 통해 지역 특성에 맞는 서민 금융회사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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