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영


예상하다시피 2012년 기업 경영과 관련한 변수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대외 변수는 미국·유럽·신흥개발국의 경기 상황이다. 수출국의 소비 수요가 기업의 실적과 이어지는 만큼 각 국가의 경기 회복 여부가 중요하다. 둘째, 대내적으로 총선·대선이 있다.
‘소비심리·선거·상생’이 주요 변수
보수 정부냐, 진보 정부냐에 따라 기업들이 얼마나 잘 적응하는지가 향후 수년 동안의 운명을 가를 수 있다. 셋째, 대·중소기업 상생 기조가 심화되느냐, 완화되느냐 여부다. 현재 분위기는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인데, 이것이 더 구체화되고 강제성이 부여되는 방향으로 가는지 여부가 주목을 끌 것으로 예상된다.

관가 상황에 밝은 정보맨들 각광받을 것

이미 미국은 2013년까지 초저금리를 유지하겠다고 못 박은 상황이다. 제3차 양적 완화(QE3) 실시 여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늘어난 유동성을 회수할 계획은 없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유동성이 증가할 전망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은행 지원과 신용 경색 완화를 위해 긴급 대출 프로그램 가동 및 무제한 유동성 공급 의지를 밝힌 상황이다.

이러한 선진국의 통화정책은 결국 신흥국에도 영향을 미쳐 금리 정상화를 지연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선진국의 유동성 공급은 달러·유로화의 약세 압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에 따라 신흥국에서는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이다. 신흥국의 물가 상승은 결국 소비 여력을 감소시키게 된다.

선진국 수출 일변도였던 한국 기업들은 수출국을 다변화하며 리스크를 분산하고 있는데, 선진국·신흥국 모두 수출 길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박형중 메리츠증권 이코노미스트(경제 분석 애널리스트)는 “2012년 경영 환경은 대내외의 수요 부족이 가장 큰 리스크 요인으로 전망된다. 선진국 수출 위주의 기업은 당분간 더 악화될 소지가 있고 신흥국 역시 높은 수준의 물가 상승률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경제신문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담당하고 있는 정인설 기자는 “2012년은 제대로 된 ‘정치의 해’다. 4년마다 열리는 총선과 5년마다 열리는 대선이 20년 만에 겹친다”라며 “아무리 정경유착이 없어지고 민간 기업의 힘이 세졌다고 해도 여전히 정치권력은 기업 경영에 사실상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 여의도와 청와대의 동향을 살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에 따르면 기업 내부에서 개발·생산 등 현업 부서보다 기획통으로 불리는 임원이 전진 배치되고 관가 상황에 밝은 정보원들의 몸값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권력의 성향이 진보냐 보수냐에 따라 인사 카드를 뒤흔들 가능성이 커진다. 재계 한 고위 임원은 “2012년에는 경영 실적 못지않게 정치권력 이동에 잘 적응하느냐가 기업의 성패를 가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정 지역 성향의 정권이 잡을 때 이전 정부에서 잘나가던 기업이 고꾸라지기도 하는 것을 그간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한편 대중소기업 상생과 관련한 갈등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011년 ‘납품 단가 조정 협의 의무제’, ‘납품 단가 조정 협의 신청권’, ‘기술 자료 임치제’ 등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들이 생기거나 강화됐다. 2012년에는 이러한 제도들이 사회정치적 구호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좀 더 구체적이고 강제력을 갖춘 제도로 정착되기 위한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광희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당분간 대중소기업 상생, 동반 성장과 관련해서는 갈등이 계속 표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기업 쪽에서 공정거래 및 상생이 경쟁력을 유지·제고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는데 필요한 조건이라고 인식한다면 정부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동반 성장이 이뤄지겠지만 현재로서는 다소 요원해 보인다”고 전망했다.

