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는 이미 국가 부도 상태에 들어갔다. 이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이 연쇄 부도를 맞이할 것에 대한 염려가 크다. 이들 나라는 작은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략> 유럽의 현재 위기는 전 세계의 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작은 버전이다. 그리스의 부채가 걷잡을 수 없이 늘고 있었고 중국은 국제통화 체제에서 너무 많은 외화보유액을 갖고 있었다. 미국도 차입을 너무 많이 했다. 이런 가운데 이를 경고하거나 바로잡을 시스템이 없었다. 규율이 없었던 것이다.”
글로벌 인재포럼2011 광장동 워커힐호텔
폴 볼커 기조연설
/김병언 기자 misaeon@ 20111102..
글로벌 인재포럼2011 광장동 워커힐호텔 폴 볼커 기조연설 /김병언 기자 misaeon@ 20111102..
폴 볼커 전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장은 지난 11월 2일 서울 광장동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인재 포럼 2011’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볼커 전 위원장은 유럽의 재정 위기에 대해 “지금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데) 불충분할 수 있다”며 “세계가 앞으로 수년 동안 글로벌 경제 위기를 겪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재정 위기, 해법은 없나’라는 주제로 사공일 한국무역협회장과 가진 대담에서 그는 “5년 전 경제를 말할 때도 긍정적이었으나 세계적으로 경제적 번영을 누릴 때 국가 간 경상수지 불균형, 예산의 불균형 등을 왜 그렇게 그냥 놓아 뒀는지 물어보고 싶다”고 밝혔다. 이러한 대규모 불균형 때문에 각국의 적자와 부채가 누적됐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침체기를 맞았다고 그는 진단했다. 그리고 이런 가운데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인내심’과 ‘리더십’이라고 지적했다.

“역사적으로 미국이 세계의 리더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섰지만 이제 미국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는 처지다. 경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은 내부적인 문제, 수출 지향적 정책 때문에 외부로 눈을 돌릴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집단적 리더십이고 이는 번영의 토대를 다시 마련할 수 있다.”

볼커 전 위원장과 사공 회장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국가별 재정 불균형 문제를 조절할 수 있는 조정 기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하지만 볼커 전 위원장은 “30년 전 G5가 개최될 때 참석했다”며 “그때도 합의를 도출하기 쉽지 않았던 만큼 20개 국가가 합의하고 힘 있는 결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며 한계를 짚었다. 그리고 “G20 정상들이 국제적인 정책 공조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는 것은 다행”이라며 11월 3, 4일 프랑스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내비쳤다.

이 밖에 볼커 전 위원장이 직접 설계한 금융 개혁안 ‘볼커 룰’에 대해 그는 “전 세계 투자은행들의 과도한 투기성 투자를 방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라고 강조하며 “상업은행의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한국 등 아시아와 유럽에서 더 많은 정부가 도입할수록 좋다”고 권장했다.



한중일 대학 ‘공통 커리큘럼’ 확대 제안

볼커 전 위원장에 앞서 기조연설을 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서구와는 차별적·독자적인 아시아 인재 철학의 기반을 만들 때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하토야마 전 총리는 “한국 중국 일본 간 대학 교육 네트워크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그가 추진하고 있는 ‘캠퍼스 아시아 구상’이 대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캠퍼스 아시아는 한중일 대학생이 공통 커리큘럼에 따라 상대국 대학에 머무르며 공부하고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다. 현재 서울대 등 국내 10개 대학이 시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와 함께 회계사 등 전문 자격증과 경영전문대학원(MBA)에 대한 국제 공용 시스템의 도입을 촉구했다.

“미국 비즈니스스쿨 브랜드의 힘은 아주 강하다. 하지만 최근 홍콩과 싱가포르의 MBA도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회계사처럼 국제 공용 시스템을 도입하고 동북아의 인재 창출을 위한 공동의 노력이 요구된다.”

그는 동북아의 공동 교육 시스템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지, 현실적인 문제로 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최근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는 교육 시스템을 소개했다. 고교와 전문대가 통합된 ‘고전(高專)’ 57개교가 지난 5년간 전문 교육을 한 결과 취업률이 높게 나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창의성·혁신성 부문 국제 평가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의 ‘마이스터고’와 비슷한 개념인 고전 시스템은 일본의 대학 졸업생이 취업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대안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국제관계학 교수 
'아시아 세기의 미래 인재' 발표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1.11.2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국제관계학 교수 '아시아 세기의 미래 인재' 발표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1.11.2
후쿠야마 교수, 중국에 대해 신랄히 비판

한편 세계적인 석학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혼돈의 세계경제’ 주제의 기조 세션과 ‘아시아의 정치와 개인주의’ 주제의 특별 세션을 통해 그의 통찰력을 발휘했다. 그는 두 세션을 통해 주로 중국의 사회 시스템을 날카롭게 분석, 비판했다.

그는 중국의 경제성장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정치 시스템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강력한 중앙집권화, 관료주의 뿌리와 현대적 권위주의를 갖고 있는데 경제 개발에 집중하는 시기에는 효율적이었지만 앞으로 강대국의 미래로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등은 경제 발전뿐만 아니라 성공적인 민주화의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중산층이 현재 3억 명에서 약 15년 후 9억 명으로 늘어나고 교육 수준이 높아져 소통의 기회가 많아질 때 정부가 지시하는 대로 받아들일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는 최근 중국의 초고속철 사고와 관련해 중국 정부는 문제를 덮기 위해 차량을 땅에 묻고 문제에 대한 토론과 논의를 막았지만 비판의 목소리가 커져 다시 파낸 사례를 들었다. 그는 “이와 같은 산업 사고는 정치적인 문제를 떠나 자유로운 논의를 해야 문제를 해결하고 재발을 막을 수 있다”며 “건설 공사를 급하게 하지 않았는지, 부정부패가 있지 않았는지 검증하는 절차를 덮는다면 혁신을 억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독재적이고 권위적인 정치체제 하에서 기술 개발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고 스티브 잡스 전 애플 회장처럼 혁신적인 인재를 발굴하는 데는 장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짚었다.

이와 함께 후쿠야마 교수는 장기적으로 세계경제의 불균형을 바로잡을 방법에 대해 “중국이 수출보다 내수를 늘리는 정책을 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중국이 내수를 늘리기 위해 미비한 금융 제도를 확충하고 연금 제도 등으로 소비 여력을 늘리는 것으로도 충분한데, 중국 정부는 이런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후쿠야마 교수는 중국이 G2로 부상하며 인도보다 높은 지위를 거머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인도의 잠재력이 더 클 수 있다”고 평가했다.

새로운 세계질서와 인재상을 모색하기 위한 글로벌 인재 포럼 2011이 지난 11월 3일을 마지막으로 활발한 논의를 통해 많은 과제를 남긴 채 막을 내렸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정치 지도자와 경제 전문가, 기업인들이 참가한 가운데 참가자들은 글로벌 리더십의 필요성과 국가 간 네트워크를 통한 글로벌 인재 양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전 세계에 불어 닥친 경제 위기 해법과 글로벌 인재 교육에 대한 방안을 모색하는 장이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