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한국 경제는 고전했다. 세계경제가 유럽의 재정 위기 여파로 휘청거린 탓이다. 한국의 주식시장은 추락했고 원·달러 환율은 급등했다.

2012년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까. 큰 틀에서는 세계경제의 흐름과 맥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유럽의 위기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한국 경제의 향방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만에 하나 세계경제의 시한폭탄인 유럽 재정 위기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면 한국 경제 역시 치명상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여건도 수월하지 않다. 무엇보다 경기 회복의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2010년 6.2%에서 2011년 상반기 3.8%로 낮아졌다. 최근 생산·투자 등 주요 실물 지표의 부진한 성적표를 감안할 때 2011년 성장률이 4%를 넘기기가 벅찰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같은 추세는 2012년으로 이어져 4% 미만대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환율·소비·물가·실업률 등 주요 경제지표들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먼저 수출을 보면 2010년 수출은 호조였다. 지난 9월까지 누적 수출 증가율(통관 기준)은 23.2%로 매우 높다. 석유·석유화학·철강 제품의 수출이 날개를 달았고 자동차와 관련 부품 수출도 콧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2012년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무엇보다 세계경제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성장률 4%대…수출 전선 ‘먹구름’
전문가들은 미국 경기 침체와 유럽 재정 위기에 따른 세계 경제 더블 딥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선진국이 침체에 빠지면 선진국으로의 수출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의 경제도 타격을 받게 된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원자재 수출은 빨간불이 켜졌다. 석유·석유화학·철강 제품 등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 원자재 가격이 세계 경기 둔화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2012년 수출 증가율은 10%에 불과할 것으로 예측된다.



유럽 경제 최악? 한국 경제 치명상
성장률 4%대…수출 전선 ‘먹구름’
수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환율은 어떻게 될까. 1100원 아래에서 머무르다가 다시 1200원까지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환율이 2008년이나 2009년 1분기와 같은 폭등세로 치달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 근거는 이렇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2006~2008년 같은 극단적인 ‘쏠림 현상’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기업들도 예전처럼 추락하는 환율에 놀라 있는 달러를 모두 내다 팔거나 환율이 급등한다고 해서 수입 업체들이 허겁지겁 매수에 나서는 현상이 사라졌다. 게다가 외화보유액이 3000억 달러를 넘어선 데다 한일, 한미 간 통화 스와프가 체결돼 있기 때문에 외환 당국의 환율 장악력도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문제는 유럽의 재정 위기인데, 악화된다면 혼란을 피할 수 없다.

설비 투자도 부진할 것으로 보인다. 설비 투자 증가율은 2010년 25.5%로 늘어났으나 2011년 상반기에는 9.6%로 낮아졌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월별 설비투자지수는 7~8월 중에 오히려 3.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추세는 내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경기선행지수와 기업실사지수의 하락세가 지속돼 투자 수요가 감소하는데다 국내외 경기 전망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2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을 종전의 4.5%에서 4.0%로 대폭 낮춰 잡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도 저성장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렇게 되면 설비 투자 위축은 피할 수 없다.
성장률 4%대…수출 전선 ‘먹구름’
경기를 좌우하는 소비도 올해보다 상대적으로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시작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빠른 속도의 노령화는 소비 감소로 이어지는 구조적인 요인이다. 단적으로 은퇴 후 연금은 가장 큰 경제 수단인데도 우리나라 연금소득 대체율은 42.1%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인 68.4%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가계 부채도 소비 감소의 원인 중 하나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경기가 안정적이고 고용 개선이 이뤄진다는 전제하에 2012년 민간 소비 증가율이 3.3%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행스럽게도 서민들의 주 관심사인 물가는 비교적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물가는 널뛰기를 했다. 작년보다 1% 포인트 높은 4% 중반대의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수차례 물가 안정 대책을 내놨지만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였다. 그렇다면 내년에 물가가 안정된다는 근거는 뭘까.

2012년 세계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유가 및 산업용 원자재 가격은 안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즉 공급 측 인플레이션 요인이 완화된다는 뜻이다. 또 중앙은행의 물가 안정을 위한 정책과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낮추는 노력을 통해 수요 측 인플레이션 요인도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내년도 소비자물가는 3% 중반에 머무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물가는 금리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금리에 영향을 끼치는 주요인은 국내 경기와 물가, 외국인 수요,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등이다. 먼저 국내 경기와 물가는 금리를 낮추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 선진국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국제 원자재 가격은 안정세를 유지하게 되고 원화를 포함한 아시아 통화의 절상 압력이 커지면서 수입 물가 하락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외국인의 수급 여건이 좋아지는 것도 금리 하향 안정에 무게를 두는 이유다. 국제 투자자들의 처지에서 보면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과 유럽 국채의 대안으로 한국 국채는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또한 저금리 기조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의 긴축정책에서 오는 수출의 어려움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내수 진작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간의 수출 확대 정책에서 소외됐던 소비 부문을 회복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의 내수 진작 정책이 가계의 자금 수요를 자극할 수 있어 상반기보다 하반기 금리가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고채 3년 기준으로 상반기는 3.2~3.5%, 하반기는 3.4~3.7%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자물가 3% 중반 예상

가계 부채는 2012년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국내 리스크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정부가 부채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놨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가계 부채가 계속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저금리다. 2011년 상반기 정부가 정책 금리를 3.25%까지 높였지만 적정 금리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물가 상승률이 4% 이상 지속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실질금리가 매우 낮게 유지되고 있고 이에 따라 가계의 자금 수요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금융 당국도 금리 인상에 소극적이다. 유럽 재정 위기에 따른 세계경제의 불안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가계 부채가 늘어나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경제 여건이 악화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진 가계가 소비보다 저축을 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가계 부채 억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점도 가계 부채 억제에 한몫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은행권의 가계 대출 증가율을 월별로 체크하는 등 강력한 부채 억제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실업률은 좀처럼 낮아지기 어려울 전망이다. 고용 사정이 그리 밝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많은데다 2011년 초반 취업자 증가세를 주도했던 제조업 취업자가 수출이 줄어들면서 2011년 8월부터 감소세로 돌아섰고 서비스업 취업자도 8월 이후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 공공 부문 또한 재정 긴축 정책으로 고용 창출이 어려운 형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실업률이 급등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2010년 초반처럼 공공 부문 일자리 사업이 종료되면서 고령층 근로자들이 대거 실업자로 전락, 실업률이 5% 수준까지 급등하는 현상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2년 실업률은 상반기에 3.8%, 하반기에 3.5%, 연평균 3.6%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2000년대 들어 세계경제는 성장 엔진이 꺼지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건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 파괴력도 시장과 국경을 넘어 광범위하다. 2012년에도 이 같은 어려운 대외 여건으로 인해 한국 경제가 몸살을 앓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체력이 튼튼해야만 이러한 풍파를 이겨낼 수 있다. 정부·기업·가계 등 경제 주체들이 슬기롭게 대처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