애플과 삼성의 특허 전쟁에서 보듯 이제 특허 관련 분쟁은 기업의 사활을 걸어야 할 정도로 중요해지고 있다. 특허와 관련해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변수다. 이 협정에는 한국의 지식재산권 제도에 변화를 가져오는 내용이 제법 많다. 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에 따르면 “저작권 보호 기간이 70년으로 늘어나고 상표 보호 대상을 소리와 냄새까지 넓히고 의약품 특허와 약 허가를 연계하는 것 등의 변화가 예상되고 발효 후 5년이 지나면 법률 시장도 개방해야 한다”고 전했다.

HR(Human Resources: 인사)에서는 새로운 의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이미 ‘스마트 워크’ 시대가 빠르게 다가오면서 기존의 근태 위주의 관리에서 벗어나 성과 위주의 관리가 필요해지는 시점이다. 가재산 조인스HR 대표는 “제도나 사람 같은 하드웨어보다 창조적 근무 환경을 만들기 위한 소프트웨어나 콘텐츠 개발, 인력 관리가 중요하다. 구성원들의 창조성을 자극하고 일에 몰입할 수 있도록 소통을 강화하고 다양성 관리를 위한 문화적 혁신과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소비심리·선거·상생’이 주요 변수
‘스마트 워크’ 도입 속도 빨라져

이를 위해서는 첫째, 스마트 시대에 적합한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 가 대표는 “2000년대 초반까지도 기업들은 인력 채용 시 학력과 성적을 우선순위로 꼽았고 젊은이들도 자기가 진정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는 대신 토익 점수를 높이기 위해 도서관에 틀어박혀 청춘을 보내고 치열한 스펙 경쟁에서 뒤진 이들은 취업 경쟁에서 낙오자가 됐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에는 당장 현장에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전문성이나 경험을 갖춘 인재를 찾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는 직원, 다시 말해 남다른 꿈과 그 분야에 대한 재능과 열정이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둘째, 인재를 뽑는 방식과 프로세스를 과감하게 전환해야 한다. 종래의 인재 채용 방식은 일정한 규격 하에서 정해진 시험이나 면접을 통해 이뤄져 변화된 인재를 뽑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셋째, 일하는 방식과 근무 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시공간의 제약 없이 사무실과 동일한 업무 환경을 제공받는 모바일 오피스의 등장이 그 예로 볼 수 있다. 이는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 기반에서 업무가 수행되는 ‘가상 사무실(virtual office)’ 형태로 바뀔 전망이다.

넷째, 인사관리와 인재 육성 방식의 변화다.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한 채용 및 인재 관리, 온·오프라인 경계의 소멸에 따른 업무 형태의 변화, 상하 간의 적극적 소통과 유연성 강조 등 열린 인사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사 부서의 역할과 기능을 변화시켜야 한다. 회사의 전략과 세부 인사 제도가 결합된 HR 전략을 확립하고 단순 행정 기능을 넘어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해야 할 필요성이 늘고 있다.

2012년에는 불확실한 대내외 환경으로 기업 경영은 악조건을 헤치고 나아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다. 한국 기업들은 위기 때에도 연구·개발비를 늘리는 등 공격적인 투자로 호황기 때 성과를 거두는 학습효과가 각인돼 있다. 2010년 한국 대기업의 총 연구·개발비는 전년 대비 21.2%(4조2429억 원) 늘어난 24조2129억 원으로,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은 4조8503억 원, 3조7401억 원으로 전년 대비 14.8%, 11.4%로 10% 이상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해외 직접투자도 꾸준히 늘어나 2009년 201억 달러, 2010년 232억 달러, 2011년 상반기에만 121억 달러로 증가했다. 해외 현지법인의 매출 또한 2005년 수출의 69.3%였던 것이 2009년 수출의 102.1%로 늘어났다. 하병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바야흐로 과거의 무역 입국에서 투자 입국, 즉 글로벌 경영으로 진일보한 형태”라고 이를 평가했다.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